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보며

진도 가는 길

방산하송 2014. 10. 16. 02:52

아침 안개가 장관이다. 오늘도 날씨가 좋겠군. 고운 아침 햇살을 바라보다 불현듯 진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무렵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도 재고 벼르고 미루다 얼마 전 남은 유족들마저 철수해야 할 입장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터다. 그리 급한 일도, 가야 할 곳도 없으니 오늘 가면 되겠군. 흠칫 시계를 보니 여덟 시가 덜 되었다. 부랴부랴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베어 물고 카메라와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인월로 나가는 길은 아직도 아침 이슬이 덜 걷혔다. 나무들이 싱싱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길 옆 도로에는 지금도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인월은 여전히 도로 공사 중이다. 공용버스터미널로 서울행 지리산 고속버스가 들어간다. 누구일까? 이렇게 이른 아침 서울로 떠나는 이들은. 나는 진도로 간다. 진도에 다녀와야 한다.

 

진도를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추석 전 신문에 실린 윤구병 선생의 글을 읽고서이다.

"뒤늦게나마 팽목항에 가려고 한다. 유족들에게 엎드려 빌려고 한다. 나를 비롯해 일흔 넘은 늙은이들이 저지른 죄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먼저 내 잘못으로, 어른들 잘못으로 속절없이 죽어 간 어린 넋들에게라도 용서를 빌어야 하겠다. 이제 더는 속이지 않아야겠다."

 

그리고 그 결심의 뒷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즘 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도법 스님과 왜 이 나라꼴이 이 꼴이 되었는가? 주고받던 끝에

“당신 탓이지. 일흔 넘은 늙은이들이 저지른 업보를 뒤에 태어난 사람들이 받고 있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긴. 나는 절에 들어가 천일 동안 엎드려 절해서 살풀이 할 테니까 당신은 죄 없이 총 맞고 칼 맞아 죽은 사람들 넋들이 떠돌고 있는 데 싸돌아다니면서 싹싹 빌어. 잘못했다고. 그래도 아마 용서받지 못할걸.”

(속으로) ‘그 중놈 주둥이 하나 사납네.’

그래서 머리 깎고 팽목항에 내려가 빌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8월 30일 실상사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세월호 1000일 기도회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나도 진도에 한 번 갔다 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실은 내심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은연 중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은 죽었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고도 하지만, 그동안 무슨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빚진 것처럼 진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난 뒤부터는 더욱이 아무것도 제대로 해지는 것이 없었다.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좋은 것을 봐도 노래할 수가 없었다. 차디찬 찬 바다에 갇힌 그들의 영혼에 대해 빌지 않고서는, 진도에 갔다 오지 않고서는...

 

오는 길에 달마산 미황사를 들렀다 올 생각이다. 아직 단풍은 덜 익었을 거야. 늘 마음에만 새겨두고 가보지 못한 곳이다. 스쳐 지나기만 했을 뿐. 그것도 인연이 있어야 되는가 보다. 아름다운 절. 미황사.

 

운봉을 지나다 보니 행정리 이장인 계임씨한테 주문한 고구마 생각이 났다. 어제 캔다더니 다 캤는가? 20키로. 꿀 고구마. 내일 가지러 가야 한다. 우리 집 고구마는 벌써 멧돼지가 깨끗하게 파먹었다. 처음이다. 뒷밭에다 한 고랑 심어놓은 것을 어찌 알아냈을까? 귀신같은 놈이로다. 기계로 캐도 그렇게 파내기는 힘들 거야. 한 톨도 남김없이. 윤동씨가 소식을 듣고 한 바가지 가져다주었지만 아무래도 겨울을 날려면 조금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남원에서 순천 가는 국도로 올라섰다. 밤재 터널을 지난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 해 봄, 어둠 같은 밤재 터널에서의 아찔한 순간과 이틀 후에 날아온 아버지의 부음. 그것은 대체인가? 계산인가? 자비인가? 아무래도 나는 그 묵은 빚을 영영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곧 나타나는 산동의 방산서원, 문효공 신도비가 있는 곳, 어릴 때부터 각인된 내 성씨의 고향, 용강제,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들른 적이 있다. 지금은 내가 시제에 참석한다. 구례는 아직도 안개가 가득하다. 휴게소, 한 떼의 스님들이 자판기 앞에 모여 서서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를 내고 있다. 어디를 가시는가? 먼 거리를 갔다 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충분히 기름을 채워 넣었다.

 

순천-목포 간 고속도로는 처음이다.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생각해 본다면 벌써 완성 되었어야 할 곳이다. 적어도 10년 전 쯤, 아니 그보다 더 먼저,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소위 산업화시대에 고속도로로 인한 물류의 속도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늘 뒤처지는 것을 이곳은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보성, 장흥을 거쳐 다산의 정신이 깃든 강진을 지난다. 부드럽고 섬세한 산수, 편안하고 정감이 흐르는, 그러면서도 골격이 있는, 월출산 자락이 멀리 보인다. 이곳은 높지는 않으나 암봉과 능선이 걸출한 이름난 산들이 많다. 애초에 노년기 지형의 특징을 잘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해남 땅으로 들어섰다. 너른 들, 기름진 땅, 그리하여 넉넉한 인심이 넘치는 곳이다. 무엇보다 고산 윤선도의 고향, 집 앞의 은행나무 잎이 비처럼 떨어지거나 집 뒤 대나무 숲 바람소리가 푸른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하여 녹우당이라 하였다 하니, 어찌 되었든 그 격조 높은 운치는 부럽기 짝이 없다. 

 

동국진체의 창시자이며 공제 윤두서와 절친한 관계였던 옥동 이서의 글씨라는 '녹우당'도 그렇거니와 원교 이광사의 글 '정관'은 특히 누에처럼 구부러져 있다. 추사가 초의선사와 교류가 깊어 제주도 귀향을 가기 전 이광사가 쓴 대흥사 대적광전 현판을 떼어내라고 했다가, 귀향에서 돌아온 후 다시 붙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광사가 썼다는 '정관'은 '선비는 조용히 홀로 있을 때도 자신의 내면을 잘 살펴 고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의미가 좋아 나도 이층 서재에 하나 새겨 놓았다.

 

12시, 진도대교, 거친 물살을 넘어 진도로 들어서다. 

 

흐린 물살이 빠르게 여울져 흐르고 있고 그 바다를 향해 이순신 동상이 호령하고 있다. 얼마 전 눈길을 끌었던 영화 명량의 현장이다. 진도는 온통 겨울 배추와 대파 밭으로 초록이다. 그러나 넉넉하고 다사로운 녹색의 정경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한다. 아니 그런 여유를 감히 보일 수가 없다. 아직도 40여키로 팽목항 까진 참으로 멀다.

 

이것은 조문이다. 수백명의 어린 목숨이 수장되어 돌아오지 못한데 대한, 결코 지울 수 없는, 나의 죄책감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그들은 참으로 우리에게 큰 충격과 아픈 상처를 안겼다. 과연 국가는? 사회는?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히 고뇌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국 그런 어리석은 사회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만들어낸다는 것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실 나는 국가에 대한 조문을 하고 싶다.

 

진도읍에서 팽목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가로수에는 나무가지마다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들이 얼기설기 흔들리고 있다. 이미 많이 헤지고 빛이 바랜 모습이다. 마치 표류하는 세월호 정국의 모습 같다. 그 사이로 진도에서 빠져나오는 MBC 취재차량이 보였다. 무엇을 취재했을까? 언제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방송을 할까? 언론이 다시 이렇게 허약한 모습의 퇴행을 보여줄 줄이야. 나는 그들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아마 그들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팽목항 입구에는 경찰들이 지키고 섰다. 권력의 용역들, 언론도 그렇지만 이미 믿음을 저버린 국가적 조직이란 오히려 국민의 적이다. 그들 개개인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만은, 그러나 그들의 모습으로부터 불편함과 거북스러움이 먼저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가? 이미 팽목항은 적막강산이다. 아직도 주차장에는 많은 차들이 들어 차 있고 한편으로는 유가족들의 간이 숙소로 보이는 시설들이 모여 있지만 그러나 조용하다. 사람도 별 눈에 띄지 않는다. 천천히 부두를 둘러보고 방파제로 올라섰다.

 

아아, 아이들아, 온통 나부끼는 깃발로 흔들리는 아이들아,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아. 푸른 물결만 무심한 바다 속에 잠든 아이들아, 나는 울 수도 눈물도 나지 않는구나. 그저 너희들이 느꼈을 그 깜깜하고 무서운 두려움이 떠올라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만 같구나. 잘못 됐구나, 잘못 됐구나, 아이들아, 이것은 참으로 잘못 됐구나.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잘못했구나, 잘못했구나, 우리가 참으로 잘못했구나, 되뇌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잘못했다, 우리가 잘못했다, 속으로만 부르짖었다.

 

방파제 끝에 다다르 나는 지체 없이 모자를 벗고 카메라를 내려놓은 뒤 두 손을 모으고 바다를 향해 깊숙이 큰 절을 두 번 올렸다. 오래 전에 어느 노인이 먼저 죽은 어린 손자의 상여가 집밖을 나설 때 의관을 정제하고 그 주검 뒤에서 큰 절을 올렸다는 글을 본 뒤, 그것이 죽음에 대한 경건함이요, 죽은 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예를 올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랴? 무엇하나 밝혀진 것도, 바뀐 것도 없는 이 무참한 세월, 야만의 세상, 무례한 자들은 오히려 이들의 죽음을 능멸하고 있으니 이런 썩어빠질 세상은 무엇이며 이 따위 나라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용서하지 말거라. 용서하지 말거라. 너희들을 죽게 한 세상을 절대 용서하지 말거라.

 

돈과 이윤에 눈 먼 파렴치한 세상, 거짓 눈물과 책임 회피로 너희를 두 번 죽게 한 위정자들, 너희들의 죽음을 조롱하는 자들, 애써 외면하고 모른척 하는 비겁한 자들을 추호도 용서하지 마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으로 이 사회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세상이 밝아지고 제자리를 찾아 갈 수 있도록, 너희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다오. 우리가 눈 감으면 너희들이 눈을 뜨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마. 세상이란 사람이 사는 곳이지 돈이 살고 권력이 사는 곳이 아니잖느냐?

 

 

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등대 끝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배가 침몰한 맹골수로는 섬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사진이 실린 초롱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아이들의 신발, 차린 뒤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밥과 국화 화분이 방파제에 묶여 있는 것도 있다. 누군가의 생일 선물이 비닐에 싸여 난간 쇠기둥에 꽁꽁 매여 있다. 한 짝은 없다. 그렇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넋들이 저 먼 바다 속에 잠겨있는데 벌써 잊어버리자고, 그만하자는 소리가 그렇게 쉬이 나올 수 있는가?

 

무심한 바다는 말이 없고 정오의 눈부신 햇살에 끝없이 반짝이고만 있다. 일 순 쳐드는 무력감, 그러나 결코 포기하거나 져서는 안되는 일. 저 아이들의 죽음을 잊거나 그대로 주저 앉아서는 안 될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것도 죄악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정치적 판단이나 선택, 실천은 분명히 세월호 이전과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나는 허전하고 허탈한 기분으로 차마 떼어지지 않는 발길을 다시 돌린다. 진도에 들어올 땐 우수영이나 명량대첩비라도 둘러 볼 생각이었지만 도저히 여기서는 늦은 점심도 먹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빨리 빠져 나가는 것이 우선인 것처럼 나는 부랴부랴 다시 진도대교를 넘어섰다. 진도를 빠져나왔지만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두시가 넘었다. 

 

아름다운 절, 미황사

 

늦은 김에 미황사까지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입구에 식당이 있지 않겠는가? 땅끝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 시간여를 달리니 달마산이 보인다. 미황사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 돈 받는 곳도 없다. 당연히 주차비도 받지 않는다. 현금을 지니지 않아 내심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입구가 깨끗하고 정갈하다. 숲길을 지나 올라가는 길 옆으로 개울물이 흘러내리고 동백나무와 잡목은 싱싱한 초록 내음을 풍긴다. 아, 참 좋은 절이구나. 벌써 마음이 흐뭇해지기 시작한다. 뒤에 보이는 달마산의 암봉이 아름답다. 언젠가 미황사 주지가 절을 재건하면서 예쁘게 꾸미고 한 번씩 음악회도 연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규모가 작지 않으면서도 여느 절과는 달리 조용하고 깨끗 한 것이 참 편안하고 정감이 간다.

 

절 안에 있는 가게 겸 찻집에 들어갔다. 식사가 되느냐 했더니 밥은 안 되고 떡국이 된다고 하여 한 그릇 시켰다. 깔끔하고 진한 국물이 맛이 있었다. 여기까지 잘 온 것 같았다. 진도 바다가 보이느냐고 물으니 마침 차를 들고 있던 스님이 조금만 올라가도 보이고 정상에 올라가면 훤히 다 보인다고 했다. 진도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미처 점심도 못 먹고 여기까지 왔다고, 여기 오면 진도 바다가 보일 것 같아 부처님께 그 아이들의 영혼이나 구제해 달라고 빌려고 왔다 했더니, 그렇찮아도 사고 후 주지스님이 추모공간을 만들고 지금껏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찻집 창문으로 내다 보니 올라가는 길 가운데 선 동백나무가 대단히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나는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시달려 닳고 뒤틀어진 모습이 무수한 보시와 헌신으로 이루어진 찬란한 상처인 것만 같아서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찻잔을 두어 개 구입했다.

 

미황사,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절이다. 주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듯 구석구석 참 잘 다듬어지고 정리되어 있다. 절 안마당으로 들어서니 법당은 단청이 바랬고 본존불은 바로 앞 바다를 훤히 내다보고 계셨다. 법당 앞마당에 그대로 선 채로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세월호 친구들의 해원을 빌었다. 더 들러보고 싶었으나 지체 않고 돌아 나왔다. 다음에 다시 올 때를 위해 나머지는 아껴두기로 했다. 참 좋은 절이구나. 미황사를 내려오는데 왠지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여길 오길 참 잘 했다.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다.

 

토닥에서 두부 찾아 가라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오늘이 수요일이다.

 

미황사를 나와 해남 땅끝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달마산을 돌아 뒷길로 강진까지 갈 참이다. 땅끝에서 강진까지 이어지는 달마산 뒷길은 산세가 참 예쁘다. 땅끝 해변 송호리 바닷가에 오니 진도 쪽 바다가 보인다. 다시 먹먹해지는 가슴, 그러나 울음 뒤의 편안함 같은, 허전함, 끝내 무심한 바다. 오후 햇살에 고즈넉이 빛나고 있다.

 

 

땅끝 마을에 도착했다. '땅끝은 새로운 희망'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무슨 희망? 무엇이 시작이고 무엇이 끝인가? 사람들은 선언하고 무엇인가에 특정짓기를 잘하지만 절대적으로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대상이 과연 이 세상에 얼마나 되는가? 또한 선언이 곧 실천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바다를 오른 편에 끼고 계속 달리다 보니 완도대교가 보인다. 강진 쪽으로 향한다.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보성휴게소에서 차를 한 잔 하고 순천에 오니 이미 어두워졌다. 여섯시다. 차량은 많지 않았지만 장시간 운전에 눈이 피곤하다. 일곱 시까지 인월에 도착할 수 있다면 공소에 들러 미사를 드리고 가면 좋을 텐데 갈 수 있을까? 운이가 오늘 심심했겠다. 어두운 길을 부지런히 달려 그야말로 정각에 공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저녁미사가 아직까지는 일곱 시 반이었다. 수녀님이 그동안 잘 안보여 연락을 해볼까 했다면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한 숨 돌리고 앉아 오늘은 온전히 그 아이들을 위해 미사를 바치기로 한다. 전주교구는 아직도 미사 중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를 올린다. 오늘 복음에서는 돈을, 명예를, 권력을 가지고 그것을 누리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진실하지 않고 뿌리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가? 자신은 없지만 반성을 한다. 그래도 지금, 오늘만큼은 시간에 맞춰 이렇게 초대해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하다

 

토닥에 들러 두부를 찾아 집에 들어오니 영임씨가 갖다 놓은 듯 상추 한 봉지가 문에 걸려 있었다.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