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하송 2016. 7. 29. 01:50

운아! 운아! 네가 죽다니.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 느닷없이 벌어진단 말이냐? 네가 그렇게 숨을 거둘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구나.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하여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구나. 소나무 밑에 너를 묻고서도 금방이라도 네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쳐다볼 것만 같아 자꾸 너의 집으로 눈이 가니 이 무슨 변괴란 말이냐?


그 예방접종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더란 말이냐? 아무 탈 없이 건강하던 너를 반나절도 안 되어 숨을 거두게 만들었으니 우리가 너를 죽였구나. 미안하구나! 운아. 몸을 가누지 못하고 겨우 숨을 들이쉬는 너를 두고 나는 네가 곧 정신을 차릴 것이라 생각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순간에 너는 눈을 감았구나.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너를 두고 무정히 나는 뒤를 보였구나. 한참도 안 되어 너는 이미 싸늘히 식어있고 나는 할 말을 잃었으니, 오! 너는 홀로 떠나고 말았구나. 운아 운아 어찌 대답이 없느냐?


갓 태어나 어미젖을 떼자마자 이 먼 곳까지 나를 따라와서 함께 한지가 어언 육 년이구나. 내가 죽을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한다고 일쑤 다짐을 주곤 했는데 어찌 이리 황망히 떠나버린단 말이냐? 어렸을 적엔 밤마다 내 신발에 머리를 묻고 자고 문을 여는 기척만 나면 쏜살같이 달려와 앞장을 서던 운아, 너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집을 짓고 난 뒤 마당을 가꾸고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을 때 늘 내 곁에 네가 있었으니 이 집은 곧 너와 나의 집인데 이제 네가 가고 없다면 나 혼자 무슨 재미로 집을 가꾸고 농사를 지을거나?


너의 이름을 지을 때 하얀 구름 같다고 운이라고도 했지만 청나라의 심복이 사랑했던 아내 운이의 이름을 연상하기도 하였으니 너는 이 낯 선 곳에서 그 누구보다도 친근한 나의 반려였다. 그런데 절절했던 심복과 운이의 사랑과 인연도 운이의 병사로 그만 일찍 끝나버리고 말았으니 내가 아무래도 너의 이름을 잘못 지었나 보다. 어느 누군들 너처럼 한결같이 나를 반기고 따르며 좋아해 주었을까? 어딜 갔다가 한밤중에 돌아오기라도 하면 아무도 없는 빈 집을 혼자 지키다 무연히 소리치고 펄쩍이며 마중해 주었으니 나는 네가 기다리고 있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늘 가벼웠다.


뒷밭에 같이 올라가 일하는 동안 혼자 놀다가도 안보여 부르면 부리나케 달려오던 운아, 그러다가 심심하면 살며시 다가와 연장 든 내 손 위에 앞발을 얹고 같이 놀자는 수작을 부리기도 하고 그 발을 치우면 다시 다른 발을 들어 얹던 녀석아. 마지못해 나도 같이 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구나. 집 뒤 텃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혼찌검이 난 뒤로는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올라와도 고랑으로만 다니던 운아. 집안에서 잘 놀다가 내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살금살금 소나무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벗어나다 들키는 순간 벼락같이 윗길로 줄행랑을 치던 운아. 찾으러 가면 멀리도 못가고 위쪽 밭이나 다리 언저리에서 해찰을 부리다 도로 잡혀 따라와 야단을 맞곤 했었지. 귀찮아 잠시 묶어 놓으면 풀어달라고 애원하듯 소리를 내어 나를 흔들리게 하던 운아. 논에서 일 할 때는 무논으로는 들어오지 못해 나를 따라 논 가장자리를 몇 바퀸지도 모르고 같이 돌던 운아. 너는 어쩔 땐 참으로 사람보다도 나았느니라.


운아, 이제는 목줄도 없이 고리도 없이 마음껏 뛰어 놀고 어디든지 가고프면 바람같이 달려가거라. 너를 묶어 놓은 것이 늘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는데 이제 산이든 들이든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너를 말릴 이 아무도 없으니 운아,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서고 싶으면 서고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너를 묶어 키우는 문제로 나는 늘 고민이 깊었구나. 놔두자니 동네사람들 지청구가 끝이 없고 묶어두자니 못할 짓인 것만 같아 늘 갈등을 하였다. 결국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 매여 구속이 되는 것 같아 심히 마음이 불편하였지. 낮에는 풀었다가도 저녁이면 다시 묶겠다고 고리를 들고 부르면 가까이 와서도 묶이기가 싫어 이리저리 딴전을 피우다 두 번 세 번 채근질을 해서야 마지못해 고개를 내밀던 운아. 나도 너를 묶는 것이 참으로 싢었다. 그것마저 보지 못해 뒷말을 해대는 동네사람들 때문에 작년부터는 아예 묶어놓고만 지냈으니 마지막 일년 여 너는 참 갑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운아, 살아있는 동안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걱정 없이 넓은 마당과 햇빛과 바람을 마음껏 즐기며 살았고 어느 누구도 너를 귀찮게 하거나 간섭하지도 않았으니 너의 삶이 너무 일찍 끝나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행복한 삶을 살다 간 셈이다.


운아 나는 너에게서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배웠구나. 밀을 베다 손가락을 다쳤을 때 비명소리를 듣고 거침없이 달려와 곁을 지키던 운아, 집에 내려와 마당에 앉아 손가락을 쥐고 있으니 마주 앉아서 지켜보다 내가 아프다고 하자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다친 곳을 핥아주고 빤히 쳐다보던 운아, 위로란 아무 이유도 없이 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 잘해서든 잘못해서든 당장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해 주고 함께 해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처음으로 새끼를 낳던 날이 생각난다. 추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밤에 희미한 새끼울음 소리를 듣고 나갔더니 너는 벌써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아놓고 부지런히 핥고 있더구나. 추위에 떨면서 지성으로 새끼의 분비물을 핥는 너를 보고 어미의 모성이란 얼마나 지극한지, 그리고 그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는 것을 알았다. 따뜻한 국물을 떠다 먹이고 나도 덩달아 그날 밤이 바빴지. 강아지들은  너를 닮아 참 예뻤다. 그런데 날로 자라는 새끼들은 귀엽긴 했지만 매일같이 돌아다니며 싸대는 똥을 처치하지 못해 전전긍긍 애를 먹다가 애먼 너를 핀잔하기도 하였구나. 겨우겨우 새끼를 분양 했는데 두 번 째는 정말로 힘이 들어 생각 끝에 너의 불임수술을 결정하고 말았지. 사실 발정기 때 바람을 피우고 돌아다닐 때는 팔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생물이 자손을 번식하고 키우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인간이 자기 편한 대로 개에게까지 불임수술이라는 만행을 저지르니 참으로 이중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도 너와 오랫동안 같이 지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수술을 하고 말았구나.


재작년 겨울 늘 묶어놓은 것이 미안해 너의 동무로 깜순이를 데려왔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버림받았던 어린 깜순이는 식탐이 강하고 늘 너를 귀찮게 했는데도 너는 크게 개의치 않고 내버려두는 것을 보면서 너의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았다. 깜순이의 해코지를 다 받아주고 그러면서도 너의 양보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잘 지내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곧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겠느냐? 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 일도 깜순이 피부가 안 좋아 의사를 불렀는데 공연히 곁에 있다 덤으로 맞은 예방주사 때문에 도리어 네가 죽고 말았으니 참 이런 어이없는 일이 또 있을거나?


너는 나에게 어떤 인연이었을까? 이곳에서 너와 같이 지내는 동안 지금껏 내가 알았던 어떤 인연, 어떤 사람보다도 친밀함과 가까움을 느꼈고 또 아무 조건도 계산도 없는 무한의 신뢰와 관심을 주고받았으니 운아, 어디서 다시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있으리. 마치 젊은 날 느꼈던 실연의 상실감이 이러했을까? 너를 잃고 내 마음이 이러한데 세월호로 꽃 같은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자지러지는 아픔이었을까? 네가 눈에 선하고 지금도 집 앞에 서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아린데 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너의 굵고 유난히 많은 똥을 치우면서 늘 지청구를 주고 구박을 했던 것도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다. 그것은 네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이야기였는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똥을 치우며 한숨을 쉬었고, 그것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었다. 풀어줄 수가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쌓이는 너희의 똥을 처리할 퇴비장을 지난 유월에 만들었는데 한 달 만에 다시 치우게 됐구나. 깜순이는 내 보냈다. 아무래도 네가 눈에 밟혀 아무것도 모르는 깜순이를 계속 키우기가 힘들어서다. 너 같으면 죽어도 아니 갔을 터인데 깜순이는 새 주인을 따라 아무 미련도 없이 뒤도 쳐다보지 않고 잘도 가더구나. 이제는 다시 개를 키울 수 없을 것 같다. 운아, 네 집도 치웠다. 그 자리에 조그만 잔디밭을 만들 생각이다.


대금을 연습한답시고 너희를 불러 놓고 소리를 내면 얌전히 앉아 들어주던 운아. 깜순이는 드러누워 쳐다보지도 않았지. 이제 누가 나의 대금소리를 들어주리. 누구 낯선 이가 와도 아무 기척해 줄 사람도 없고 집안이 적막강산이로구나. 운아, 너를 소나무 밑에 묻고 마음을 진정하지 못해 하루에도 열 번 스무 번을 찾아가 보지만 돌아서면 또 마찬가지구나. 부디 편안히 잘 지내거라. 너로 하여 내가 행복했으니 너도 늘 행복하거라. 그리고 나를 잊지 말고 기다리거라. 훗날 내 죽으면 운아, 다시 만나 같이 풀밭으로 시냇가로 산으로 맘껏 돌아다니며 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