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통신

소나무를 벗하고저...

방산하송 2010. 10. 19. 22:05

공사를 시작했다.

건축허가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모되어 철이 늦어졌다. 장사장은 추워지기 전에 기초만 끝나면 인부를 집중 배치하여 올해안으로 집을 완성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우선 집터 주위의 물기를 빼기위해 도구를 치고 관을 묻고 잡석을 넣어 물길을 차단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집 뒤가 산 아래로 담을 친듯 땅이 낮아 아무래도 물이 차일 것 같았는데 결국 처음 계획보다 좀 복잡해졌다. 그러나 앞으로 살 사람을 위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좀 더 확실하게 공사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창고를 본 건물과 동시에 짓기로 하고 설계변경을 하니 30평이 넘고 설계가 복잡해진 관계로 추가 비용이 들었다. 30평 이상은 기본 평면도 외에 입면도나 측면도가 추가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계단을 넓히는 등 내부 설계도 다소 변경하였다. 건축설계 사무실 노사장은 재미있는 사람이다. 갈때마다 설계 수정하는 것이 미안해 과자봉지를 사 들고 가면 웃으며 본인이 직접 커피를 대접한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 집짓는 이야기 등을 나누다 보면 일보다 딴 얘기로 시간이 더 소비된다. 오늘도 앉아 고건축 책을 기웃거리다 나오려고 보니 안경을 어디다 벗어놨는지 찾을 수 없어 한참 법석을 떨었다. 서로 건망증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웃었다.

 

고사를 지냈다. 남원시장에서 장을 보고 이장님께 상을 빌리고 산청 김선생을 축관으로 불러 장사장, 인부들과 같이 제를 올렸다. 꼭 그런류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내가 집을 짓는 터에 두루두루 인사겸 앞으로 더불어 살아가야할 주변의 산과 나무, 집 뒤의 산소에까지 인사를 해야할 것 같아서이다. 삶은 돼지 머리가 없어 생머리를 얹고 대신 수육을 옆에다 놨는데 다소 결례를 한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용서해 주시리라 믿는다.

 

전일 하루종일 걸려 붓으로 축을 썻는데 축문은그런데로 잘된 것 같았다.

 

歲次 庚寅 九月 열하루

不肖 윤장호는 만물을 두루 굽어 살피시는 천지신명과 이 자리에 누우신 모든 선인들께 고합니다.

오늘 여기 산내 대정리 218번지 산자락에 작은 누실을 짓고자 삽을 대고 땅을 고르나이다.

대저 사람이 기거하는 양택은 산세가 길하고 햇볕이 좋으며 인심이 후한 곳이라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곳은 부족하나마 집을 얹을만한 땅이오나, 무릇 사람의 일이란 오로지 천지신명의 보살핌이 있은 뒤에야 완성이 되는 것이라 하였는바 이에 맑은 술과 과포로 정성을 다하여 고하나니 부디 흠향하시고 두루 살피시어 공사 중 무탈하고 집을 들어와 사는 이들이 세세 번성할 수 있도록 普愚하여 주시옵소서.

상향(尙饗)

 

 

옆자리의 소나무를 보니 오늘도 의연하다. 근년들어 소나무의 기상과 절개를 읊은 시를 즐겨 읽었는데 아마 서로 통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리산 자락의 봉우리가 정겹다. 앞산 두 봉우리 가운데로 멀리 반야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부디 무사히 공사가 잘 마무리되어 춥기전에 별탈없이 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10. 10. 19. 송하산방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