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보며

가을 빛에 타는 강

방산하송 2010. 11. 2. 20:21

산내 집짓기 기초공사를 시작하는 날이다. 점심 때 출발하여 생초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엄천강을 따라 지리산 쪽으로 들어갔다. 온 산은 가을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아래쪽에는 그 빛에 타는 듯 강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강! 이렇게 맑고 빛나는 강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가?  언제나 수량이 풍부하고 깨끗한 물이 그치지 않고 흐르는 곳이다. 급류에 닳은 암반과 자갈들 사이로 계곡물은 시원스레 소리내며 흘러내린다. 운봉에서 인월을 거쳐 내려온 물이 달궁과 뱀사골에서 내려온 물과 산내에서 합수된 뒤 마천에서 백무동 물을 만나고 다시 칠선계곡의 물까지 보태 휴천에 다다르면 상당한 폭과 수량을 유지하며 강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것이 엄천강이다.

 

옛날에는 길이 없어 경상도인 마천을 가려면 함양에서 전라북도인 인월을 거쳐 거꾸로 강을 따라 내려왔었다. 지금은 계곡을 따라 길이 잘 포장되 있고 최근에는 지리산 둘레길이 이름이 나면서 더 붐비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곳도 곧 댐을 막는다는 계획이 있어 인근 주민들이 곳곳에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휴천, 마천쪽은 좀 덜한 둣하고 산내쪽과 실상사 주변은 드러나게 반대를 하고 있다. 아마 지역적으로 손익이 다를 것이라는 느낌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실상사 주변은 진즉부터 생명운동이나 환경부분에 좀 더 민감하고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어쨌거나 이 아름다운 곳을 메워 댐을 막는다고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오고 안타깝기 그지 없다.

 

개발에는 경제적 가치나 효용성과 자연보존이나 환경문제가 늘 대립되긴 하지만, 여기는 댐을 막을 절실한 필요성도 없는 둣 한데 무리하게 추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대도시의 물부족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수단이겠지만 제발 도시개발을 빌미로 아무 연고도 없는 먼지역의 자연과 환경을 막무가내로 훼손하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자연과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하면 배부른 소리인양 취급하는 일부 정치세력이나 개발업자, 동조하는 주민들이 있다. 그러나 개발도 어느정도 납득이 가는 수준이여야 동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무도하고 파괴적인 개발을 찬성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인간의 삶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무엇보다 한번 파괴된 자연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요즘에는 이러한 개발과 건설이 더 극성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택지나 공장용지를 조성하거나 휴양지 숙박시설 등을 개발할 때 야산을 함부로 깎아내거나 산림을 훼손하여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거나 볼썽사납게 만들어 논 곳이 많다. 실효성이 낮은 대규모 간척이나 댐 건설, 천연적 자연환경을 무너뜨리는 골프장 공사 등도 문제다. 특히 도로건설로 인해 전국 방방곡곡이 일년 내내 몰살을 앓고 있다. 도로야 말로 자연과 농촌을 망치는 가장 큰 흉악범이다. 온 시골을 깎고 자르고 뚫고 강을 마구 건너는 다리로 인해 숨막히듯 답답하고 굉음에 사달리는 곳이 많다. 왜 도로는 이렇듯 마구잡이로 건설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절대적인가? 직선만이 가장 효율적인가? 왜 효과적인 정책으로 도로환경을 개선하지 못하며, 왜 주변환경과 어울리고 친근한 형태로 건설하지 못하는가? 

 

건설은 곧 발전이라는 발상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발전은 또한 반드시 훌륭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수단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 빠르게 파괴되고 상실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최근 전국적인 관심사인 4대강 문제도 바로 그러한 대표적 현상이라고 본다.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대규모 공사를 철저한 타당성 검사도 없이 사전 준비도 미흡한 상태에서 밀어부치듯 강행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고 충분한 의견 수렴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정상적인 민주정부의 정책 집행으로 볼 수도 없다.  

 

국토의 근간이고 젖줄인 4대강을 대대적으로 변형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하다. 더욱이 한번 손대고 나면 차후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 돌릴 수 없다는 것이 더 두렵고 심각한 문제다. 경제적 이익이라는 것도 모호하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집행하지만 경제에 미치는 효과라는 것이 과연 건설업계나 토목분야 외에 얼마나 도움이 될것인지 의심스럽다. 건설 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에 파급효과가 이루어질 것인지, 새로운 고용창출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그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현장을 한번 가보라. 거대한 보와 옹벽, 파헤쳐진 모래사장을 보면 이런 무자비한 재앙이 없다. 사람의 가슴을 온통 파헤쳐논 듯한 끔찍한  느낌이 든다. 하류나 오염지대, 홍수에 취약한 지역 등 보수와 개발이 필요할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전면적으로 일시에 군사작전 전개하듯 해치울 성격의 사업이 아니잖는가? 근본적으로 4대강은 경제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돈이 된다면 백두산도 지리산도 한라산도 파 없앨것인가? 우리가 손을 댈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도 있다. 국가 수반의 임무는 국토의 보전이 우선이지 개발이 우선이지는 않다.  

 

 

리의 미래를 위한 건설과 자연개발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한번 잘 생각해보자. 인류의 지속적인 개발과 발전은 과연 가능한가? 모든 자원에는 한계가 있고 언젠가는 동이 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갈수록 그 속도가 증가할 뿐이지 한번도 늦춰진 적이 없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엇이 옳고 정의인가? 이런 비유가 있다. 우리 모두 톱을 들고 나뭇가지에 앉아 자기가 앉은 나무가지를 열심히 자르고 있다. 서로 쳐다보면서 누가 더 빨리  자르는지 경쟁하면서... 결국 한 사람이 떨어져 죽는다. 잠시 주춤하다가 또 다시 열심히 자르기 시작한다.

 

지리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빛나는 강, 아름다운 강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생명의 강, 우리를 살리는 강, 어머니 강, 그 강의 고통에 가슴이 저려오는 아픔을 느끼며 동시에 미래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 온 몸을 엄습해오는 것 같았다.  

 

2010. 11. 2. 송하산방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