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모심을 다 하는 것

방산하송 2014. 8. 14. 23:44

 

 

물가에 피는 꽃이면 물가에 피는 꽃대로

돌이 놓여 있을 자리면 돌이 놓여 있을 만큼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 하고 가면...

-장일순 선생의 '모심을 다 하는 것'-

 

 

산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정년퇴임을 하는데 공적 패를 하나 써 달라고 진즉부터 김용현 선생이 부탁을 하였다. 번번이 사양을 하였으나 재삼재사 부탁을 하였다. 이런 글은 참으로 부담스럽다. 김용현 선생을 통해 그 분이 여느 관리자와는 달리 존경할만한 학교 경영을 했다는 것을 듣기는 하였으나 잘 아는 분도 아니고 미사여구가 들어간 그런 상투적인 글을 선뜻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자꾸 조르는 바람에 적당한 글감이 없을까 생각 끝에 매일미사의 묵상 글을 찾아 보게 되었다. 장일순 선생의 '모심을 다 하는 것'이란 글귀가 있었다. 참으로 옳은 말이었다. 어느 자리에 있든지 자기가 해야 할 몫을 다한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삶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좋은 경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글을 화선지에 써 놓고 김용현 선생을 불러 어떠냐고 물었더니 대단히 좋아하였다. 문제는 그것을 이곳의 특산물인 옻 칠 목기에다 다시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글은 붓글씨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참 난감하였으나 하는 수 없이 공방으로 내려가 고가의 접시에 다시 글을 썼다. 그곳에 있는 물감으로 옻칠이 되 있는 상태의 접시에다 글을 옮겼는데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바탕이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어쨌든 더듬더듬 글을 완성하고 낙관을 그려 넣으니 대단치는 안 해도 봐줄만한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공방 주인이 나중에는 같이 작품을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일언지하에 사양을 하였다. 그저 기회가 되면 다탁 같은 것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면 한 번 들르겠다고만 하고 올라왔다. 여자 분이라고 하니 접시가 잘 어울릴 것 같고 덕분에 나도 좋은 글귀를 얻었으니 이것도 한 인연일 것이다. 퇴임하는 그 분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빈다.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