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의 히스토리
마치 모자란 달처럼, 이월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달이었다. 일 년 중 가장 심심하고 볼 일 없는 달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는데 그러나 농사를 짓다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음력으로는 정월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 시기이고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벌써 바람의 냄새가 다르고 아직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았지만 날이 좋으면 제법 햇살이 따뜻하고 땅도 서서히 풀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새 농사를 지을 계획을 세우고 거름을 내는 시기가 바로 이 때다. 한 해 농사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 이월은 유난히 더 바빴다. 설을 지내고 나서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오동나무 병풍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늘 걸리는 다른 일들, 이 월초 우선 장 담글 시기가 다가왔다. 장 담그기 며칠 전 메주를 씻어 말려 놓은 뒤 사흘 전부터 독을 씻어 말리고 소금물을 풀어 놓은 뒤 다른 준비도 해 놓았다. 혼자 하려니 만만치가 않았다. 당일은 짚으로 독을 소독하고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부은 뒤 고추, 숯, 옻나무를 넣고 입을 한지로 덮어 봉했다. 두 말들이 독 두개다. 갑오 정월 십일 장이라고 적었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 담근 것이다. 아무쪼록 맛있는 장이 완성되기를...
김용현 선생이 부탁한 산내 한의원 현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15일 개업이라고 하니 그전에 만들어 줘야 할 것이었다. 산청 김선생한테 얻어온 나무를 자르고 겉을 다듬은 뒤 글을 썼다. 이런 글을 파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얘기를 들어본 즉 제법 생각이 괜찮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어 현판을 선물하기로 한 것이다. 가까운 곳에 한의원이 있으면 건강관리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삼사일 공을 들여 판 뒤 실외에 걸 물건이니 올리브유를 발라주었다. 색이 진해졌지만 그런대로 봐줄만한 물건이 되었다. 김용현 선생더러 그 친구를 데리고 오라고 했더니 저녁에 집으로 같이 왔다.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람이 괜찮아 보였다. 도시를 놔두고 시골로 들어오겠다고 결심한 것만 해도 대견했다. 현판을 실내에다 걸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현판은 현관에 걸고 나중에 실내에 걸만한 글귀를 하나 파주겠다고 했다. 나무 값으로 오만 원을 받았다. 이것은 나무를 얻어온 김선생 술 한 잔 대접할 비용이다. 개업식 날 오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드디어 병풍 일을 시작했다. 먼저 연습 삼아 산중신곡을 초벌로 써 봤는데 생각보다 보기가 괜찮았다. 대체로 처음보다 글이 잘나오는 경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몇 자만 손을 본 뒤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앞글을 써놓고 보니 제사용 병풍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뒤에도 글을 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비어천가 이장을 한자로 썼다. 일이 두 배로 늘어났다. 본격적으로 칼을 든 뒤에는 한 오륙 일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몇날 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밤을 도와 작업을 했다. 드디어 1차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 완성이 된 뒤 거실에 늘어놓고 쳐다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다음엔 물감을 입혀야 하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마침 울산의 황선생님이 명퇴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선물로 작은 소품을 하나 파서 줄 생각이 났다. 우선 그것을 파고 만들었다. 수이정(守以靜). 마음을 정숙한 곳에 두어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는 의미로 한유가 썼던 말이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욱 알차고 보람 있는 인생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편지를 덧붙어 집사람 편으로 전달했다. 고맙다는 답이 왔다.
그 사이 논에 거름을 낸다고 영수 씨한테 연락이 왔다. 쌀겨를 뿌리고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는 작업이었다. 따로 거름이나 비료를 안 하는 대신 수확한 벼의 양만큼 쌀겨를 되돌려 줌으로써 가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견 이해가 가는데 효과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쌀겨도 얻고 트랙터로 논 갈아주는 값으로 하루 일을 거들어 주어야 한다. 아침부터 쌀겨를 칠십여 부대 차에 올리고 논에 내리고 다시 뿌리는 작업을 도와주고 우리 논에 열 부대를 얻어와 뿌려 놓았다. 물에 넣으면 괴고 가스가 차기 때문에 적어도 모심기 두 달 전에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적당한 시기다. 자기 논을 갈고 우리 논까지 갈아준 뒤 늦게 점심을 얻어먹었다.
곧 다음 날 부터 파 놓은 글자에 물감을 들이는 일을 시작했다. 만 사흘, 다시 식음을 잊다시피 작업을 감행했다. 몇 군데 손을 보고 잔손질을 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번에도 한 오일 걸린 셈이었다. 다시 거실에 세워놓고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힌 것 같고 대견스러웠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다. 3수에 특히나 정이 간다.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하랴. 말삼도 우슴도 아녀도 못내 됴하 하노라.' 나의 처지에 가장 위로가 되기도 할 뿐 아니라 글자를 파다가 잘못되어 수리를 한다고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우리 동네 논둑, 밭둑 태우는 날이라는 이장의 방송이 있었다. 쌓아 두었던 고춧대, 콩대, 들깨, 참깨 턴 것, 이런저런 것까지 집 앞 밭 가운데 모두 날라놓고 불을 붙여 한 바탕 청소를 하고 난 뒤, 점심때부터 만들어 놓은 오동나무판을 마루에 내 놓고 페퍼로 닦기 시작했다. 그것도 몇 시간 걸렸다. 겉이 마무리 된 뒤 아마유를 발랐다. 냄새가 좋았다. 모두 들어다 뒤꼍 그늘에 세워놓고 보니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두 손 들어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올 겨울 만들어야겠다고 계획했던 것들이 대부분 완성이 된 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남원 표구 상에 맡겨 병풍으로 완성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좀 쉬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이월이 다 갔다. 며칠 안 남은 이월이 아쉽다. 이제 집 안에서 머물기보다 밖에서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얼마 전 음식물 처리기가 고장 나 본사에다 연락을 했더니 물건을 택배로 보내라고 하면서 '히스토리'를 써주면 참고하겠다고 하여 속으로 웃었다. 사전적으로는 어떤 역사나 일의 과정, 이야기의 내용이나 줄거리 등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고객에게 그런 말을 함부로 쓰는 직원의 객기가 다소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나도 히스토리라는 말을 쓰고 싶다. 나의 갑오년 이월의 히스토리라고. 혼자서 장을 담근 일이며, 고대하던 대금을 만나 첫날은 끌어안고 같이 잠을 잤던 일이며, 병풍을 판다고 밥을 굶어가며 밤중까지 나무를 파던 일이며, 시래기를 삶던 일이며, 남원시내에서 술 한 잔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주단속에 걸려 되는대로 훅 불었더니 잘 가시라고 해서 간담이 서늘했던 일이며, 은달래 찻집에 가서 젊은 친구한테 드디어 원두커피 내리는 노하우를 얻어들은 일이며, 시시콜콜한 일들로 채워진 나의 이월은 그러나 대견하고 기쁜 날들이었다고.
이월을 보내며.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