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는 새가 미워요
콩 뿌린 것 다 파먹고
살아남은 어린 순마저 끊어 먹다니
토마토 익을 만하면 먼저 쪼아 놓고
마늘 심으면 일 없이 뽑아 팽개쳐 놓으니
나는 정말 새가 미워요
하늘을 나는 새는 먹을 걱정 안한다고요?
내 콩은 어쩌라고요?
그래도 사랑하라고요?
못합니다
내가 콩농사 포기하기 전에는 절대 못합니다
으~ 끝까지 미워할 거예요
곡식을 심어 거둘 때까지 여러가지 장애가 따른다. 병충해도 있지만 짐승 타는 것도 큰 문제다. 뒷밭에 메주 콩을 심었는데 이놈의 산비둘기와 까치들 등쌀에 제대로 건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콩을 심은 뒤 귀찮지만 싹이 올라올 때까지 차양막을 덮어 놓는데 이 영악한 것들이 가장자리를 부리로 들썩여 콕콕 파먹는 것이 아주 이골이 났다. 올해는 꿩까지 와서 설치는 바람에 애를 먹었는데 싹이 올라오면 어쩔수 없이 덮어놓은 것을 걷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고르게 자라지 못해 아직 덜 올라온 것들을 찾아다니며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일일이 끝 순을 잘라 먹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콩이 엉망이 되었다. 정말 부아가 치민다.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분이 풀릴꼬? 불평을 해 본들 심사만 사나워졌지 뽀족한 수단도 없고 할 수없이 하느님께 투정이나 할 수밖에...
토마토가 익을 때는 나와 서로 눈치싸움을 한다. 그런데 이제 따야지 하고 가보면 틀림없이 먼저 쪼아놓은 흔적이 있다. 울며 겨자먹기로 나머지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덜 익은 것을 따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마늘을 심어 놓으며 구멍마다 부리로 쑤셔 마늘을 뽑아낸다. 먹을만한 것이 못되니 고랑에 그냥 흩어 놓고 간다. 아이고 얄미운 놈들......
그런데 눈 앞에선 맹렬한 적개심이 솟지만 돌아서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심은만큼 다 거둔다는 것은 혹시 욕심이 아닐른지 반성이 된다. 미리 새들 몫을 남겨놓으면 안될까? 햇볕과 바람과 비를 이용했으니 자연과 하늘에 내야 할 세금으로. 그렇다면 그 몫은 감당하겠으나 제발 내 먹을 것은 남겨놓고 가기를 빌 수밖에 없다. 너무 과한 징세는 민란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오판> 며칠 후 콩밭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용현네 토끼가 콩밭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어린 순을 잘라먹은 것은 새가 아니라 토끼였다. 토끼를 보는 순간 올 콩 농사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새들은 순이 올라오면 더이상 입을 안대는데 싶었다. 지키고 앉아있을 수도 없고 이런 낭패가 없다. 김용현 선생이 토끼를 키운다고 하더니 몇 마리가 도망을 나갔는데 여기와서 일을 벌이고 말았다. 결국 남은 것마저 다 뜯어먹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지. 제대로 단속도 못하면서 짐승들을 키운다고 이것저것 잔득 벌려 놓더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그나저나 올해는 메주를 쑤고 장을 담가야 하는데 어찌 해야 할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