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아름다움을 심다.
벼농사를 포기하겠다고 결심한 다음 날 곧 바로 새벽같이 올라가 논둑을 헐어내고 남아있던 물을 빼냈다. 비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말려야 밭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콩 심을 시기는 여유가 있으니 미리 준비를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밭을 만들자면 어차피 다시 한 번 로타리를 쳐야 했다. 논을 갈아 논 상태에다 물을 먹은 땅이라 손으로 일구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며칠 고심 끝에 동네 귀농한 사람 중에 트랙터를 가지고 있는 김영수라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였다. 논을 한 번 갈아줄 수 없겠느냐고? 이런 저런 농사 이야기 끝에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물을 잡으면 물로타리를 쳐줄 것이고 밭으로 쓴다면 그대로 갈아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결정해서 연락하기로 하고 그날 저녁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모는 지금도 구할 수 있으니 벼농사를 짓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허물었던 논둑을 새로 손보고 물을 다시 채워 넣었다. 그리고 모를 심기로 했다고 영수씨에게 연락을 했다. 당장 그날 오후에 밭에 일하러 올라가는 도중이라면서 논에 들러 로터리를 치고 써레질까지 해주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과 같은 도움이었다. 일을 마치고 셈을 치르려고 하니 돈보고 한 일이 아니라면서 정 뭣하면 나중에 기름이나 한 통 사달라고 했다. 나로서는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틀 뒤 주사장의 논으로 가 모를 실어왔다. 논에서 낸 모라 힘이 있고 건강한 것 같았다. 하루 재운 뒤 모심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참 만만치가 않았다. 처음에는 손바닥만 한 논 하루쯤이면 끝나겠지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도중에 비가 와 잠시 쉬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심었는데도 절반도 못 채웠다. 다음 날도 끝이 나지 않았다. 한참 모를 심고 있는데 아랫집 김용기씨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더니 못밥 없느냐고 물었다. 농담이겠지만 별로 달갑지가 않았다. 술 한 잔 살 테니 모 좀 심어줄 생각 없느냐고 했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지나가면서 씩 웃는데 돈 삼만 원이면 될 일을 생똥 싸고 있네? 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모를 심으면서 내가 느끼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그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좋은 모에 손으로 심었으니 올 가을 쌀 거두면 참 오질 것이야.' 라고 응수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했다. 숨이 많다. 적다. 왜 고랑을 옆으로 냈느냐? 이쪽 논둑 옆에도 모를 심어라. 그러면서 본래 길가 농사가 짓기 힘든 법이라고 훈수까지 한다. 숨이란 모의 숫자를 말하는 것 같은데 적게 하라는 사람이 한 사람, 많게 하라는 사람이 세 사람이었다. 둘 다 이유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늦게 심는 만큼 나는 숨을 많이 잡는 쪽으로 심었다. 모를 이쁘게 잘 심었다는 칭찬도 있었다.
꼬박 사흘을 심고서야 끝낼 수 있었다. 역시 혼자 한다는 것은 참 힘들고 어렵고 재미가 없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사흘째 저녁 드디어 모심기를 마치고 논을 쳐다보면서 느낀 기쁨은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었다. 대견함과 뿌듯함, 힘들었지만 논에 심어진 모는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들었다. 일을 마치고 위집 김용현 선생이 술 한 잔 하자고 하여 올라가서 저녁까지 잘 얻어먹고 왔다. 모심는 사흘 동안 아침저녁 지나가면서 고생한다고 인사를 하길래 모심기 막걸리라도 한 잔 하자고 했더니 오히려 자기가 술을 낸 것이다. 마음도 흡족하고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되는 것은 이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다. 특별히 격을 두고 생활하는 것도 아니고 가능한 한 그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지만 그들의 눈에는 내가 선뜻 내키는 사람이 아닌가 보다.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그렇다. 나이든 축이야 서로 이해가 되고 노인들은 말 한마디라도 도움을 줄려고 하는데 정작 몇 안 되는 젊은 치들은 어쩐지 무례한 것 같기도 하고 몸을 사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부담스러운가 보다. 동병상련이랄까? 귀농한 사람들은 그래도 말이 통하고 특히 주변의 교사들과는 격의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유독 토박이 젊은 친구들이 그렇다. 그래봐야 두셋밖에 안된다. 그 중에 동네 논밭 갈아주는 재운이라는 친구가 있다. 귀농한 사람들에게 다소 피해의식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모를 심고 나니 무겁던 짐을 던 것 같고 밀린 숙제를 해결한 듯 홀가분하고 마음이 느긋해졌다. 올 시월 말에는 다시 추수감사 잔치를 즐겁게 치를 수 있을 것 같다. 거름도 농약도 없이 그저 입으로 말비료만 부지런히 주는 얼치기 농사꾼의 모가 얼마나 잘 자라줄른 지는 모른다. 많은 수확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부디 병충해만은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은 우렁이를 사다 넣어야겠다.
유월 초하루 모내기를 마치고.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