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보며

희빈 조씨의 문자 메시지

방산하송 2010. 9. 22. 01:19

 

한가위라고 풍성한 추석맞이 덕담 메시지가 여기저기서 들어 왔는데 그 중에 발신인이 '희빈 조씨'라고 된 것이 있었다. 조경선 선생이구나 하고 짐작했으나 그 재치가 참 재미 있었다. 의례적인 것도 있고 심지어는 온갖 금융기간, 몇 번 갔던 식당, 대리운전까지 가히 정보화 시대의 메시지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래도 간혹 이렇게 마음이 즐거운 것도 있다.

 

학교를 떠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언제 내가 교사였던가 싶을 정도로 학교라는 곳이 까마득한데, 거꾸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옛날과 전혀 달라진게 없다. 사람과의 관계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이라면 온갖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서로의 존재가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간단한 인연은 아닌 것이다.

 

일상의 업무와 생활의 필요에 의해 만나는 사람도 있고, 생각이나 지향에 의해 만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인간관계란 그 사람의 삶에 일정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일상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되는가는 본인의 희망이나 의지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성향이나 하는 일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초임지에서 학교 일과 관련해서 만난 두 사람의 상반된 사람을 아직도 기억한다. 허 사장과 추 사장. 한 사람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분이고 한 사람은 고갯마루 버스정류소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분이었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허사장님은 학교만 오면 아이들이고 선생님이고 뭘 사주려고 야단이었다. 있는 것은 다 내놓으려고 작정한 사람 같았다. 항상 웃음 뒤에는 허허로운 쓸쓸함이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상처를 하시고 혼자서 딸을 키우고 계셨다. 고갯마루의 추 사장은 동네사람들 말마따나 희한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돈 되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심지어는 어린 중학생에게 술까지 팔았고 우리는 뒤에서 비난을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서로 가까워 질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은 추 사장은 얼마 뒤 큰 도시로 가게를 얻어 이사를 갔다. 허 사장님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그 때의 기억이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대한 극단의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교사들에게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마 시기에 따라서 학생들의 느낌도 달라졌을 것이고, 교사들은 연배에 따라 나에 대한 평가가 달랐을 것이다. 이미 지나온 일들이지만 내가 귀찮고 힘들어 할 땐 아이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고 내가 열정과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땐 또 그렇게 느꼈으리라. 선생님들도 같은 성향과 교육관을 지닌 사람은 편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편했으리라. 그러니 모두 나로부터, 나의 성향과 행동에 의해 관계가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역시 사람은 신념이나 성향에 의해 서로 동질감을 느끼거나 편안한 사람이 있고, 차이로 인해 불편하거나 대립되는 사람이 있다. 인간의 역사가 늘 대립과 투쟁으로 점철 되 온 것도 바로 그런 사람의 가치 충돌,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충돌인 것이다. 내가 재직하는 동안 젊은 선생님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가치의 공통점을 지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뢰라는 것도 지향점이 같기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통해 위로받고 어려울 때 힘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나와 다른 가치와 성향을 지닌 사람은 모두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 사이에는 신뢰관계가 구축될 수 없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미 사회학적으로 많은 논의가 있어왔지만 민주적 사회의식을 가진 성숙한 사회라면 서로 다른 가치와 이념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런 다양함이 보장 될 때 발전이 이루어지고 역동적인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서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룰과 권리가 보장되고 그러한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정착된 사회라면 아마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도 이런 부분이 미흡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최장집교수의 말대로 제도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질적으로는 더 악화되고 있는것 같다. 지역감정, 노사간의 갈등, 정치적 이념의 대립, 계층 간의 갈등 까지...  우리는 참 험난한 시대를 살고 있다. 나의 경우 더군다나 내가 생활했던 곳을 떠나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야하는데 요즘과 같은 세태속에서 과연 잘 정착을 할 수 있을런지...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추석을 앞두고 날라온 한통의 메시지로 인해 사람 사이의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 관계를 맺고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과 사랑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삶을 헤쳐 나가는 길잡이가 되었음을 새삼 감사하게 생각하게 된다. 희빈 조씨의 앞날에도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빈다.

 

 2010. 09. 22.   송하산방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