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달다
시골로 들어올 때 생각했던 것은 담도 대문도 필요 없이 사는 것이었다. 대문이란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 아니랴? 오호! 그런데 대문을 달고 말았다. 대문을 걸면서 아무리 멋진 대문이라고 할지라도 없는 것 만 못하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새겨지고 말았다. 이제,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문을 여닫는 수고를 해야 한다. 얼마나 작위적이고 귀찮은 일인가?
일이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비닐하우스로 인하여 생긴 출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 쪽에 턱을 쌓고 나무를 심겠다고 일을 시작한 뒤, 손을 댄 김에 담과 울타리, 대문과 화단을 조성하기로 맘먹고 4월부터 시작한 작업이 이제 겨우 마무리가 되어간다. 두 달여 거의 매일같이 강행군을 했다. 앞 쪽 턱을 쌓고 난 뒤 내친 김에 뒤쪽 담과 큰 소나무 쪽으로도 턱 공사를 하여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하수구와 우수로를 위쪽, 내 땅 경계안으로 들이고 연못도 새로 조성하였다. 크기는 커졌지만 옛날 것보다 자연스러움이 많이 없어졌다. 앞쪽 턱 위에 큰 돌을 놓아 땅을 높이고 흙을 몇 차 사다 부었다. 하우스 뒤쪽에도 흙을 부어 땅을 돋았다. 동쪽 화단을 줄여 진입로를 이동시키고 반대편에 생긴 길쭉한 터에다 자그마한 화단을 만들었다.
정작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할 때는 그런대로 할만 했다. 그러나 작업이 끝난 후 부터는 매일 손으로 뒤처리를 하느라 고역의 나날이이었다. 우선 뒤쪽과 큰 소나무 뒤편으로 잔대와 이대를 캐다 심었다. 이대는 실상사와 마천쪽에서, 잔대는 산청 김선생 동네에서 구했다. 앞쪽 턱에 남원 이흥구 사장에게서 소나무를 사 옮기고, 그 위쪽으로는 얕은 담을 놓고(거의 지상과 같은 높이다.) 화단을 조성하였다. 대나무를 캐서 옮겨 심는 일이며 소나무 작업도 힘들었지만 특히 담을 놓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다. 허리까지 무리가 와 치료를 받았다. 입구 쪽 길가에 있던 개나리와 철쭉을 파내고 주목을 사다 심었다. 개나리는 서쪽 개울가에 울타리 삼아 심었고 철쭉은 출입구 양쪽 소나무 주변에 옮겼다. 공사를 피해 집 앞 밭에다 옮겨 놓았던 나무들(그렇게 많은 나무들을 심어 놓았는지 나도 놀랬다.)과 그동안 복잡해진 동쪽 화단의 나무들을 정리하여 연못 주변과 앞쪽 화단, 그리고 진입로를 따라 조성한 작은 밭가에다 모두 옮겨 심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문을 달았다.
참으로 힘든 날들이었지만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집의 모습이 즐겁기도 했다. 일은 하다보면 언젠가는 끝난다는 나의 지론대로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드디어 마무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기는 서운함, 왜 좀 더 한적한 곳에 자리 잡지 못하고 이렇게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 오게 되었을까? 조망과 풍광이 뛰어나고 시원하지만 내가 꿈꾸던 시골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아니 몇 년 새 그렇게 변하였다. 그러나 이미 이곳에다 내 품과 정성을 너무 많이 들였기 때문에 쉽게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 아마 나태하고 게으른 나의 성정을 아시고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없는 이곳으로 보내셨는가 싶기도 하다.
결국, 어쩔수 없이 울타리를 두르고 대문을 달았지만 꼭 담과 대문이 있어야 하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집은 담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안과 밖의 경계이자 나와 타인의 경계가 아니겠는가? 언제부터 그렇게 구획을 짓고 구분을 하기 시작했을까? 모든 생물이 다 자기 영역이 있다지만 그것은 독립적인 개체로서 활동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지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나 군락의 식물까지 개개의 영역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결국 담이란 사람마다 자신만의 영역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자 보호 장치로 폐쇄성을 지향하는 시설이다. 대문도 그렇다. 대문이 놓이는 순간 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데 자유로은 사람은 자기자신 뿐이다. 누군가가 예고 없이 대문 안으로 들어온다면 무단 침입이 될 것이다. 담은 필요와 불필요, 펀리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담은 헐고 대문은 떼어내는 세상이 되어야 할 텐데 오히려 담은 높아지고 대문은 더 견고해지니 그런 현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는가? 그럴만한 사정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결국 담과 대문을 달고 보니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한 짓을 한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걸린다.
차가 들고 날 때마다 대문을 여닫는 것이 익숙치않다. 그러나 곧 숙달이 되리라. 사실은 대문과 담이 없어 늘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기회가 생긴 김에 한꺼번에 해치우고 만 것이다. 아직도 뒷마무리가 조금은 남아있지만 그것은 천천히 해도 될 일이다. 집안에 나무가 많아지니 새들이 부쩍 늘었다. 참새도 꽤나 많이 와서 설쳐대니 보기가 좋다. 이제부터 좀 여유를 가지고 쉬어야겠다. 농사도 없으니 한가한 시간을 얼마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1주기 이후 여유가 없어 휴업하다시피 했던 글쓰기도 다시 시작하고, 그동안 손에서 놓았던 책도 가까이 하고...
집 주변을 마무리하고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