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보며

선물이란

방산하송 2013. 5. 9. 22:49

집 주변에 나무를 심고 나서부터 산새나 다람쥐 등이 마당 안 쪽으로 들어오는 횟수가 부쩍 잦아졌다. 자연의 선물이다. 오늘도 청설모 한 놈이 장독대 주변을 뭐 먹을 것 없나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노루도 잘 안 보이는 것 같더니 다시 뒷밭에 발자국이 보였다. 모두 같이 사는 친구들이니 조금은 피해를 입어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날씨가 화창했다. 이른 아침, 오후에 모종을 옮길 생각으로 고추 밭을 고르고 있는데 큰 길 쪽에서 올라오던 이성룡 어른이 집으로 들어왔다. 뒷산 쪽으로 산책을 가시는 중인 듯, 얼굴을 뵌지 오랜만이었다.

 

"무얼 심을려고 그래?"

"고추 심을 곳입니다. 통 안보이시더니 요즘은 건강이 좀 어떻습니까?"

"늘 그래. 날이 따뜻해서 나와 봤어."

 

작년부터 눈에 띄게 기력이 약해진 표시가 난다. 겨울에도 한 달여 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왔다고 한다. 노환이다. 나에게 논을 판 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집 주변으로 산책을 하면서 이것저것 일러주고 가르쳐주고 도움이 컸는데 나이는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같은 동네 살지만 다른 사람과는 달리 진심으로 마음을 써주시는 분인데 걱정이다. 산 위쪽으로 올라갔는가 했더니 얼마 뒤 아마 산나물인 듯 손에 뭘 캐 들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집으로 들어오셨다.

 

"뭘 캐 오시는가 봅니다."

"꽃나무."

"무슨? "

"함박나무여. 한 번 심어 봐."

 

산나물을 몇 잎 뜯다가 함박나무 어린 것이 보여 캐 오신 모양이었다. 잔뿌리를 다치지 않게 잘 캐왔다. 나무를 심는 모습을 여러 번 보시더니 일부러 캐 온 것 같았다. 너무 반가웠다. 꼭 한 그루쯤은 구하고 싶었는데, 파는데도 없고 선뜻 캐러 가기도 그렇고 아쉬웠는데 뜻밖에도 가만히 앉아서 함박나무를 얻다니 이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나는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졌다. 함박나무를 알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더욱이 어린나무는 쉽게 구분이 안 되는데 어떻게 찾았을까? 오래전부터 이 동네에 살았으니 있는 곳을 알만도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찌 나무를 캐다 주실 생각을 했을까?

 

농사를 안 지으니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이것저것 챙겨주시기는 했지만 나무까지 얻게 될 줄은 몰랐다. 기분 좋게 늦은 점심을 먹고 화단 끝자락에 앉아 봉숭아 씨나 뿌려볼까? 하고 호미로 땅을 파고 있는데 이번엔 연못 쪽으로 들어오는 이성룡 어른이 보였다. 또 손에 어린 나무 두어 개를 들고 와 건네주었다. 작은 제피나무 두 그루와 호두나무였다. 제피나무는 산채를 해다 심어 볼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던 터였다.

 

"제피나무 좀 큰 게 있었으면 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거름 주면 금방 커."

"산에 호두나무도 있던가요?"

"새가 물어다 놨겠지. 마르기 전에 얼른 물에다 담가 놔."

 

뿌리 마른다고 물에 담그라고 재촉을 한 뒤 집 입구 쪽에 심으면 좋겠다고 자리까지 살펴주었다. 아침나절 함박나무를 받고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는지 오후 산책길에 나무를 더 캐 오신 모양이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나무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무를 심으면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참견이나 하고 말들이 많았지만 이 분은 내가 야산의 흔한 나무도 되는대로 같다 심고 또 좋아하는 것을 보고 괜찮은 나무를 하나 캐 줘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마음이 고맙고 감사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흐뭇하고 즐거운 선물을 몇 번이나 받아보았을까? 그야말로 아무 대가도 부담도 없이 그냥 따뜻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 아는 이나 동료, 제자들로부터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받아 보았지만 이런 느낌은 드물었던 것 같다. 크던 작든 다소의 부담감이나 마음의 빚으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설사 아무 조건이나 요구가 없다고 하더라도 돈이 들어가는 선물이란 다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크게 힘들거나 지출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가 좋아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작은 수고로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그리하여 화창한 봄 날씨처럼 저절로 환해지는 마음을 서로 간에 느끼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이란 대체 무엇일까?

 

무엇보다 즐거운 선물이란 평소에 서로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거나 느끼고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무엇인가의 대가로, 면피용으로, 입막음으로, 의례적이거나 마지못해 하는 선물이란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평소에 안부 전화 한 통 없는 사람이 무슨 때라고 고가의 선물을 보낸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사실은 마음이 가장 큰 선물이다. 선물이 꼭 물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목마른 사람에게 건네는 물 한잔과 같은, 자신에겐 별 문제가 아니지만 상대방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무엇인가를 흔쾌히 나누어 주는 것도 훌륭한 선물이고,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이 고객에게 건네는 친절한 말씨나 설명, 자상한 서비스도 곧 훌륭한 선물이다. 곤경에 빠진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나 외로운 사람에게 보여주는 작은 관심, 상처 입은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같은 것도 대단히 훌륭하고 바람직한 선물일 것이다.

 

언젠가 어린 제자가 사 준 분필집게를 기억한다. 부담이 가지 않은 작은 선물이었지만 나는 큰 마음의 울림을 맛보았다. 과자 한 통 값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 마음이 고마웠던 것이다. 결국 선물이란 상대에 대한 신뢰와 감사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며 상호간의 소통과 이해를 원활히 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마 좋은 선물은 받는 이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도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선물이란 정당한 규칙이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그것을 벗어난다든지 벗어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고받는 선물이란 결코 선물이 아닐 것이다. 선물을 빙자한 부정한 물건이며 그릇된 마음의 표시일 것이다.

 

오후 내내 고추 모종을 심고 저녁이 다 되서야 나무를 심었다. 어떤 자리가 좋을 지 한참이나 고민을 했다. 함박나무는 집 뒤쪽에 있던 떡갈나무를 담벼락 위로 옮긴 뒤 심었고, 제피나무 한 그루는 장독대 뒤에, 또 한 그루는 동쪽 담 중간 턱에, 호두나무는 하우스 옆 담 밑에 풀 베 놓은 것들을 걷어내고 자리를 잡아주었다. 어둑해진 소나무 아래쪽으로 일을 마치고 내려가던 동네 할머니가 한마디 했다. 엔간히 해요. 일 많이 하면 골병들어.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