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하송 2012. 10. 12. 22:23

 

 

시문에 어두운 나는 이제서야

백석의 시집을 한 권 주문해 저녁 식탁에 앉아

가장 뒤쪽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그 고단한 처지를 펴들고

늦은 밥을 먹는다.

 

점심나절 마을회관에서 얻어먹은 소주잔과 돼지 몇 점이 편치 않아

서툰 낮잠 끝에  해 기울어 나가 파던 고구마도 던져두고 들어왔는데

동네에서는 회의 때마다 위쪽 귀농한 사람들을 성토하고 

아내는 전화로 지난번 고추 말린 것 가지고 큰소리 냈다고 타박하였다.

 

뒷담에서 뜯어온 먹우잎을 매운 젖국에 찍어 먹으며 

씁쓸한 입맛을 달래보는데

박 씨네 집 한 방에 세 들었다는 그가

정히 생각하였다는 갈매나무는 무엇이었던가?

흰 눈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살아남을

한 가닥 드문 희망이었던가?

 

작년 겨울 만든 무우차로 뜨거운 입가심을 한 뒤에도

쉬이 자리를 털지 못하고, 책갈피마다 빼곡한

풀씨 같이 투박한 평안도 방언을 이리저리 뒤적여 보다 

백석의 시를 흉내 내어 모처럼

글 나부랭이를 끄적여 보는 것이다.

 

백석의 시집이 온 날 저녁.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