첫눈이 내리다. 새 생명과 함께...
드디어 첫눈이 내렸다. 멀리 천왕봉 언저리가 흰 독수리의 머리처럼 용감하고 위엄 있는 자태를 드러냈다. 11월 말이 되어가니 당연히 높은 산엔 눈이 내릴 때가 되기는 했지만 지리산에서의 첫눈은 무엇보다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은빛으로 빛나는 산의 정상부분이 웅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느 산과는 다르다는 평소의 외경심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눈, 백설의 은 세상, 어린 날 겨울이 다가가면 얼마나 첫눈을 기다렸던가? 드디어 첫눈이 내릴라치면 마치 무슨 잔칫날인양 설레임에 가득찬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마냥 날뛰며 즐거워했던 기억들이 난다. 태생적으로 눈을 너무나 좋아했던 나는 늘 겨울이면 온 손과 발이 얼어터지도록 눈밭을 쏘다니다 야단을 맞곤 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겨울만 되면 눈 구경하겠다고 위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쫓아가곤 했다.
뒤 쪽 삼봉산도 얌전하게 눈을 머리에 쓰고 있다. 천왕봉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부드러우면서도 위로 솟은 곡선이 말쑥하다. 산마다 흰 눈이 내리면 저마다 가진 자태를 곱게 가꾸어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다가오는 겨울은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도 눈 내리는 겨울 산을 마음껏 관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렇게 눈이 오겠다고 며칠 비바람이 거세었던가 보다.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며 추워지던 첫날 밤 우리 집에는 또 다른 손님이 찾아들었다. 운이가 새끼를 난 것이다. 일 년 전 막 젖을 뗀 어린 운이를 데리고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새끼를 가진 어미가 되어버렸다. 개의 임신기간이 약 두 달 정도라 하니 9월 무렵 어쩐지 밖으로만 돌며 미운 짓을 하더니 아마 그 때 새끼를 가진 것 같다. 한 밤중 나는 운이와 함께 새끼를 받았다. 날은 추워지는데 연신 떨면서도 새끼를 핥아 내고 있는 운이를 혼자 놔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끼를 낳으면서도 쉬지 않고 새끼들을 핥아내느라 기진맥진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합 일곱 마리나 되니 그럴 만도 했다. 한 마리는 낳자마자 죽었다.
운이는 사흘 동안은 새끼만 품고 앉아 꼼짝을 안했다. 할 수 없이 먹이통을 입에 갖다 대 주었다. 그러나 먹는 시늉을 하다가도 새끼가 낑낑대면 또 새끼를 핥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끼의 분비물과 배설물을 모두 입으로 삼켜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대단한 정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눈이 내린 오늘에사 운이는 밖으로 나와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개집 안으로 머리를 처박고 바닥을 깔아주고 죽을 끓여 먹이를 먹여주고 물을 떠다주고 사람에게도 해보지 않았던 운이의 산후조리를 부지런히 했다. 헛웃음도 나왔다. 지청구도 많이 주었다. 야! 어떤 녀석의 씨야. 괜찮은 놈이냐? 새끼는 뭐한다고 그렇게 많이 낳아 귀찮게 하냐? 거 자꾸 거두어봐야 별 소용없다. 밥이나 많이 먹어라... 등등
그러나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지키고 키우지만 적당한 때가 되면 어미는 새끼를 버린다. 버린 다기 보다 새끼 스스로 자기의 살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모든 짐승은 스스로 먹이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 예외 없이 어미로부터 독립한다. 다 클 때까지도 돌 봐야 하고 결혼을 해서도 늘 뒷바라지를 하며 나이 들면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이성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과연 도덕적이어서 그런가? 그 미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 마리는 숨을 거두었지만 새 생명의 탄생은 또 다른 감회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짐승의 출산을 본 것도 처음이지만 새끼를 난 어미개의 모습 또한 남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본능적인 것이긴 하겠지만 새끼를 거두는 어미의 모습은 사람이나 다를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정성인 것 같았다. 모든 배설물을 입으로 다 치운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안을 들여다보면 이제는 저희들끼리 무더기가 되어 잠을 자고 있다. 보름 가까이나 되어야 눈을 뜬다고 한다. 그 때부터는 정신을 못 차릴 지경으로 싸돌아 다닐 것이다.
여섯 마리가 모두 흰색이다. 잡티 하나 없이 흰색으로 일색이니 그것도 참 대단하다. 마치 지리산에 내린 눈 색깔 같다. 그래서 개의 이름을 미리 지어 두었다. 숫놈은 천왕, 제석, 반야, 노고로 암놈은 세석, 장터, 벽소, 임걸이다. 지리산의 봉우리와 고갯마루의 이름들이다. 나중에 눈을 뜨고 나면 날을 잡아 이름표를 만들고 가장 먼저 다가오는 녀석부터 순서대로 이름을 지어줄 생각이다. 그나저나 지금부터 걱정인 것이 이놈들을 다 키울 수는 없는 일이니 어디다 팔아 넘겨야 하나? 참 난감하다. 그리고 새끼들에게 정이 들면 또 어떻게 헤어져야 하나 걱정이 먼저 앞선다. 모른 척 무관심하게 대해야 하나?
서설과 함께 찾아온 이 귀한 생명들이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크기를 바라지만 사람의 세상에 태어난 짐승들의 앞날을 어찌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좋을 때는 사람보다도 더 지극하게 돌보다가도 귀찮거나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냐는듯 폐기해버리는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 이중적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목숨은 중요한 줄 알지만 자연의 생명은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되는 양 사소하게 치부하고 마는 인간은 과연 충분히 도덕적인가?
첫눈이 내린 날. 소나무집에서.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