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정치(박동천 교수의 정치평론을 읽고)
정국이 어수선하다. 촛불집회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시국선언도 잇따른다. 국회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느라 시끄럽고 바쁘다. 그럼에도 정작 정치의 중심이어야 할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정책을 중심으로 한 성숙하고 차분한 정치는 실종되고 거리의 정치와 협잡과 파렴치한 꼼수와 변명과 아우성이 넘쳐난다. 왜 이리 우리의 정치는 비열하고 지저분한가? 우리의 능력과 자질이 그러한지, 태생적인 한계가 그것뿐인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우리의 정치적 현실은 항상 극과 극을 달리는 첨예한 대치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우리뿐 아니라 한반도에 존재하는 남북 양 쪽의 권력이 동시에 처해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남이나 북이나 체제는 다르지만 가장 저급한 형태의 정치구조를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자본주의의 가장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형태로, 북은 사회주의 중에서도 가장 교조적이고 전근대적인 형태로 서로 쌍벽을 이루며 대치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상호간에 적대적 긴장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성하고 이것을 적절히 이용하여 정치적 권력을 유지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 순간도 종북이니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말들이 정치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북한의 권력자들에 대해 인민을 볼모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우리도 사실은 지금까지 시민을 인질로 정치를 해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정치의 소용돌이도 바로 권력자들이 벌이고 있는 그러한 정치적 인질극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일반 시민들은 정치혐오에 빠지게 되고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 정치적 무관심이 지속되면 결국 정치는 권력자들만의 것이 되고 시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되고 말 것이다. 위정자들은 오히려 그것을 노리고 있기도 하다.
과연 민주주의라는 정치형태가 우리에게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지, 그러한 능력이나 토양을 지니고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의 국민적 속성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발언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의 말들이 뼈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무리 현대정치에서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공약이란 후보를 포장하기 위한 선전이라고도 하지만 선거전과 후의 행동과 말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실망감과 사회정의나 민주주의 발전, 민생의 보호, 복지에 대한 구호들이 하루아침에 무색해지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참으로 암울하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북대의 박동천 교수는 선거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언급했지만 그 선거의 근본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는 짓을 반복하고 있는 어리석은 대중이라고 자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대의 정치에서 선거공약은 지키기 위한 약속이 아니라 후보라는 상품을 더 좋은 값에 팔아먹기 위한 광고문구일 뿐이다. 누가 당선되든지 내세운 공약 중에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못 지킬 수밖에 없다.’
그는 선거공약의 허구성을 이렇게 지적하고, 정당 간의 정책 경쟁이 공론 장에서 평가받게끔 만듦으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은 정책이 개발되도록 한다는 정당정치의 이념을 아직도 강의실에서나 되 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무능의 표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탄식하였다. 누구의 무능인가? 정치인들의 무능이 아니라 시민의 무능이라고 자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정치적 공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이 우선되는 곳에서는 당연히 정책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선동과 조작, 흑색선전과 바람몰이가 횡행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
정치적 지형이 이러하고 정치적 토양이 또한 그러하니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해방 후 정치적인 상황이나 민주주의 내용이 제도적으로는 발전했으나 질적으로 더 열악해지고 교묘해 졌다는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이루어진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을 바라보면 어떻게 이런 파렴치한 일이 오늘날에 와서까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는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데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엉뚱한 변명과 덧씌우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박동천 교수는 부도덕한 권력자와 무책임한 인민이 있는 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민주정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를 묻는다는 것은 무력하고 감상적인 한탄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자가 인민을 인질로 취급하면서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한다면, 이런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 군주정이든 민주정이든 이것은 권력의 근본적인 속성 가운데 하나다. 권력이 자기 보전을 위해 인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면, 그런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열쇠는 오직 인민만이 가지고 있다. 인민이 나서서 권력의 버릇을 고치지 않는 한, 권력의 못된 작태는 계속되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 그러하다면 시민의 각성과 견고한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지난한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민이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무척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권력에 빌붙어 출세만을 지향하는 사람들, 당장 자신에게 위해가 닥쳐오지 않는 한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들, 현재의 권력이 아무리 못돼먹었더라도 혁명의 혼란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권력에 반대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애당초 겁을 집어 먹은 사람들이 대개는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정치적 혼란은 대통령이나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해결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권력기관의 선거개입을 인정하고 사과한 뒤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아마 여론은 가라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길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여론조작의 기법상 극적인 타이밍을 노리기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보았다. 여론을 누를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그 여지를 시험해 보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으며 여론을 도저히 누를 수 없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그때 가서 사과하고 적당한 선에서 꼬리를 자르면 되리라고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정치적 혼란은 권력을 위임받은 세력이 국가의 발전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생성해 보려는 의욕은 팽개치고 현재의 기득권 체제를 수호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일에만 정신을 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라면 이런 식의 소모적인 정쟁을 오히려 가급적 오래 연장하는 편을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과 그의 세력들이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란 시장을 지배하는 권력을 보호하거나 강화하는 방편으로서 국가 권력을 최소화하겠다는 이념이며, 자본과 조직에게 짓눌려 신음하는 작은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권력이 시장의 강자에게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조직의 전횡에 항거하는 개인들을 불순분자로 몰아 탄압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벼랑 끝 전술은 시민을 인질로 한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대중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사악한 정권은 늘 이러한 유혹에 빠지게 되고 지금의 상황도 박 교수의 표현을 빌린다면 전 정권이 저지른 벼랑 끝 전술의 결과이며 인질 정치의 후유증인 셈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지금의 정권도 역시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대중의 판단이고 선택이다. 지난 정권도 대중의 선택이었으며 이번 정권도 우리의 선택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그 정치세력의 인질로 잡혀 다른 선택이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 주술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이와 같은 상황은 늘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후진적 정치란 부도덕한 위정자들과 어리석은 대중이 만들어낸 합작품이 아니겠는가?
이 대명천지에 아직도 종북이니 빨갱이니 매카시즘적 이념장사와 지역차별을 이용한 정치적 선전과 여론몰이가 횡행하고 있고, 다수의 대중은 거기에 붙잡혀 맹목적인 추종을 하고 있으니 우리는 언제쯤이나 이런 악다구니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저열하고 사악한 정치가 정치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인 수치가 아니겠는가? 왜 우리는 좀 더 도덕적이고 정직한 지도자나 정치가들을 갖지 못하는지, 청렴하고 강직한 관료체계, 현명하고 정치적 소신이 뚜렷한 시민 대중들을 만나보기 어려운지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우리세대에 전향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인지, 그런 희망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이 와중의 보궐선거의 결과를 보면 역시나 하는 자괴감에 다시 빠져들게 된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책임정치이다. 그러므로 책임을 지거나 책임을 물어야할 일을 간과하고 지나간다면 정치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유지될 수가 없다. 아니 유지할 이유가 없다. 정치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해야 할 일을 방기하게 될 것이다. 정치의 기본이 무너지게 된다면, 정치가 바르고 정당한 방향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면 무슨 주의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이 과연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잘못된 정치행위나 권력의 남용은 여야 구분 없이 보수든 진보든 먼저 비판하고 책임을 묻고 고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정치고 권력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