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통신

나무에게 죄를 지은 사람

방산하송 2013. 3. 21. 09:48

이것은 분명 욕심이다. 욕심인 줄 알지만 봄이면 나무 심을 생각에 온통 나무 생각뿐이다. 집 주변이 허전한 구석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무에 대한 나의 탐심이 더 크다. 집 주위를 온통 나무로 둘러싸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 중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를 구하고 조달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 산에 잘 살고 있는 나무를 캐 억지로 이식하거나 무람없이 돈으로 사서 심는다는 것은 당연히 정상적이지 못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어린나무라 할지라도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캐오면 그 나무로써는 얼마나 큰 수난을 맞게 되는가?  묘목도 몇 년 키워 모양이 잡힌 것만 찾는다.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떠올리는 까닭이다. 그는 황무지에 매일같이 도토리나 참나무 열매를 쉬지 않고 심어 드디어 숲을 만들고 사람이 찾아오게 만들었다. 삼십년이 걸렸다. 나는 늦었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런 조바심일지는 모르나 어쨌든 마당과 뒷담을 따라 작은 나무들을 많이 심고나니 보기는 좋다. 3월 들어서자 서둘러 뒷산에 지천으로 자라는 화살나무를 여러그루 캐 왔고 미리 손을 봐 놓은 병꽃나무와 키 큰 가막살나무도 옮겨 심었다. 그리고 서어나무 중간치와 물푸레나무 가는 것, 쥐똥나무 어린 것, 키가 작으나 모양이 잡힌 작은 소나무도 한 그루도 상수도 근방에서 캐왔다. 두릅나무도 몇 개 더 뽑아다 심었다.

 

 

아내와 장에 나가 구입한 산수유 조금 굵은 것, 천리향과 호랑가시나무 작은 것도 화단에 심었다. 산수유는 지금 꽃이 피어 보기가 좋다. 지붕 붉은 집에서 초코 베리 두 주도 얻어다 심었다. 다음 장에서 홍매 한 그루, 포도나무 두 그루, 살구와 자두, 감나무 묘목도 한두 주씩 구해 여기저기 심었다. 포도는 거실 앞마루 위로 올릴 생각인데 잘 살지 모르겠다. 그 다음 장날 운용매 한 그루 더 사다 심었다. 남원 나갔다 오면서 이흥규 사장 집에 들러 수양매 접 붙여놓은 것 두 그루 얻어다 연못가에 심었다. 굳이 돈을 안 받겠다고 하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개나리 농원에 삼년짜리 개나리를 수십 주 부탁해 놓았다. 어차피 뒷담을 따라 울타리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 한 해라도 빨리 심을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나무 심느라 정신없이 삼월 초가 지나가고 이제야 본격적인 봄 농사 준비에 들어갔다. 이년간의 경험으로 어지간히 심고 거둘 때는 짐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고 나니 더 할 일이 많아졌다. 모르면 안하고 넘어가고 말겠지만 일이 눈에 보이니 미리 준비를 하고 심어야 할 것들이 훨씬 늘어난 것이다. 농사란 것이 그냥 심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심기 전에 갖추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나무심기를 마치고 이처럼 봄 농사 준비로 두서없이 분주해졌지만 아직도 나무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것은 고약한 고질병이다. 어디 괜찮은 나무 없나? 어딜가도 나무만 쳐다보고 기회만 보고 있다. 소나무도 한 그루 더 옮기고 싶고 벚나무도 몇 그루 더 심고 싶다. 장에 나가서도 나무전부터 기웃거린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나무를 심을 때마다 잘 살아야한다고 격려를 하고 고생한다고 위로도 하지만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는 것이다. 산에 가면 얼마든지 많은 나무들이 다 잘 살고 있는데 새삼 집 안으로 끌어들이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있으니 문득 나는 '나무를 심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 그만 됐다. 앞으로는 나무 욕심을 줄이자. 더 이상은 과한 일이다. 다음 성사 때  반드시 나무들에게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해야겠다. 사람에게 지은 죄보다 자연에게 지은 죄가 더 큰 것은 아닐까?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뜻하는데 자연으로 다가가지 않고 끌어들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오만이고 무례한 생각이다. '강산은 들일데가 없으니 둘러놓고 보리라'는 선인의 지혜와 마음가짐을 배울 일이다.

 

나무를 심고.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