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통신

바지를 입고 불편해서 어떻게 등산을 하지?

방산하송 2010. 9. 25. 20:03

수녀님들은 언제나 복장에 변화가 없다. 어떤 장소 어느 자리에서도 한결같이 수녀복만을 입고 계신다.

 

몇 해 전 소백산을 등산할 때도 마침 어느 본당의 소속인지는 모르지만  평상복을 입은 신부님과 역시 수녀복을 입은 수녀님 몇 분이 높은 산을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수녀님들이 수녀복만을 입는것은 규율인가? 혹 남녀의 차이는 아닌가?

 

오늘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소속의 수녀님 두 분과 모처럼 등산을 가게 되었다. 집사람의 강요로 가지산 등산 안내를 맡게 된 것이다.

 

울산 출신이 아니어서 가지산을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두 분과 아침에 만나 산으로 가면서 평소의 수녀복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수녀님들의 대답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그 복장이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바지를 입고 어떻게 등산을 하는지 오히려 궁금하다고 하신다. 어떤 경우에도 가장 편안하고 신경 쓸 일이 없는 복장이 바로 수도복인 수녀복이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그것을 일종의 자유라고 생각했다. 형식적으로는 수도복에 구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수도자로 사는 한 무슨옷을 입을까? 내 옷차림이 어떤가? 등 하등 신경 쓸 일이 없는, 옷 그 자체로부터의 자유인 것이다. 자기마음대로 옷을 입을수 있는 통념적인 자유가 아니라 옷으로 인해 구속당하지 않는 내면적인 자유, 프롬이 말한 적극적인 자유인 셈이다.

 

최근에 퇴직한 나도 옷에 대해서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 동안 구입해서 남아있는 옷만 해도 충분하니 앞으로 더 이상 옷을 구입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늘 안타까웠던 것 중의 하나가 복장과 두발이었다. 일률적이고 강제적인 규제도 문제지만, 그 시기의 특성임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꼭 그런 반항적인 형태로 나타나야 할까? 라는 의구심과 잘못 형성된 우리의 복장문화에 대한 염려에서였다. 아름답다, 멋있다는 것의 개념이 잘못 학습된 것이라고 나는 본다. 그것은 기성사회의 잘못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저급한 문화와 풍토에 잠식된 우리의 허약한 의식구조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보기도 했었다.

 

동시에 학교의 축제같은 것도 점점 겉은 화려해지고 소리는 요란하지만 진지하고 내실있는 내용은 거의 볼 것이 없는 껍데기 중심으로 변해가는 것도 아마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마다 무슨 축제다 하여 요란하게 벌리는 행사들도 보면 마찬가지다. 천편일률적인 형태로 비슷비슷하게 운영이 되고 있어 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꼭 그런 행사를 벌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더 드는 것이다.

 

수녀님들은 내가 교직을 그만 둔 일에 대해서도 이해와 격려를 해 주었으며, 여러가지 교육문제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열린 생각을 갖고 계셨다.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그럴수록 현장에서 힘을 모아 변화를 일으키고, 또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아쉬움을 말하기도 했다.  나는 최근에 백수이고 수년간의 냉담자임을 말했다. 쉬는 김에 푹 쉬라는 말씀은 오히려 정겨웠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지나가는 등산객들은 수녀복을 입은 수녀님들을 안쓰럽게 보기도 하고, 신기하게 보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하기도 하고 여러형태의 반응을 보였다. 정작 본인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잘 오르고 있는데 옆에서 보기에 영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산을 오르는 도중에 여기저기 연보라빛 쑥부쟁이 들이 보였다. 소박한 모습이 수녀님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녀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생각과 생활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수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산의 많은 나무와 풀과 꽃들이 모여 아름다운 산을 만들듯이, 사람마다 색깔이 다르고, 있는 곳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그들이 모여 이 세상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 무슨일을 하든, 서로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을 것이다.

 

쉬엄쉬엄 정상에 올라 사진도 찍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하산을 하였는데 본당에 계시는 수녀님의 발목이 말썽을 부렸다. 몇 해 전 산에 갔다 내려오는 도중에 발을 잘못디뎌 뼈가 부러지고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는데 그 쪽에 무리가 온 모양이었다. 중간 중간 쉴때마다 다리를 주무르면서 하산하였다.

 

덕하의 수녀님은 머리가 하얀데도 아주 씩씩하게 잘 걸으셨다. 대단히 건강하신 분 같았다. 석남 터널에 다 내려와 계울물에 앉아 잠시 쉬시라 하고 혼자가서 차를 가지고 왔다. 그동안 찬 물에 발을 씻으니 아픈 다리가 다 나은 것 같다고 하면서 대단히 고마워  하셨다.

 

돌아오는 길에 종교간의 반목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그렇고, 같은 개신교도들도 수 많은 분파로 나뉘어 서로 비방하고 싸움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종교와는 무관한 것도 교파 이익에 걸림돌이라고 생각이 들면 극렬하게 거부하고, 심지어 정치적인 논리에 부화뇌동하는 것까지 보면 누구를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인지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믿음을 위해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힘없고 보잘것 없는 사람 편에 서라고 하였거늘...

 

수녀님들이 산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의 말과 덕담을 나누는 것을 보며 참 흐뭇하였다. 저 분들은 일생을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며 사시는 분들이다. 종교를 떠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분들이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하루였다고 하시니, 나도 참 즐겁고  보람있는 하루였다.

 

 2010. 9. 25. 송하산방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