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게으름
모내기를 시작했다. 시작했으니 벌써 반은 한 셈이다. 지금까지 늘 사흘 씩 걸렸으나 올해는 이틀 만에 끝낼 생각이다. 몇 년 동안의 이력이 붙었는지 그다지 힘든 줄은 모르겠다. 옛날에는 한 마지기가 하루 일이라고 했으니 우리 논이야 둘이서만 해도 아마 반나절이면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닥 바쁠 일이 없기 때문에 서두를 일도 없다. 놀다 쉬다가 하다보면 이틀을 넘기기가 예사다. 아침에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느즈막이 일을 시작했다.
바람이 선선하고 날도 좋으니 모를 심다 한 번씩 하늘을 보면 기분이 상쾌하고 무언가 뿌듯한 느낌이 든다. 못줄도 없다. 눈대중으로 대충 줄을 맞추며 심어나간다. 그러다 보면 어떤 곳은 간격이 너무 너르거나 또는 좁아서 울퉁불퉁하지만 그래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정 눈에 거슬리는 것은 손을 좀 보기도 한다. 점심은 백일식당에 가서 오랜만에 추어탕을 먹었다. 일주일 후에나 온다고 울산으로 다니러 간 아내 생각이 났다. 이럴 때 모내기는 차지하고 밥이라도 좀 챙겨주면 오죽 좋을까? 멀리 있다가도 모내기를 한다면 서둘러 돌아와 도와줄 생각을 해야 할 텐데. 참 손발이 안 맞는 사람이다. 일쑤 그렇게 살아왔으니...
오후 늦게 일을 다시 시작했다. 오가는 이웃들이 고생한다고 한마디씩 했다. 나는 즐거운 일이라고 대꾸를 한다. 모내기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논이 없거나 혹은 너무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 따라 생각이야 다르겠지만 이런 여유도 아무나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줄 간격이 자꾸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여유인가? 게으름인가? 애초에 너무 조밀하게 심을 생각은 없었지만 자꾸 넓어지는 것은 결국 일을 줄이고 싶은 게으른 마음이 은연 중 작용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유와 게으름이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것을 여유로움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 넉넉함으로 인하여 나도, 모도, 지나가는 바람도, 화창한 햇빛도 모두 여유로워 질 수 있다. 사서 고생한다고 핀잔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이정도의 일에 기계의 힘을 빌리고 싶지는 않다. 손으로 모를 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힘이 부치는 나이까지는 계속 손으로 모를 심을 것이다. 해가 기운다. 연자방아 황노인이 지나가다 " 허어, 기계 있는 사람한테 부탁을 하지" 하며 안 된 눈으로 쳐다보길래 "모 심는 재미가 없잖아요?" 했더니 한참이나 머리를 끄덕이다 내려간다. 절반 정도 마쳤다.
실은 올해부터 논농사를 안 할 생각이었다. 이것저것 남의 손을 빌리기가 내키지 않아서이다. 그러나 일찍 손을 보지 않고 미루다 사 월 들어서야 밭을 만들려고 했으나 잦은 비로 물이 마르지 않아 도저히 고랑을 내고 땅을 고르기가 여의치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논농사를 짓기로 했는데 생각해보니 잘한 듯 하다. 아무래도 밭농사를 지으려면 또 얼마나 매달려야 할 것인가? 내심으로는 상당한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게으름의 문제이긴 하나 아마 논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운명인 것 같기도 하다.
이튿날, 아침이 늦었다. 어제 일이 조금 고되었던 모양이다. 일찍 시작할 생각이었으나 피곤함을 핑계로 미적대다 열 시가 넘어서야 일을 시작했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두살 배기 서연이가 엄마하고 어디를 나간다. "서연아! 빨리 커서 나중에 할아버지 모내기 좀 도와줘∼어" "네∼" 엄마가 대신 대답한다. 어제 심은 것 중에 미진한 부분을 손보고 나니 오전 일이 바쁘다. 그러나 점점 면적이 줄어들어 간다. 하다보면 언젠가는 끝날 일. 비뚤비뚤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맞춘 모들이 예쁘다. 소나무 밑에 또 사람들이 와서 둘러보고 있다. 벌써 몇 번째 와서 살펴보고 캐 갈 방법을 궁리하는 모양인데 쉽지 않을 것이다. 수목원으로 가져간다고 둘러대지만 어느 외딴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길가에 서 있어 온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늘 보는 소나무인데. 그 자리에 자리 잡고 큰지가 얼마나 되는 세월인데. 가지를 치고 뿌리를 잘라서 낯선 곳으로 끌고 간단 말인가? 괘씸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돈 몇 푼에 소나무를 팔아넘긴 양재천씨도 마찬가지다. 돈이면 무슨 일이나 할 사람들 아닌가?
올 봄 소나무를 팔았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지금껏 마음이 불편하다. 소나무를 위해 생미사를 들일 생각도 했다. 어디로 가든 잘 살아라고. 돈이 된다면 아무것이나 손을 대는 그들이 불쾌하기도 했다. 돈이 가장 중한 세상이기는 하다. 세상의 모든 구심력이 향하는 곳도 바로 돈이다. 말이 좋아 자본이니 경제니 하지만 결국 돈의 문제다. 그렇다면 돈도 안 되는 모 심는다고 서 있는 나는 또 무엇하는 사람인가? 허나 세상의 모든 죄악은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나누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나무 팔 일도 없지만 그리 하지 않아도 크게 아쉬울 것 없다. 내 먹을 만큼의 소출이 나오는 논에 직접 모를 내는 이것이야말로 내게는 당위이며 동시에 여유다. 이 여유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점심이 늦었다. 백일식당 아주머니가 모심는다고 하니 옛날 모심을 때 고생했던 이야기를 한다. 얼마나 허리가 아픈지 몰랐다고 하는데 논이 작아서 난 그렇게 힘든 줄 모르겠다고 했다. 요즘은 승용 이앙기가 있어 가만히 앉아서 모를 심는다. 얼마나 편리해졌는지 기계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그 편리성에 한 번 맛들이면 결코 손으로 직접 일하기가 어려워진다. 오래 쉬지도 못하고 서둘러 오후 일을 시작했다. 오늘 중으로 마칠 수 있을까? 큰소리는 쳤지만 갈수록 몸이 힘들어진다. 바위 위에 앉아 쉬고 있으니 김용현 선생이 지나가다 사람을 좀 부르지 혼자 하느냐고 타박을 주었다. 내 먹을 것 내 손으로 하지 누굴 부르나? 하고 말았다.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만만치가 않다. 몸이 지치고 피곤해지니 마저 마쳐야 하나? 내일 하나? 자꾸 망설여졌다.
지연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마루 아라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시간이 늦어졌지만 마지막까지 힘을 내어 기어이 끝을 보았다. 모를 다 심고 나서 바라보니 논에 가득 찬 모가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참 아름다웠다. 이 흐믓함은 여유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너무 넓게 심어진 곳 두 줄까지 보식하고 나니 긴 해가 어둑해졌다. 이미 실상사의 종소리도 다 지나갔다. 일을 마치고 정리하고 있는데 이장네 모친이 밭으로 올라간다. 인사를 하니 "모 심었는 모양이네요." 하더니 "암, 모는 손으로 심어야!" 하며 가셨다. 밑으로 내려가 양수기를 틀어 논에 물을 대고 들어오니 여덟 시가 훌쩍 넘었다. 오늘 저녁의 늦은 식사, 이것 역시 게으름이 아니라 여유로움일 것이다.
모내기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