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는 왜 윌든을 떠났을까?
윌든은 자연속에서의 생활과 사색, 경험에 대한 서술이지만 문학적으로서의 가치가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으며, 자연과 삶에 대한 경건함과 인간의 본성을 일깨워준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생각과 인문학적인 향기는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현실적이지 못한 점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시기에 읽게된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과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은 그런 점에서 윌든과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는데, 중반 이후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책들이다. 특히 나무를 심은 사람의 숲을 만들어낸 집념과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는 과정은 대단한 경이로움이었고, 니어링의 자연주의적 삶은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철저한 지침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니어링의 경우처럼 철저한 자연주의적 삶을 산다는 것이 과연 나의 여건과 환경에서 어느정도나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그것은 내 삶에 온전히 동조해 줄 수 있는 헬렌이 없었고, 기존의 삶을 일시에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없었고, 무엇보다 아이들 문제가 있었다. 이미 기존의 사회 환경에 물들어 있는 아이들을 나의 생각대로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고 더군다나 집사람을 설득한다는 것은 요원하였다.
모든 것을 일시에 뿌리치고 나의 생각을 실행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생길 갈등과 주변 사람들의 희생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느정도 여건이 될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늦었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러나 별 무리없이 결정된 것은 그만큼의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덕분에 오랜시간에 걸쳐 철저한 마음의 준비를 해온 셈인데, 한가지 귀농을 결심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소로우처럼 주변과 단절된 생활은 장기적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웃과 동화되지 않는 독립된 삶이란 한시적이거나 지극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니어링과 같은 철저한 자연주의적 삶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귀농이나 귀촌 등 여러가지 형태의 귀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러한 것 들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철저한 자기 신념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생활과 문화와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수입과 소비문제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다면 곧 실패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나의 경우는 어느정도 연금 수입이 있으니 다행스럽기는 하나, 어떻게 보면 그 여유가 완전한 자연주의적 삶을 사는데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은 이러한 것들과 관련해 반드시..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유기농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태주의만를 고집할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고 사정이 다를 것이다. 철저히 자연주의적 생활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적당한 농사일로 생활을 유지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단순히 자연 속에 정착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일이다.
시골 생활이란 어차피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불편한 생활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기왕에 귀농한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해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조성과 행정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농촌 지역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러한 지원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만 인구의 유입이 가능해진다면 차츰 자생적인 자족 기능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국가의 균형된 발전을 위해서나 앞으로 발생할 인구 감소나 연령 분포의 변화 추세 등을 고려해 볼 때도 미리미리 이런 부분에 대한 계획과 준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원이 어느정도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시골생활의 일상적인 부족함은 어쩔수 없는 부분이다. 스스로 감수하고 헤쳐나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소로우처럼 살 수는 없다. 니어링처럼 살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과 사상에 영향을 받고 그러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우리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것 보다도 훨씬 유용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인구를 늘리고 수명을 늘렸으며 풍족하고 편리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자원을 더 빨리 소모하고 자연을 더 빨리 파괴하여 결과적으로 지구를 더 빨리 황폐화 시키지 않았는가.
2010. 09. 27. 송하산방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