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아침 일찍 김용현 선생한테 연락이 왔다. 지난번 인월에 있는 공소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오늘 가보지 않겠느냐는 전화였다. 일요일 인지도 몰랐고 아직 잠자리도 완전히 거두지 못한 채였다. 집 앞을 지나갈 때 나가있으면 태우고 가라고 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식빵 한 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냉담중이긴 했으나 외면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신앙이 논리적으로 따지고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면서도 기독교문명과 세계사적인 관계, 한국 기독교의 현실과 사회적 역할, 목회자나 신자들의 신앙행위 등을 생각하다 보면 분명 뭔가 내 발길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다. 그보다는 보다 본질적으로 신에 대한 확신이나 믿음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공소에 앉아서도 인간과 종교 간의 관계와 그 행위의 목적 등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상념이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늘 변함없이 자리 잡고 있는 무언가가 항상 나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감지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읽었던 카잔차키스의 성자 프란치스코, 처절하리만큼 끝없는 고행은 인간의 의지인가? 신의 의지인가? 육신의 고통을 통해서만이 신 앞에 나아갈 수 있다면 인간의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마저도 끝없는 회의와 절망에 빠져들게 했다. 명절 끝에 본 레미제라블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장발장의 신 앞에서 고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고뇌 끝에 진실과 정의의 길, 곧 험난한 가시밭 길로 받을 대딛는 순간의 결연함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양심과 공공의 선을 위한 채찍이나 잣대의 구실이 신의 역할인가? 그런데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한 가지 더 생기는 걱정은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이런저런 사람들과 모임에 얽히게 되는 점이다. 조직적이고 발전적인 신앙을 위해서는 필요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지한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서 늦은 아침을 먹고 미루어두었던 이남곡선생의 진보연찬 뒷부분을 마저 읽었다. 책을 돌려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사상가의 글처럼 논리적이거나 학문적으로 잘 정리된 글은 아니었지만 치열하게 살아왔던 활동가로서의 고민과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스스로의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개인의 자유로움이 보장되고 강제되지 않은 공동체, 물질적 충족이 이루어진 바탕 위에서 진보가 가능하다는 것, 자본주의의 역할에 대한 불가피한 수용,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가 요구되고 그 도래에 대한 희망 등 나이 들면서 가지게 되는 사상의 폭과 여유가 느껴졌고 비슷한 생각을 자주 했던 바라 여러 부분에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날씨가 음산하다. 하늘이 흐리니 마음도 스산해졌다. 틈틈이 먹을 갈았다. 엊그제 울산에 갔을 때 새 붓을 몇 자루 구해왔는데 세필은 안사도 될 것을 산 것 같았다. 챙겨보니 집에 새것이 두개나 있었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마음먹은 병풍 글은 완성을 해야 할 텐데 자꾸 미루고 있다. 글도 글이지만 겨울 끝무렵이어선지 사람이 게을러지는 것 같다.
벽난로 놓을 자리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바닥에 깔 강화유리를 주문하였다. 주사장에게 화목 3톤 정도를 주문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벽난로는 너무 비싼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는데 집사람이 유난히 원하여 설치 하기로 한 것이다. 화목보일러에서 황토 집으로 다시 창고자리에 황토방을 놓을까 하다가 결국 벽난로로 귀착이 되었다. 기름 값도 만만치가 않고 무엇보다 기름에 너무 의존하는 것 같아 보조난방수단을 찾고 있었는데 비싼 벽난로가 얼마나 효율적일는지는 모르겠다.
오후 늦게 비가 내리는 듯 하더니 가는 눈발로 바뀌었다. 우산을 받고 원선생 집에 책을 돌려주러 올라갔다. 원선생은 집에 없었다. 집사람에게 책을 전하고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원선생이 들어왔다. 대보름날 동네 행사준비로 청년회 모임이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동네이야기, 세상의 흐름과 새로운 조짐, 그 필요성과 징후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이 월 말에 이남곡선생과 멍덕골 사람들을 중심으로 삼 일간 집중적인 연찬모임이 있다고 했지만 아직 이르다는 판단에 사양하였다.
저녁에는 고은의 대담집을 내내 읽었다. 김형수 시인과의 대담으로 매주 경향신문에 연재된 바 있는데 책으로 엮은 것이다. 앞서 70년대의 일기로 구성된 바람의 사상을 며칠 동안 내리 읽었는데 그 시절 나는 고등학교에서 대학 때까지의 시기인지라 익히 들었던 문인들, 문학지, 사건들을 떠올리며 시대적 상황의 반추와 더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의 술이다. 매일처럼 술에 젖어 살다시피 했으니 그의 시는 술로부터 나온 것인가? 암울한 시대,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인가?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 초반부에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거론되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우리는 민족적 자아와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과 그것도 타자에 의해 침범 당함으로서 비로소 자아에 눈뜨게 되었다는 시인의 지적에 수긍이 간다. 결국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자아의 해체에 이르렀다는 현상적 판단에 대해서도 일견 동의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동서양과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그의 철학적, 사상적, 문학적 식견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원래 다변이기도 하고 동시에 다작의 작가이기도 하다.
혼자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넋두리인 듯도 하다. 늦은 밤 또 커피를 마셨다. 습관이다. 눈이 녹아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요란하다. 밤에도 녹아내린다는 것은 날이 그만큼 풀렸다는 증거다. 내일이 우수고 경칩도 며칠 안 남았다. 겨울을 시작할 때가 엊그제 인데 어느새 봄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소나무집에서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