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통신

달빛에 취하다.

방산하송 2014. 11. 9. 22:10

 

가을이 무르익었다. 벼르던 반야봉을 오르게 위해 뱀사골 계곡으로 들어섰다. 정오가 조금 덜 되었다. 반야봉에 오른 뒤 낙조를 보고 노고단으로 해서 성삼재까지 갈 생각이다. 늦가을 정취가 물씬 난다. 시냇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다리가 긴장한 듯 힘이 들어간다. 참 오랜만에 산행이다. 화개재까지 8.7km. 나뭇잎 하나가 똑바로 떨어진다. 수직의 파문? 한 떼의 인파. 역시 시끄러운 건 경상도 말씨다. 그들은 어디서나 당당하다. 그런 여유와 우월감을 누릴 수 있는 잠재된 의식이 정당하든 아니든 지역정서에 기반한 정권을 유지하는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노각나무 두 그루가 멋있게 서있다.

 

12시 20분, 와운 입구.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그렇지만 너무 잘 다듬어진 등산로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 날씨가 참 좋다. 바람은 시원하고 하늘은 맑고 공기는 달다. 늦가을 산에 오르기에는 정말 좋은 날씨다. 한 바탕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간 뒷자리, 마른 잎들만 수북이 쌓여있다. 나뭇잎들은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가지가 앙상하다. 마지막 단풍, 떨어진 잎사귀, 군데군데 남은 초록, 떡갈나무, 수수한 참나무, 맑고 투명한 계곡물.

 

정우규선생한테 전화가 왔다. 산에 올라간다고 했더니 가지가 처지는 나무나, 다른 것은 처졌는데 서있는 것, 색깔이나 껍질이 색다른 것이 있는지 잘 보면서 다니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지만 사실은 난 그런 변이된 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본래의 모습대로 싱싱하고 건강하게 잘 자란 식물이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왜 사람들은 비뚤어진 것, 색깔이 다르거나 모양이 달라지고 뭔가 변형된 것을 좋아할까?

 

 

계곡물이 너무 맑다. 또 사람을 유혹한다. 발길을 자꾸 붙잡는다. 그런 물을 볼 때마다 한 눈을 팔면 오늘 여정이 너무 길어질 것이다. 참아야 한다. 그러나 유혹하는 물. 물. 십분도 못가 다시 물의 유혹에 빠진다. 파랗게 빛나는 물을 지나칠 수가 없어 다가가서 물속을 들여다본다. 할 수 없다. 앉은 김에 잠시 쉬어가자. 희게 웃는 저 물줄기, 어제도 오늘도 끊임없이 흐르고 내일도 흘러내릴 것이다.

 

혼자서 가는 산행은 위험도 따르겠지만 여러 사람과 같이 갈 때는 느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쉬고 가는 것이 자유롭다. 입을 열 일이 없으니 그만큼 에너지 소모도 적다. 얼마든지 계획의 변경이 가능하다. 가다가 싢으면 되돌아 올 수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산행하는 동안 뭔가는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자연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은 복잡한 세상에서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좀 더 의연해지고 마음이 넉넉해진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하다 보면 자기 반성과 함께 보다 본질적인 것,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을 수도 있고, 결코 용납이 되지 않을 것 같던 일에 대한 용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뱀사골 계곡은 여러번 와 봤지만 언제와도 마음에 흡족하다. 계곡미가 넘치는 곳이다. 다른 곳보다 길고 경사도 완만하다. 자주 오고는 싶지만 마음처럼 잘 와 지지는 않는다. 사람이 많은 철을 피하다 보니 더 오기가 힘들어진다. 사실은 지리산 가까이 와서 살게 되니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줄어든 탓이기도 하다. 간장소를 지나니 조금씩 가팔라진다. 그런데 상당히 윗부분까지도 나무 계단을 너무 많이 설치해 놓았다. 산에 오르려 왔는데 계단만 열심히 올라가는 기분이다.

 

어지간히 올라왔다. 화개재까지 1.1Km.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오르기로 한다. 가쁜 숨을 내 쉬면서. 뱀사골 탐방 지원센터. 화개재가 목전이다. 몇 년전 동료들과 역으로 성삼재에서 화개재를 거쳐 뱀사골로 내려간 적이 있다.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그런데 오늘은 한결 수월한 것 같다. 그동안 전혀 산행을 하지 않아 걱정을 했지만 예상외로 견딜 만하다.

 

세시 15분, 화개재에 올라섰다. 건너편 산 능선이 훤하다. 햇살이 좋다. 넓은 터에 헬기장이 있고 하동의 화개로 내려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능선을 따라 노고단 고개까지는 다시 6키로 쯤. 삼도봉을 지나 반야봉에 올라갔다 오려면 2km 정도가 추가된다. 삼도봉에서 잠시 휴식, 연하천으로 간다는 몇 명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건강한 친구들이다. 보기에 좋다. 젊음이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니.

 

언젠가 똑같은 길을 따라 막내 동생, 셋째 여동생과 함께 반야봉에 올라간 적이 있다. 그때는 반야봉에서 막바로 심원 쪽으로 내려갔는데 지금은 휴식년으로 출입이 통제돼 있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막내 녀석은 잘 살고 있겠지. 언젠가는 찾아가 봐야 할 텐데. 입맛이 쓰다. 그나저나 정 서방은 턱을 다쳐 몇 주나 입원해 있어야 한다니 걱정이다. 좀 조심할 일이지. 주말에 둘째 녀석이 서울 올라간다고 했다는데 가뜩이나 복잡한 집에 가서 더 귀찮게나 하지 않을까? 언제쯤 제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는 날이 올려는지?

 

능선 길은 아무래도 수월한 편이다. 삼거리에서 반야봉 쪽으로 오른다. 오후 햇살이 숲속에 스며든다. 고적한 산길. 사람도 눈에 뛰지 않는다. 막바지 비탈길이 제법 가파르다. 날씨가 좋으니 반야봉 일몰이 좋겠지. 네 시 반, 드디어 반야봉. 지리산 봉우리 중에 천왕봉 다음으로 높다. 동쪽에 천왕봉, 서쪽에 반야봉이라 할만하다. 천왕봉은 우뚝한 암봉인데 비해 반야봉은 둥그렇고 부드러운 모양이다. 사방을 둘러본다. 멀리 천왕봉이 있는 쪽으로 아스라이 이어지는 능선들, 구례쪽으로 뻗어나간 산 줄기, 서쪽에 노고단, 운봉쪽으로 뻗어나가는 줄기가 이어져 있다. 

 

반야란 지혜의 완성이라 한다. 우리나라 산천 곳곳이 불가의 이름 없는 곳이 없지만 반야봉이란 이름은 이곳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반야낙조라 해서 일몰풍경이 이름난 곳이다. 우리네 산 이름에 유난히 이런 불가의 상징이 많은 이유는 뭘까? 아마 매일 산을 쳐다 보며 불가적 정신과 지향을 늘 마음에 지니고 싶은 바램이었거나, 그러한 마음을 나타내는 종교적 상징으로 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해를 보니 아직 저물 시간은 조금 이르다. 이른 저녁을 먹는데 봉우리라서 그런지 날씨가 꽤 쌀쌀했다.

 

서서히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구름 밑으로 해가 들어가니 커다란 새가 노고단 쪽으로 날아 들어가는 듯 착각이 들었다. 아래쪽 구름이 짙어서인지 노을이 기대한 만큼 밝지는 않다. 그러나 무위의 하늘, 천지에 거리낌 없는 하늘과 그 아래의 땅이 교감하여 거스르지 못할 어떤 영험한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검은 구름에 해가 서서히 잠기고 있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로 노고단이 멀리 보였다. 어두우니 더 아득해 보인다. 저기까지 가야 하는데. 산 꼭대기여서인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손끝부터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오늘 입동이다. 아무래도 서둘러 내려가야겠다. 여기서 노고단까지 두 시간여, 노고단에서 성삼재까지 다시 한 시간여. 무사히 가야할 텐데. 날씨가 따듯한 철에 다시 한 번 올라와야겠다.

 

 

반야봉 아래 삼거리에 내려오니 그렇게 춥지 않았다. 오히려 푸근했다. 여섯시, 마지막을 짐을 정리하고 노고단 쪽으로 향했다. 곧 달이 뜨겠지. 배낭을 뒤져 헤드랜턴을 찾는데 잡히지 않는다. 아무리 뒤져도 없다. 이런! 생각해 보니 가게에서 건전지를 새로 사 끼워놓고 불빛까지 확인했는데 운전석 옆에다 두고 그냥 온 것 같다. 낭패다.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보름이니 달이 뜨면 조심해서 갈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등 뒤에서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윤 구월 보름. 달이 밝을 것이다. 대충 길이 확인이 된다. 제대로 달빛 산행을 하겠군.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데 이번엔 지갑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갑자기 아득해졌다. 분명 짐을 정리할 때 있었는데 어디다 흘렸을까?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그나저나 지갑이 없으면 어떻게 내려가나?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지고 불안해졌다. 어쨌든 지갑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아까 삼거리에서 가방을 정리했으니 돌아가면서 찾아볼까? 어둡지만 달빛으로 인해 희미하나마 길은 확인이 된다. 한 시간여를 다시 돌아가며 살펴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반야봉 부근인가? 절반쯤 올라가다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또 다시 되돌아서서 아까 간 방향으로 갔던 곳까지 조심스럽게 둘러보며 찾아봤지만 없다. 현금이야 얼마 되지 않지만 카드니 여러 가지 증명서도 다 들어있는데 너무 귀찮아질 것이 뻔해 마음을 결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최종적으로 다시 한 번 삼거리까지 가면서 찾아보고, 다행히 지갑을 찾으면 노고단 쪽으로, 못 찾으면 시간이 걸려도 차가 있는 뱀사골로 되돌아 내려가자. 그것이 몸이 고단해도 다른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삼거리가 가까워지는데 이상하게 지갑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달이다. 점점 높이 올라오는 달빛에 취한 것이다.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이미 마음을 접고 그대로 화개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달이 가로등처럼 밝아졌다. 바람도 한 점 없고 공기는 푸근하다. 삼도봉에 도달했다. 아아! 삼도봉 너럭바위 위로 쏟아지는 달빛은 장관이었다. 휘황한 달빛이었다.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삼도봉의 삼각형 표지석과 달을 카메라 안에 잡을 수 있을까? 바위 위에 엎드려 용을 썼다. 아무 장비도 없지만 기어이 달을 찍었다. 다시 이런 사진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다리가 지치고 힘이 빠져 뻐근했다. 그러나 아! 둥근 달, 화개재에 도착하니 넓은 고갯마루에도 달이 높이 떠 사방이 환했다.

나는 성호를 긋고 짧은 기도를 올렸다.

"주님, 황홀한 달밤입니다. 이것도 주님의 솜씨겠지요. 이 좋은 달밤을 구경하게 해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아름다운 달밤입니다. 제가 골짜기를 내려가는 동안에도 조심해서 무사히 잘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모든 골짜기와 산과 나무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마치 엷은 안개에 쌓인 것 같기도 했다. 무량의 바다 그것이었다. 부~ 하고 달빛소리가 미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만약 몸에 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드리라. 그러나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쳐다만 보았다.

 

계곡의 길도 대낮 못지않게 밝았다. 나는 되도록 천천히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개울물 소리가 정겨웠다. 달빛은 시냇물과 같이 흐른다. 밤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더 맑다. 서로 여울지는 소리, 갈라지는 소리,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 미끄러지는 소리, 재잘대며 구르는 소리, 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 작은 소용돌이를 이루는 소리, 멀리서 가까이서 달빛과 어울려 환상적인 속삭임으로...

건너편 중턱쯤에서 사람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미소를 짓고 혹, 지리산에 깃든 영령이라면 편히 쉬소서. 성호를 그었다. 아픈 역사의 산, 어머니의 산, 왜 그런 원혼들이 없겠는가? 그러나 두렵거나 무서운 생각은 나지 않았다.

 

올라갈 때보다 훨씬 힘들다. 지루한 하산 길. 마음은 달빛에 젖어 있지만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문득 이 밤 다른 사람들은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 상상을 해본다. 간혹 집을 멀리 떠나 저녁 때가 되면, 담 너머로 보이는 집들을 쳐다보며 저 집에는 식구들이 모여 따뜻한 저녁을 먹고 있겠지. 아마 모두 모여 텔레비젼을 보고 있을지도 몰라. 서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사람이 돌아갈 곳은 가족이 있는 곳. 가족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 집은 건물이 아니라 가족이 있는 곳이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역시 뱀사골 계곡은 길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나온다. 다리에 힘이 떨어져 자주 쉬었다. 그 때마다 계곡물이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았다. 지갑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면서 힘을 소진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 모두 차근차근 처리하면 될 것이다. 큰길에 도착하니 거의 기진하여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다. 드디어 긴 하루의 산행을 마쳤다. 반선에 내려오니 이미 자정이 넘었다. 오늘 나의 산행은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해서였나? 인생의 하산 길도 이처럼 쉽지 않은 것이리라.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많은 일을 한 사람일수록 그러할 것이다. 아름다운 마지막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리니.

 

12시 못 미쳐 산행을 시작했으니 12시간 이상의 강행군이었다. 해드랜턴이 컵 홀더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몸은 무거웠으나 차안에서도 나는 아직 달빛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차창 안으로도 달빛은 여전히 충만하게 들어왔다. 새벽 1시쯤 집에 도착했다. 마당에도 지붕 위에도 달빛이 가득했다. 나는 흔쾌한 마음으로 지갑 걱정은 던져버리고 달빛을 받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달빛에 취한 소은.

 

 

<p.s>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전 주민등록증, 면허증, 은행 보안카드 등을 처리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김선생 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갑을 주운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있었다는 것이다. 용인에 산다는 사람이라는데 반야봉에서 주웠다고 한다. 아마 지갑의 명함을 보고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고마운 사람이다. 무엇보다 분실처리한다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되어서 천만다행이다.

(010.2214.0526.강영호.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로 42번길 40)

그날 지갑을 잃어 버리지 않았다면 달을 등지고 성삼재까지 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삼도봉의 멋진 보름달도, 화개재의 황홀한 달밤도, 뱀사골의 환상적이던 시냇물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지갑을 못찾는다고 하더라도 별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는 그날 밤 충분히 행복했던 것이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고 정해진 바가 있는 모양이다. 반드시 나쁜 일만 일어나거나, 때 없이 좋은 일만 생기지도 않는 모양이다. 찬미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