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안식년으로...
삼월이 되었는데 웬 눈이람? 3월 들어서자마자 첫 날부터 눈이 내리더니 오늘도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변덕스러워 하는 얘기지 나야 눈은 언제 오든 대환영이다. 봄눈이야 좋은 것 아닌가? '봄눈 녹듯이' 곧 녹을 것이다. 가만히 앉자 눈 내리는 밖을 쳐다본다. 지난 겨울은 계획했던 글씨나 서각, 목공을 한 가지도 손을 대지 못했다. 그저 대금만 줄곧 연습을 했는데 다행히 겨울동안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책도 기껏 작년에 시작해 중단했던 율리시즈 제1권을 마친 것 밖에 없다. 너무나 게으른 겨울을 보내고 만 셈이다. 더군다나 이월은 힘겨운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더 여유가 없었다.
1월말 경 집 앞의 논에서 진상훈씨가 비닐하우스 공사를 시작했다. 시 지원을 받아서 설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상추농사를 할 모양이었다. 앞을 가리고 비닐을 씌우면 반사광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공사가 다 끝나도록 아무런 말 한마디도 없었다. 뼈대를 다 세운 뒤 상훈씨를 불러 낮에 햇빛 반사광이나 여름철 야간작업 시 전등빛이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 같은데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다짜고짜 그런 것은 같은 동네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이해하고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라 하고 돌려보냈다.
이 월 초 비닐을 씌우고 나니 예상했던 대로 집 안에서도 밖을 쳐다보기 어려울 지경으로 햇빛이 강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다시 진상훈을 불러 확인을 시키고 차광막을 설치하라고 했더니 스스로 나무를 심던지 담을 쌓아서 막으면 되지 않느냐고 온갖 핑계와 억지를 부리더니 결국 나중에는 차양막을 설치하겠다고 물러섰다. 자기 논에 무엇을 하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해결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먹고사는 문제라고 해서 어떻게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한 가지 더 문제가 확대된 것은 그 하우스가 내 땅을 침범해 지어진 것이 밝혀진 것이다. 애초에 하우스가 주는 답답함과 시각상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 집과 상훈씨 논 사이에 있는 턱에다 나무를 심을 생각으로 무너진 턱을 보수하자고 제안 했더니 거절하였다. 심증으로는 내 땅인 줄 알지만 정확한 경계를 알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경계측량을 신청 했더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면적이 물려 있었고 더욱이 하우스의 상당 부분이 내 땅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껏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모른 척 농사를 지어온 것이었다. 그 때부터 이 친구의 태도가 돌변해 모든 제안을 거부하였다. 담에 바짝 붙은 파이프 한두 개만 뽑은 뒤 턱을 쌓고 나머지 땅은 그대로 써도 된다고 해도 무조건 거절하였다. 수차 설득을 하고 사정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세워 놓은 하우스를 철거하라고 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일을 키운 것은 자신이었다. 결국 이 친구와 승강이를 벌이느라 명절이 끼기도 했지만 이월은 피곤함 속에 지나가고 말았다. 마침내 모든 것을 접고 원칙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이장을 불러 지금까지의 상황과 법적 대응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였다. 상훈씨에게는 구두 통보를 한 뒤 우선 면에 민원을 접수하고 내용증명을 보냈다. 면사무소 직원의 중재로 3월 15일까지 파이프를 철거하고 차광막을 덮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믿을 수가 없어 법적 처리를 위한 준비는 그대로 진행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사람에 대한 실망과 그런 사람과 승강이를 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불쾌하였다. 자기의 이익과 손해에만 민감하고 남의 고통이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는 곧 오늘날의 세상인심과 같은 것이다. 아랫동네 영수씨가 힘들겠다고 자주 올라와 말 벗을 해주었다. 이런 경우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와 그 바탕은 무엇이며, 그 대응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기도 했지만 승강이를 하는 동안 농사에 대한 미련이 점점 없어져 갔다. 비닐하우스, 대단히 획기적인 영농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런 기계적이고 반 자연적인 것이 싫어 이곳에 들어왔는데 결국 피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떠나 누군가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내키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원칙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을 하고 난 뒤에는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도 했다. 이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년만년 하우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닐 테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고 천천히 해결해 나가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내친 김에 턱에 나무나 심고 그 뒤에 화단 조성 할 계획이나 세워야겠다.
그렇잖아도 올해 논농사는 한 해 쉬어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농사 전체를 한 번 쉬어 보는 것은 어떨지 고민을 해보았다. 4 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으니 한 해는 안식년으로 보내도 되지 않겠느냐? 는 생각인 것이다. 땅도 쉬고 나도 쉬고, 5 년에 한 번의 안식년, 10년에 두 번,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안식년이니 누구에게 이야기 할 것도 없다. 그래,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어디 여행도 가고, 산에도 가고, 형제들이나 친인척들도 방문하고,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도 하고, 채소 푸성귀나 좀 가꾸고, 가을에 김장거리나 심는 정도로 마치자. 그리고 집 주변이나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자.
앞 논의 경계측량을 신청할 때 위 쪽 소나무가 있는 땅도 분할측량을 신청하였다. 재작년부터 양재천 어른이 자꾸 사 넣으라고 종용하다시피 하는 것을 모른척하고 지냈는데 이번 기회에 길 아래쪽을 모두 사 넣기로 하였다. 지번만 주어지면 곧 이전을 할 생각이다. 내가 이곳에 정착할 때 그 결심을 크게 도와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소나무다. 이전을 하고 난 뒤 몇몇 이웃을 불러 소주 한 잔 낼 생각이다. 그리고 그 뒤로 미뤘던 담과 울타리를 완성할 생각이다. 소나무 뒷쪽으로는 이대를 캐다 심고 집 뒷쪽 담도 보완을 해 나무를 심어야겠다. 연못도 다시 손을 보고 앞쪽도 돌담을 쌓으면 좋을 것이다.
지난 연말 인월의 중국집 사장님이 키우던 개를 한 마리 얻어 왔는데 나이는 어리지만 사뭇 귀티가 나고 괜찮아서 떠맡았다. 애초에 유기견을 주어다 키웠는데 개가 크니 키우기가 부담스럽다고 자꾸 데려다 키우라고 부탁을 하였던 바다. 운이 한 녀석만 해도 힘들었는데 덜컥 데려다 놓고 보니 예사 일이 아니었다. 이놈은 똥도 더 많이 싸고 더 나부대는 것이 이제야 지청구만 주었던 운이가 얼마나 순하고 괜찮은 개였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름을 깜순이라고 지었는데(새카맣지만 '깜찍한 순이'라는 뜻이다.) 둘 다 암놈이어서인지 맨날 운이에게 달려들고 장난을 걸고 괴롭히는데 운이는 귀찮다고 도망 다니고 한다. 운이보다 어리니 운이가 많이 봐 주는 셈이다. 그래도 둘이 한 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잘 지내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올해 내가 며칠씩 집을 비우더라도 둘이서 심심찮게 지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사순절이다. 아직도 담배를 피운다고 주변에서 책망들을 많이 하는데 이번 기회에 한 번 끊어볼까? 도와 주시려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도할 때 담배 끊겠다는 말은 함부로 내 뱉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아 헛말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통을 견디어 본다는 차원에서 한 번 시도를 해볼까? 다행히 성공하면 그야말로 담배로부터의 해방!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주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는 새로 부임한 젊은 신부와 면담을 하겠다고 부탁을 해놓았다. 성서와 관련된 것, 신앙생활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그 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물어 볼 생각이다.
마음이 독하지 못한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