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보며

의자는 의자다

방산하송 2016. 10. 22. 22:09

벤치를 샀다. 그럴듯한 공원용 벤치다. 그러나 어쩐지 생경한 물건이 앉아있는 것 같다. 그다지 마음에 썩 달갑지가 않은 것이다. 벤치에 앉아 큰 산을 쳐다보거나 점심을 먹은 뒤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아있으면 자리가 마침맞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뭔가 어울리지 않은 듯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아스팔트나 공원의 잔디밭 같은 곳에 적당한 의자를 시골 자갈마당에 갖다놓으니 양복을 입은 사람이 밭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것이다. 적당히 나무를 자르고 베어 만든 투박한 의자나 평상이 있으면 훨씬 자연스럽고 보기가 좋지 않을까 하는 나의 선입견 때문인 것 같다.


젊은 날 피터 벡셀이라는 독일 작가가 쓴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짧은 글의 주인공은 어느 날 책상을 책상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당위를 의심하고 모든 사물과 행위에 자기가 새로 만든 명칭을 고안해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말이 달라지면서 주인공도 주변의 사람들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끝내 입을 닫게 되었고 마침내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는 우스꽝스런 이야기였다. 기존의 약속된 질서나 규정을 벗어났을 때의 상황을 빗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큰 틀에서의 사회적 룰이나 약속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자는 의자여야 한다.' 라는 명제는 수용하지만 의자에 대한 해석과 용도와 형태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난 기존의 틀을 따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왜 저런 의자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 누구의 결정인가? 물론 그것은 나의 결정이다. 그렇지만 결코 나의 결정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그것에 대한 선호, 주변에 있는 의자의 형태, 가구업체나 판매업체의 영업기술 등에 의한 결과인 것이고 은연 중 일종의 강요성이 작용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비에 대한 유도가 공공연히 횡행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속임수가 아닐까? 소비해야만 한다는 강박감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상품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상품에 대한 확대가 이루어진 것을 처음으로 실감한 것은 금융기법에 대한 것이었다. 보험이나 예금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놀라웠는데 지금은  인간의 행위도 상품화되었고 인간자체를 상품취급하기도 한다(인간을 상품과 동일시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거북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상품 속에서 우리는 늘 소비를 하며 살아야 되므로 자신도 모르게 과한 소비를 하게 되고 때로는 갈등과 불필요한 욕망에 휩싸이기도 한다. 넘치는 상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셈이다.


아이가 출생하면 새로운 소비자가 한 명 태어났다고 한다는데 사실 인간의 생활이란 곧 소비행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의 소비행위가 과연 적절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필요와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기 보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저지르고 마는 일들이 너무 많다. 아마 허영과 사치, 그리고 유행과 부추김 등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필요에 의한 것보다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생활도구 뿐 아니라 전자제품과 같은 것, 의류나 신발, 미용이나 건강에 관련된 상품 등이 대표적인 것 같다. 심지어 식품까지도 이러한 경향에 노출되어 있다.


하나같이 우리에게,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인 것처럼 광고를 해대니 그 유혹을 견딘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유행과 소비에 물들어 이미 충분히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탐욕이다. 넘치는 물건 속에서 자극하는 욕구를 견뎌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자기자신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소비가 미덕이라는 오래된 경구가 있지만 그것 역시 의도적인 캠페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려운 경제 형편으로 당장의 삶에 지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과시적인 소비란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나는 새로 산 의자에 앉아 과연 이 의자가 제대로 산 상품인지, 여기에 어울리는 물건인지 열심히 고민을 하며 불필요한 청승을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