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의 하우스 콘서트
거실 한켠에 병풍을 치고 무대를 만들어 놓았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추임새도 넣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열기가 대단했다. 고수를 맡은 친구도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섬세하고 반주도 적절하였다. 별칭이 공룡이다. 춘향가 중 가장 어렵다는 십장가를 절정으로 치닫고 난 뒤 하우스 콘서트는 끝이 났다. 소리를 부른 은희씨가 땀을 흘리며 인사를 했다. 한 시간여 소리를 했으니 힘들만도 하다. 집주인이 뒤풀이 준비를 하는 동안 잠시 자리를 정리하고 휴식시간을 가지겠다고 했다. 대부분 아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늦게까지 어울리기는 무엇하여 주인에게 귀띔만 하고 일찍 나왔다. 밭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저녁도 먹지 못하고 참석했던 까닭이다.
이 하우스 콘서트란 산내의 귀농인들 몇몇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씩 돌아가며 자기 집에서 음악회를 여는 것인데 지금은 중신과 은희라는 젊은 부부가 일 년 기한으로 춘향가를 공연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변사또가 서울에서 내려오는 도정과 관아에 도착하여 이런저런 관속과 출납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기생점고를 하는데 춘향이가 잡혀와 곤장을 맞는 대목까지였다. 썩 뛰어난 소리는 아닌 것 같았으나 그래도 젊은 부부가 연습을 해가며 일 년 동안 춘향가를 완창 하겠다는 것은 상당한 의지와 의욕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본래는 다섯 시간 정도가 걸리는 것이니 부부가 돌아가며 같은 대목을 번갈아 부른다 하더라도 직접 배워가며 부르는 사람들로서는 예사 공력이 아닐 것이다. 특별히 따로 사사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공부를 하는 모양인데 그 의지가 가상하다.
집주인인 창제씨는 한생명 매장에 근무할 때부터 알게 된 사이였는데 내가 소리를 배우는 것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번 봄에 합류를 했다. 아들과 딸이 하나씩인데 막내인 아들을 실상사 작은 학교에 보내면서 아예 가족이 몽땅 이주했다고 한다. 이번에 자기 집에서 모임이 있다고 일부러 초대를 하는데 안가기가 그래서 참석을 했다. 지난 해 상황 마을회관 근방에 직접 집을 지어 입주를 했는데 가서보니 생각보다 아담하고 깔끔하였다. 일솜씨도 있고 아주 텁텁하고 정감이 가는 사람이다.
이곳 산내는 귀농의 메카답게 그들이 모여 만든 모임과 문화적 활동이 대단히 활발하다. 하우스 콘서트도 그런 모임 중의 하나다. 그러나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이런 모임이 좋은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번거로운 일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아마 그 친구들은 이런 자리를 통해 서로 즐기기도 하고 무언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위안을 삼기도 하겠지만 이런 모임을 자꾸 만들어 부산하게 모이고 흩어지고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소위 귀농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 마치 유행처럼 회자되고, 시골에 들어와서도 여러 가지 활동이나 모임을 부지런히 함으로써 그 선택의 당위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직도 도시적 문화와 습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치 특별한 선택을 한 것처럼 자기도취적 삶에 빠져있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알게 된 여러가지 모임과 귀농인들간의 이런 저런 활동들을 살펴 본 바로는 굳이 시골에서는 필요한 것 같지 않은 여러 가지 전시적 모임이나 조직이 너무 많다. 물론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 낯선 시골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보도 필요하고 서로서로 도움도 필요하며, 문화적 기반이 부족한 곳이므로 간혹 의미 있는 모임과 활동도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기본적으로 시골살림과 농사란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세가 아니겠는가? 워낙에 귀농한 친구들이 많다보니 다양한 모임과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본질에서 벗어난 형태의 모임과 활동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우려도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활기있는 자세와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 마음 만은 높이 사줄만 하다. 나이든 뒷방 노인네처럼 산이나 쳐다보며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기에는 그들의 나이가 너무 젊고 도시에서 막 벗어난 자유로운 정신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에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마음이 쉬이 변하지 않고 마지막까지도 잘 유지되어 그들의 인생이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좋은 삶을 이루어나가는데 흔들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를 기다리며.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