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농사
양파를 수확했다. 알이 굵다. 몇 년째 양파농사를 짓지만 아마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잘 된 양파일 것이다. 동네 사람들의 말이 그렇다. 양파를 캐다가 문득 생각이 든 것은 왜 우리 밭의 양파가 굵고 잘 되는 가였다.
농사를 많이 지어본 것도 아니고 거름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며 늘 봄에는 다른 집에 비해 늦게 올라오고 비실거리는데 일단 힘을 붙이면 금방 따라잡고 오히려 더 잘 크는 것이다. 논으로 쓰던 땅이어서 그런가도 하지만 그것은 다른 집도 마찬가지다. 마늘이나 양파가 잘 되니 좀 많이 심으라고도 하지만 내가 일년 먹을 정도면 충분하지 얼마나 더 심을 것인가?
나는 멀칭을 하지 않는다. 얼마 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비닐을 씌워 땅을 숨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다. 거름도 그저 적당히 뿌리고 대신 조금 깊이 심고 왕겨나 풀로 위를 덮어준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마늘이나 양파가 날이 완전히 풀려 위로 올라올 때 쯤 웃비를 한 주먹씩 얹어주는데, 그러고 나면 크는 속도가 부쩍 달라진다. 풀도 처음 자랄 때 한번 정도 뽑아주고 마늘이나 양파가 큰 뒤에는 그냥 놔둔다. 알을 굵게 하려고 물을 준다거나 양파대를 미리 넘긴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일체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도 마늘과 양파는 대가 굵고 튼실하게 잘 자라난다.
해마다 마늘과 양파농사만큼은 실패 없이 잘 되고 있는데 인근의 함양이나 산청이 마늘과 양파 농사가 성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땅이나 기후가 적당한 모양이긴 하다. 그래도 아무 경험이 없었던 첫해에는 그다지 좋은 작황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보는 동네 사람들마다 마늘 양파가 잘 됐다고 입을 모은다. 생각건데 추운 겨울바람을 견디고 난 뒤 봄에 막 올라오는 시기에 때 맞춰 주는 웃거름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포기마다 정성스럽게 놓아 주는데 적당한 시기에 알맞은 거름이 마늘이나 양파의 성장에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물론 농사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규모가 있는 농사라면 어차피 관행적인 농법과 기계적 작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경우에도 너무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를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점이다. 또 농사를 짓다 보면 실패하는 작물도 있고 잘 해오던 작물을 망치는 해도 있다. 작년 거세미 때문에 망친 배추나 올 해 씨감자를 잘못 골랐는지 형편없는 감자농사가 그렇다. 들깨는 잘 올라오는데 참깨는 또 영 시원찮다. 아마 이것도 해거리가 있는 모양이다. 내년에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아야겠다.
땅이 좋아야 하고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하며 때 맞춰 적당한 웃비를 준다든지 정성을 다 하되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작물을 키우는 것은 사람을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비닐 멀칭이라는 보호시설, 너무 과한 거름, 스스로 크도록 놔두지 못하고 무언가 자꾸 손을 댄다는 것은 사람을 키울 때의 과잉교육과 마찬가지다. 사람의 조바심,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그 나이와 시기에 벗어난 것을 욕심내다 보면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이다. 설사 우수한 재능을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그 밑바탕이 흔들리기 쉽다. 더군다나 일반 농사와 달리 사람농사는 한 번 실패하면 고칠 방법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물론 아무리 잘 해도 잘못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아이와의 관계를 친밀하게 이루지 못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이라면 후회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내가 바로 그러하니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참으로 염려스럽다. 한 가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부모가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않고서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알면서도 잘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 점에 있다. 지금도 그러하니 어찌 보면 내 운명인지 모를 일이다. 나처럼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녀의 앞날에 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되니 그것은 인과응보에 가깝다. 다만 내가 내 부모에게 기대거나 원망하지 않았으니 내 아이들도 바라건대 아비의 못난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제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잘 극복하고 자기 앞날을 헤쳐나기를 바랄 뿐이다.
벨라뎃다씨가 지나가길래 한 망, 김용현네도 한 망 주었다. 나눠 먹을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화단의 섬초롱, 기린초, 까치수영 등이 한창이다. 올 봄 거름을 넉넉히 주었더니 꽃이 만발하였다. 이런 꽃들도 그렇거니와 내가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농사를 잘 짓는다 해도 작물들이 순전히 그것만으로 잘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토양이 맞고 날씨가 적당하니 조금만 거들어 줘도 잘 크지 않았겠는가? 무엇보다 하늘의 도우심과 섭리가 그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양파를 수확하고 난 뒤.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