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의 수술
운이가 발정을 냈다. 위쪽의 박 씨네 집 수캐가 또 들락거린다. 쫓아내도 소용없고 아무리 개 단속을 이야기해도 도로아미타불이다. 동네사람들이 전부 얼굴을 찌푸리고 몇 번이나 방송을 해도 소용이 없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른다. 주인은 둘 다 밖으로 나가고 개는 개 대로 동네를 배회하고 돌아다닌다. 그렇잖아도 운이의 불임수술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남원의 동물병원에 연락을 했다. 오늘 오라고 했다. 그 길로 트렁크에 운이를 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사실 오래전부터 운이의 중성화 수술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는 했지만 어찌 그런 잔인한 짓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미루고만 있었다.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암놈 수놈 교미하고 새끼 낳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기어이 손까지 댄다는 것이 망설여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울도 없는 집, 또 새끼를 낳으면 그 뒷감당을 어찌 하랴? 도저히 자신이 없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애초에 개를 키운 것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한 식구가 돼 버렸으니 같다 버릴 수도, 내다 팔아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그 동물병원은 집짓기 전 어머니에게 개를 맡기러 가면서 처음으로 예방주사와 구충제를 사 먹였던 병원이었다. 발정기라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며 두어 시간 뒤에 오라고 했다. 시내로 나와 몇 가지 물건도 사고 이리저리 배회하다 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이런, 운이는 완전히 피범벅인 채로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아랫배는 복대를 동여맨 채로 등과 꼬리에는 온통 핏자국이 엉켜있었다. 혈관이 부풀어 있고 예민할 때라 출혈도 많고 수술이 힘들었다고 했다. 배를 가르고 자궁을 들어냈으니 대수술을 받은 셈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마음이 안쓰러워 한참이나 쳐다보다 "이제는 나하고 평생 살아야겠다."고 한 마디 했다. 수술비가 거의 사십 여만원이 들어갔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운이를 안아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로에게 매인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물론 그 대가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인간의 자유를 유보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특히 애완동물일 경우는 더 그렇다. 애초에 짐승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모두 인간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이기심의 발로인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았다. 그래서 이미 키우고 있는 개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어떤 짐승도 키우지 않을 생각이다. 동물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서로간에 짐이 되고 구속하는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주일 정도는 심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지만 집으로 들어간 운이는 움직이기는 고사하고 아예 꼼짝을 안했다. 아무것도 먹지도 않았다. 따뜻한 생선국물을 끓여 주어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물만 몇 모금 홀짝거리고 전혀 움직일 기색도 먹을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전혀 음식을 먹지 않으니 할 수없이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엎드린 채로 가끔 신음소리도 냈다. 나는 좌불안석 들락날락 운이를 살펴보고 먹이를 대주기도 하고 만져도 보고 했으나 나중에는 눈도 뜨지 않았다. 겨우 물만 몇 모금 받아 마시고 돌아 누워버렸다. 나를 원망하는듯 해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에 나가보니 겨우 눈을 떴다. 물을 주니 받아먹고 배가 고픈지 먹이통을 찾았다. 부리나케 들어와 식빵에다 약을 넣은 뒤 입에 대주니 받아먹었다. 아침을 끓여 갖다 주니 조심스레 입을 댔다. 이젠 됐다. 니 살겠구나. 아침을 먹고 나가니 밖에 나와 있다가 비틀거리는 몸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안 돼! 흔들지 마라.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으니 가만히 있어.
인간은 참으로 잔인하구나. 저들끼리 새끼 낳는 것 귀찮아 수술하는 것이야 하는 수 없다지만 왜 죄 없는 짐승에게까지 불임의 칼을 들이대고 손을 대는가? 하느님이 주신대로 거두지 못하고 기어이 자신의 뜻대로 욕심을 부리는가? 생명공학? 신성한 생명을 공학으로 인지하는 오만. 생명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고,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무서운 죄업을 아무 의식도 없이 저지르는 만용, 그 업을 어떻게 다 갚을 것인가?
일을 하러 밖에 나가도 운이는 출산한 아낙처럼 뒷다리를 땅에 붙이고 앉아 햇빛만 쪼이고 있었다. 눈도 부었고 아랫배를 질끈 동여매노니 꼴이 가관이었다. 어쨌거나 별 이상 없이 아물어야 할 텐데. 집사람에게 운이 상태를 전하고 운이의 회복을 위해 무조건 기도를 해라고 다그쳤다. 나를 포함해 누구를 위한 기도도 부탁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생뚱한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그동안 개 한 마리 키운답시고 뒤치다꺼리가 귀찮아 욕도 해대고 새끼를 낳았을 때는 구박도 많이 했다. 개장수한테 팔아버릴 생각도 했었다. 차마 팔지는 못했지만 대신에 내 편하자고 불임수술까지 강제로 시켰으니 아무리 짐승이지만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저녁나절 마침 올라가는 박씨를 불러 세워 개 단속 잘하라고, 그놈 때문에 우리 개 수술비가 사십만 원이나 들었다고, 지금 죽을 고생하고 있다고 주먹을 흔들며 화풀이를 했다. 아무리 매놔도 줄을 끊고 나간다고 엄살을 피웠다. 망할!
과학은 이성의 줄을 끊고 순리를 거스르며 죄를 짓는 기술인가? 생명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훔치고, 끝내는 낙원을 파탄내고서야 그 질주를 멈추려나? 하느님의 창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죄를 범하는 인간. 왜 하느님은 그런 인간을 만들어 놓고 속을 썩이실까?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