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보며

담배를 어찌할꼬?

방산하송 2014. 9. 28. 21:04

담뱃값 인상이 예고되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정부의 발표는 참 교활하고 위선적이다. 그들의 장난질에 놀아나기 싫어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으니 답답한 일이다. 

 

벌써 10여년도 지났지만 진즉에 몸에 경고가 있었음에도 그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다.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결심이야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다. 결국 담배 값만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남게 되었다. 조금 줄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담배를 줄이는 것도 머리 아프지만 문제는 이런 식으로 담배 값을 올리니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지자체장들이 정부에서 공약한 복지예산을 지원해주지 않아 모든 지방정부가 디폴트에 처할 상황이라고 대대적인 항의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부유한 자나 법인세 같은 것에는 손을 대지 않고 허약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그것을 보충하겠다는 술책을 생각해 낸 것 같다. 동시에 주민세까지 두 배 이상 올리겠다고 하니 속셈이 훤히 내다보인다. 땅집고 헤엄치기 쯤 되는 수법이다. OECD 국가 중 담배 값은 낮고 흡연율은 높은 대표적인 나라라고 하지만 왜 그것을 지금에 와서야 급작스레 대대적으로 인상해야 하는지 의문스럽지 않은가? 일설에 의하면 담배 값 인상과 흡연율 감소에 따른 상관관계에서 세수의 극대가 이루어지는 시점이 4,500원 수준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증세 없는 복지가 어찌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이 정부는 선거 전에 증세 없이 복지를 실천하겠다고 큰소리 쳤다. 그러나 지금은 폐기하거나 오리발을 내밀거나 집행을 미루는 등 대부분이 헛말이 되고 말았다. 가뜩이나 재벌이나 자본의 횡포가 심해지고 불평등은 확대되는데 지속적으로 규제를 풀고 부담은 줄이겠다고 하니 애초에 경제활동과 관련하여 법안과 규제를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던가? 더군다나 돈이 있는 곳에서 세금을 거두지 않는다면 어디서 예산을 마련할 것인가? 기껏 생각해 낸다는 것이 애꿎은 서민들 등치는 일에만 이골이 났으니 그들의 눈에 일반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소리밖에 더 되는가? 권력과 자본이 한 통속이 되어 사람들을 밀어 붙이고 있다. 도대체 어느 지경까지 가야 끝장이 날 것인지 심히 우려스럽다.

 

최근에 프랑스의 경제학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특히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모양인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지금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격심한 소득격차에 시달리던 19세기 말 수준과 비슷해졌다고 한다. 70-80년대 한 때 세계적인 경제성장으로 그 차이가 줄어든 시기가 있었지만 금세기 들어와서는 다시 급격하게 그 균형이 깨어지고 있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 소득이 높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집어 삼키고 있다는 말인데, 더 큰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그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지적이 아니라도 이미 자본주의 속성이란 지금껏 극명하게 증명되지 않았던가? 무슨 경제이론이니 법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자본이 노동을 압도하는 상황에서는 결국 자본이 사람(노동은 곧 사람이다)을 지배하게 되고,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자로 구분되는 불평등한 상황은 점점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뻔 한 이치다. 현재 그런 상황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는 이런저런 수식을 이용해 자본 수익률과 자본 소득배율을 계산하고 그것을 낮추기 위해서는 누진세를 통해 자본의 소득률을 낮추고 국제사회의 공조를 통해 투기자본이나 비정상적인 금융의 흐름을 차단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그것을 이루어 낼 것인가? 이미 정치도 자본의 지배 아래 들어가 힘을 못 쓰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에 걸쳐 거의 자본의 영주시대라고 할만하다. 자본의 독재, 일반시민은 노예의 처지에서 자본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해야 하는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구조가 고착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설사 경제가 호전된다고 해도 그 열매는 자본과 기업의 차지가 되지 서민들은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이제 자본은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 되었고 우리의 운명은 그 손아귀에 잡혀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우리의 보수 정부는 되레 재벌 기업과 자본, 부유층의 세금을 낮추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작 어리석은 시민들은 그것이 곧 자신들의 부담으로 돌아 온다는 사실을 망각한 체 그들의 정치적 농단에 같이 놀아나고 있다. 허울 좋은 낙수론, 지금까지 한 번도 파이가 충분해졌다고 이야기 하는 정부나 기업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허상이다. 아흔아홉 개를 가진 부자가 나머지 한 개를 더 채우려고 가난한 서민의 주머니를 털 때는 꼼짝 못하고 있다가, 아흔아홉이나 되는 과도한 부에 손을  대겠다고 하면(지극히 당연하고 당면한 일이지만) 거품을 물고 역성을 드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공무원 연금 문제만 나오면 마치 배 아픈 사촌처럼 질시어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왜 소득이 높은 상위층과 재벌기업의 탈세에는 무관심한가? 그와 같은 시민들의 어리석음과 비겁하고 얄팍한 계산, 이중성이야말로 이런 사태를 불러오는데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을 제공한 자는 바로 우리 자신들인 것이다. 세월호 사태를 두고 놀러가다 죽은 놈들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푸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니 무엇을 기대하랴?

 

이미 우리 사회는 도덕적으로, 법적으로도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 아닌가 보여진다. 청년 실업문제, 아니 취업문제는 너무나 절실하다. 빈곤층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재벌들의 골목상권 침입처럼 모든 돈 되는 곳에는 대기업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불안한 사회환경 속에서 일본이나 서구의 극우 세력이 준동했던 것처럼 소위 어버이 연합이니 일베라는 터무니없는 것들이 설치고, 단식투쟁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조롱이나 퍼붓는 파렴치한 자들이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공권력이 시민을 보호하지 않고 시민을 상대로 자본이나 기업을 보호하는 용역의 역할을 떠맡고 있으니 법치의 기본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모든 시민의 각성과 더불어 자본과 권력의 통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코 자본을 무소불위로 가만 놔두어서는 안 되며 권력이 그 주구 노릇을 하는 것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우선이지 않은가? 자본의 공공성을 회복시켜 자본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본을 지배하고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바로 재앙 그 자체다.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고 견제장치가 있어야 하며 시민의 의사에 반하는 권력은 즉시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바꾸려면 우선 정치가 달라져야 하고 정치인들이 달라져야 한다. 결국 그것은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제발 상식적이고 건전한 정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시민을 더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개인의 이익만큼 사회의 이익도 고려할 줄 아는 건강한 기업인과 기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낙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는 진중권의 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나긴 역사, 우리는 힘든 여정을 희망으로 헤쳐 왔으니 언젠가는 좀 더 나은 사회, 복지와 안전이 충분이 보장되는 나라,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치, 남북 간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한 날이 오지 않겠는가? 필요하다면 저렴한 담배 값 인상도 당연히 가능한 일이다. 어렵지만 담배를 끊는 것은 더 좋은 일일 것이다. 혹 성공할지 아는가? 만약 공정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복지가 앞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세금이 더 들어간다고 해도, 설사 담배 값이 만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는 불공정한 정책에는 결코 찬성할 수 없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어리석은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