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통신

무대에 서다.

방산하송 2013. 11. 19. 00:07

 

 

소리에 입문한지 네 계절이 되어간다. 총무인 임선영씨가 남원시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생활체육이나 평생 학습활동에 대한 발표회가 있는데 우리도 출전을 할 것인지 의견을 물었다. 남원에 있는 시립 문화원에서 전체적으로 모여 그동안 배운 기량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확인 겸 점검 차원의 행사로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발표를 해야 지원이 따를 것이고 무대에 서봐야 한 가지라도 제대로 습득할 것이 아니냐고 하여 나가기로 하였다.

 

그래놓고 보니 지금까지는 앉아서 소리만 했으나 공연을 하려면 한복을 갖춰 입어야 하고 부채도 쓸 줄 알아야 했다. 모든 것을 접어놓고 발표할 부분만 집중적으로 연습을 하였다. 물론 서서 손짓도 하고 정해진 대목마다 부채를 치켜들거나 펴들고 흔들어 했다. 그것도 여럿이 손발을 맞춰서 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제대로 된 부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 나보고 부채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백선을 주문해 글을 썼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글귀를 찾아 썼다. 진철씨에게는 심여청산(心如靑山) 을 선영씨에게는 채근담에 나오는 승거목단 수적석천(繩鋸木斷 水滴石穿)을 작은학교 학생인 동현이에게는 한글로 된 글을 선물했다. 계임씨는 선생님 부채를 빌리기로 했다. 바빠서 연습을 못한 회장인 달이엄마는 발표는 안하고 그날 같이 참석만 하기로 했다.

 

 

우리가 발표할 부분은 수궁가 중 별주부가 토끼를 잡으러 물 밖으로 나와 산천경계를 살피는 대목으로 일명 '고고천변' 이다. 수궁가에 나오는 눈대목 중 하나로 소리가 경쾌하고 유려한 대목이다. 소리 가사는 모두가 한자성어 투성이고 대부분 중국의 유명 지명을 빌려다 쓰고 있는데 그것을 지금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리만 대체로 우리말인데 첫 부분을 나보고 하라고 했다. 아마 목소리가 크다고 그런 모양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그 때여 별주부는 저희 모친과 작별 허고 수정문 밖 썩 나서서 산천경계를 살펴보며 나오것다."

어쨌거나 첫 부분이라도 제대로 해야 사람들이 주목을 할 것 같아 열심히 연습을 했다. "아니, 전문가도 아닌데 좀 틀리면 어쩔까니?" 했더니 남들 앞에서 망신스러워 안 된다고 나무랬다. 그래도 가르치는 사람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무대에 선다는 것이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지금껏 무슨 발표를 한다고 이렇게 큰 무대에 서 본 경험은 처음이다. 시골에 들어와서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나니 우습기도 했다. 

 

첫눈치고는 제법 많은 양이 이틀이나 내렸다. 발표 날, 우리는 일찍 모여 리허설에 참가를 했다. 밴드연주, 발리 춤, 노래 모임, 스포츠댄스 등 20여개의 다양한 팀들이 출전을 했다. 동네 어르신들 모임도 많았다. 잠시 무대 위에 올라가 마이크와 위치를 점검하고 소리를 내 본 뒤 점심을 먹었다. 오후 본 공연을 하기 전 두어 번 입을 맞추어본 뒤 여섯 번째 차례가 되어 무대에 올라갔다. 모두 별 실수 없이 끝까지 고고천변을 다 마쳤다. 진철씨는 입에 침이 고여 애를 먹었다고 했지만 평소보다 오히려 더 목청이 힘찼고 손발도 잘 맞았다. 사회자가 예향의 고장에서 소리를 연습하는 훌륭한 팀이라면서 박수를 한 번 더 청해 주었다. 방청석에서 들었던 달이엄마나 선생님의 친구 분이 예상외로 청이 좋고 소리가 흩어지지 않아 잘 어울렸다고 놀라워했다.

 

뒤풀이를 하러갔다. 시에서 지급해 준 식대가 제법 남아 있었다. 남원의 막걸리 집은 밑반찬이 푸짐하였다. 술맛도 뛰어났다. 모두 기분이 좋은지 즐겁게 한 잔씩 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노래방으로 가자고 하여 실로 수년 만에 흥겨운 가무를 즐겼다. 나오는 길에 한옥을 개조한 그럴듯한 찻집이 보여 내가 차를 사겠다고 들어가자고 하여 따뜻한 대추차를 한 잔씩 했다. 맛이 있었다. 밤이 늦어서야 귀가를 하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총무 선영씨가 내가 소리 팀에 들어온 뒤부터 분위가 다시 활발해졌다고 했다. 나는 늘 뒤치다꺼리를 마다하지 않는 총무 덕분에 소리 팀이 유지되는 것 같다고 수고를 치하해 주었다. 즐거운 하루였다.

 

처음에는 소리배우겠다고 시작한 사람이 수십 명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 떨어져 나가고 대여섯 명만 남아 그것도 들쭉날쭉한데 내가 들어가 그래도 조금은 분위기가 살아난 모양이었다. 소리가 어렵고 바쁘다는 핑계라고 하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계속 소리 공부를 할 생각이다. 한 번씩 마음껏 소리를 내지를 수 있는 기회가 아무 때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음 주에는 대금 발표회도 있다.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연주는 나와 다른 사람 둘이서 대표연주를 하고 나머지는 허밍을 하는 형태로 한다고 했다. 아마 소리가 괜찮다고 생각해서 시키는 모양인데 조금 부담스럽다. 여럿이 묻어서 하면 표시가 안 나지만 한 둘이 하면 실수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왕 배우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잘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부지런히 연습해서 내년에는 중급반으로 올라가야 할 텐데 잘 될지 모르겠다. 연주가 어느 정도 되면 블로그에 내 연주파일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