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어머님을 여의고

방산하송 2013. 6. 23. 13:38

그렇게 가실 양이면

무엇하러 저리 쌓아 놓으셨을까?

치워도 치워도 나오는

고단한 짐

망연히 앉아서

그러나 생각해 보니

흔쾌히 옷 한 벌 사 드린 적 없는

이런 민망스러운 일이 있나?

 

기울어진 문턱

낡은 창고 구석마다

땀으로 거둔 눈물같은 곡식들

해마다 걸러낸 된장, 간장, 고추장

때 되면 얻어먹기만 했을 뿐

그 수고

변변히 인사도 못 드린

이런 불충 또 어디 있을까?

 

미처 챙기지 못한

신발을 태워 드리고 돌아오는 길

빈산에 뻐꾸기가 울고

온 몸을 휘감는 후회

다니러 오시기만을 고대했을 뿐

찾을 줄은 몰랐으니

제 몸밖에 모르던 어리석음

이제 와 가슴을 친들

어디 가서 무슨 면목으로 용서를 빌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서울에 사는 막내 여동생 집에 다니러 가셨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한지 사흘만이었다. 여든의 나이셨지만 작년 초까지만 해도 정정하셨는데, 올해 들어 다소 몸이 안 좋다는 말씀은 있었으나 뜻밖의 일이었다. 남원의료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하여 청계공원에 아버님과 같이 모셨다. 별 어려움 없이 무사히 큰일을 치렀으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아직도 황망하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힘들고 험난한 생을 사시고 이제야 그 짐을 더시었다. 섭섭하고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편안한 세상으로 가셨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까지도 자식들 때문에 한순간도 마음 편히 지내기가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닐테니 당신의 업보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인고의 세월, 무겁고 힘든 짐이 아니었겠는가? 결국 이제서야 그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병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참으로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미안함, 송구스러움, 늘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던 당신에 대한 원망도 이미 부질없는 회한일 뿐이었다. 내가 시골로 이주한 다음에도 결코 편한 마음으로 집에 오시지 못하는 그 어두운 그늘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만스럽게 생각했었던 점이나,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소홀히 했던 점들이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한 때는 형제들의 구차한 삶이 마치 당신의 내림인 것만 같아 탓을 한 적도 있었다. 신중하기 보다는 감정적인 결정이 앞서고 귀찮으면 그냥 회피해버리는 면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우제를 지내고 당신이 지으시던 밭을 둘러보고 난 뒤 늦은 밤 귀가하는 차안에서 나는 그동안의 불효에 대한 미안함으로 온 몸이 저려옴을 느꼈다. 몇 번 가보기는 했지만 직접 심으신 작물과 밭고랑을 둘러보니 그 많은 고랑을 언제 다 지으셨는지,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나는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혼자되신 후에도 그대로 농사를 지으신 것은 오로지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 주고 또 남는 것은 보내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내가 밭농사를 지어보니 그것이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는데 나는 늘 내 집으로 오시기만을 부탁했을 뿐 그리고 일을 줄이시라는 말만 했을 뿐 힘들 때 직접 찾아가 도와줄 생각은 못했으니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어차피 인생이란 게 언젠가는 죽게 돼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섭섭하고 아쉬운 점은 말할 수가 없다. 아버지와 나란히 모신 자리는 좌향이 좋고 형세도 잘 갖추어져 있으며 편안한 느낌이 들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부디 아버님, 할머님과 만나 편히 잘 지내시기를 빈다. 이제 두 분 다 돌아가셨으니 남아있는 형제들이나마 우애하며 잘 지내야 할 텐데 그러나 그것도 서로 간에 여의치 않은 문제들이 있어 다소 우려가 된다. 무엇보다 내가 좀 더 잘 해야겠지만 집사람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 마음에 걸린다. 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은 어쩔 수 없다지만 늘 염려를 끼치고 동생들에게도 좋지 않게 비쳤으니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머님의 물건을 들어내고 집안을 정리한 뒤 늦은 밤까지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는 점차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 앞가림만 하기에도 급급한 어려운 형편들이지만 그래도 화해와 용서는 산 자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