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통신

푸른 버드나무에게

방산하송 2010. 11. 7. 14:53

지난 해 초 둘째아이가 입대한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에 한 가지 계획하고 있었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었다.

 

그것은 그동안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주어야 할 중요한 것들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자괴감 같은 것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 늦었지만 하고 싶은 말, 해주어야 할 말, 그리고 알아야 할 것들을 편지로나마 전달 하자는 것이었다.

늘 나는 아이에게 실망스러워 했고 아이는 아이대로 그것에 대해 불만스러워했던 것에 대한 화해의 시도이기도 했었다. 

 

어렸을 적 얘기부터, 집안얘기, 나의 인생과 삶,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원칙적인 것, 알아야 할 것, 지향해야할 것 등을 포함해 기타 자잘한 삶의 얘기와 취미나 여행, 역사, 문화, 예술, 종교, 정치 등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제대하기까지 한 20여통이면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이런 계획을 아이에게도 통보하였다. 다행히 아이가 입대한 후 편지를 통해 모르는 사이에 상당한 철이 들었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시작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아이도 답장을 통해 그러한 편지를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였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마 군대라고 하는 특수한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내 의도가 효과적으로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부친이 내가 입대하였을 때 보내주신 편지에 '오월의 버드나무처럼 항상 푸르거라' 라는 말을 그대로 아이에게 들려주었고 계획대로 몇 통의 편지가 한달에 두어번 꼴로 잘 전달되었다. 1회에 A4 용지 5-6매, 11포인트 였으니 양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을 중심으로한 이야기와 클 때의 이야기, 우리 집안얘기, 내가 살아온 과정, 사람의 인생관, 종교와 신앙에 대해,  친구와 인간관계, 결혼과 이성의 문제, 교양과 취미 등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것이 8-9 회에 걸쳐 끝나고 난 뒤 지난 겨울 중단되고 말았다. 여행이나, 예술, 우리의 역사, 정치, 경제 등에 대한 것들을 계속해서 쓰려고 했으나 마침 몸이 안 좋아지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종내 다시 연결이 되지 못했다. 아이가 편지를 기다린다는 연락도 받았지만 한번 멈추니 쉽게 다시 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퇴직을 하였고,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끈을 놓지 않으려고 블로그를 개설한 뒤 나의 생각과 주변의 일들을 주제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러는 사이 편지는 또 계속 뒤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이제 아이의 군대생활도 절반이 훌쩍넘었고 반년 남짓 뒤면 제대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남은 주제를 뭉쳐 이렇게 한통의 편지로라도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아마 이후 쓰고자 했던 이야기들은 대부분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로 대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래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목차.

1. 편지를 쓰는 이유. 군대생활이란? 나의 군대 시절.

2. 어렸을 때의 기억과 일들, 너의 이름에 대해, 가족이란?  

3. 아버지의 인생관과 교사 생활, 어머니와 관련된 것.

4. 우리 집안의 내력.

5. 교양과 취미, 예술에 대해

-어릴적 미술대회 입상과 바닷가에서의 미술 솜씨. 미술 시화전에서 보이던 태도...

-어릴적 계란으로 케이크 만들던 예술적 감각에 대해, 피아노의 소리...

-음악회, 샤갈전, 모네의 그림, 로댕전, 매그넘전...

6. 인생관, 훌륭한 인생, 행복한 인생, 바람직한 인생, 도덕성과 경쟁력, ... 등

7. 인간관계, 친구

8. 이성의 문제, 결혼, 여자문제...

9. 종교와 신앙에 관해

-종교적 헌신, 맹목적이 아닌, 밖으로 향한 신앙생활,

-적극적 봉사와 희생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부도덕한 선택은 하지 않아야,

10. 문학, 책이야기, 나의 글쓰기.

-증조 할머니의 필사본, 할아버지의 일기, 나의 문학일기, 동양고전강독 등...

11. 여행에 대해.

12. 사진에 대해. 예술로서의 사진

-나의 사진과 사진관에 대해...

13. 우리 사회문제, 정치문제, 지역감정문제, 진보와 보수의 이념 문제

14. 시민운동과 시민의식, 사회의 건전성, 정의로운 사회

-타파해야할 사적인 모임과 패거리 문화, 연고주의, 학벌주의...

15. 우리 역사와 현대사

-민주화 운동, 남북문제, 일본문제, 역사의식 등... 

16. 교육과 교육문제

-나의 교육관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 등..

17. 경제, 부동산, 아파트, 집문제

18. 환경, 생태주의와 자연주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환경운동, 자연적 삶의 형태와 철학...

19. 동양과 서양, 미국이란?, 중국이란?, 이슬람문명 등 

20. 국제정세, 인종, 다문화사회 등...

 

 

아이의 답장: 강원도 화천군 산외면 삼일2리 

2316부대 101대대 1중대 1소대.  이병 윤영제

<209-838>

 

쓰다만 마지막 편지는 다음과 같다. 여기에 이어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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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우리의 삶과 같은 것...

 

엊그제 엄마와 서해안의 변산에 다녀왔다. 몇 달 전 학교 선생님들과 변산으로 단체 여행을 갔다 왔었는데 숙박지의 분위기가 좋아 일부러 다시 가보자고 한 것이다. 마침 눈이 너무 많이 온 후라 손님이 끊기고 제대로 난방이 안 되어 있어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내소사의 눈 풍경은 보기 좋았다.

 

나는 변산에 여러 번 갔었는데 갈 때마다 그 기억이 참 좋은 편이다.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내소사와 직소폭포, 정갈한 개암사의 모습이나 모항과 격포의 바다 풍경도 좋다. 바지락 요리나 젓갈류, 풍천장어 등 적당한 먹거리도 좋고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선운사도 가볼만한 곳이다. 혼자서 가기도 했고 여럿이 가기도 했는데 정운이 아버지랑 윤규병 선생이 이끄는 변산공동체에도 간 적도 있다. 한번은 내가 주도하여 학교 과학 선생님들과 현장 탐사를 간적이 있는데 그 때 갯벌과 습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여러 면에서 서해지역은 이쪽과는 사뭇 다른 풍경과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너도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나만의 여행을 많이 한 편이다. 주로 산을 가기 위해서지만 역사적인 곳이나, 아름다운 절, 그냥 이름 없는 시골 등으로 마음이 내키면 훌쩍 떠나기도 했다. 남들이 보면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여행은 나의 생각과 느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바다를 보러, 겨울의 눈을 보러, 저녁 예불을 들으러, 석양을 보러, 어떤 때는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러 떠나기도 했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늘 새롭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진즉부터 외국여행을 참 많이 하고 싶었는데 일반인들에 대한 해외여행은 80년대 까지도 금지 되어 있었다. 요즘이야 배낭여행 같은 것들이 일반화 되어 있어 젊은 친구들도 여행을 자주 가고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해외여행을 떠나지만 옛날에는 그것이 여의치 못했던 것이다. 88 올림픽 이후에야 자율화가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형편상 쉽게 나가기가 힘들었는데 다행히 98년도에 해외교사 연수에 선발되어 처음으로 미국 땅을 가보게 되었다. 거의 한 학기 동안이나 강의도 듣고 여기저기 견학도 했지만 텍사스에 살고 있는 기수 형을 불러 로키산맥과 그랜드캐년 등을 여행했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돌아와서는 중국과 일본에 학술조사차 참여할 기회가 있어 백두산과 일본 규슈지역을 답사했었다. 그 후 중국을 두 번 더 갔다 왔는데 두 번 다 항공표만 구입한 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짜서 개인적으로 한 여행이었다. 좀 더 여유가 있다면 오지여행이나 트래킹 같은 것을 더 하고 싶은데, 지금도 히말라야 트래킹을 한번 다녀오려고 몇 년째 벼르고 있지만 쉽게 실행이 되지 않는구나. 

 

인생여정이라는 표현도 있듯 여행은 삶과 가장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삶이 곧 여행이고,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 여행만큼 인생을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도 드물 것이다. 아이에게 인생을 알게 하려면 여행을 보내라는 말도 있듯이 여행은 그 자체로서도 유익한 일이지만 그만큼 사람의 자립심을 키워주고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키워주는 바람직한 활동이기도 하다. 또한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와 음식, 풍경을 경험한다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여행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쌓게 해주고 삶의 활력을 제공하며 인생을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또한 철저한 준비와 여행에 대한 건전하고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자칫 심신이 피곤해지며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여행은 일반인의 경우와는 조금 선호가 다른 편이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니 여행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우선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시여행보다는 역사적인 곳이나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애초에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니 여유 있는 고급스런 여행은 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런 여행자체를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모처럼 휴양지에 가서 휴식을 취하거나 번화한 거리에 가서 유흥을 즐기는 것을 나쁘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취미와 취향일 테니까. 또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행위가 여행의 본질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여행사의 일정대로 따라가야 하는 여행도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다. 여행이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지혜를 얻고, 인생을 가치를 깨닫고 새로워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동일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너희가 클 때 나는 방학 때마다 항상 어디든 같이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그것이 비록 대단한 일은 아닐지라도 너희들에게는 단지 어디를 갔느냐 보다 아버지와 무엇을 했느냐 라는 것이 중요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나중에 너희의 삶에 긍정적이고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낚시를 간다든지, 캠핑을 간다든지, 자전거 여행을 간다든지, 어떤 섬에 배를 타고 가본다든지... 

우리끼리 그런 것을 같이 해본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고 너희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인지,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너무 아쉽고 안타깝고 미안하기도 하다. 앞서도 이야기 한것처럼 엄마와의 생각에 많은 차이가 있어 그것이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늘 나는 혼자였다. 혼자서 산에 가고, 바닷가에 가고, 혼자서 꽃을 찍으러 가고, 혼자서 배를 타고 섬에 가고, 혼자서 차를 몰고 출발해 홀로 지리산에, 소백산에, 설악산에 올랐다. 혼자서 변산에 가고, 혼자 부석사 마당에 가 앉아 있다 왔다. 동해 바다가 좋아 무람없이 혼자 차를 몰고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했다. 사진을 시작한 것도 그러한 나의 여행에 동행자의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은 결국 혼자일 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깨 닫았다. 어차피 우리 삶이란 자기 혼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도 배웠다. 그러나 결국 다시 집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이었다. 혼자 쓸쓸히 어디선가 묵는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고 갈 때의 생각과는 달리 일단 목적지를 보고 나면 나는 한밤중에도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경우가 많았다.

 

주로 혼자서 다녔지만 그러나 이와 같은 여행을 통해 느낀 감상과 정서는 내 내면에 오래도록 남아 나의 인격이나 철학을 만들고 유지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어느 가을 저녁 소백산을 넘어가는 죽령 고갯마루의 완행버스 안에서 마침 흘러나오던 가느다란 바이올린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파르스름한 석양의 산그늘과 음악이 너무 어울렸는데 나는 그 저녁의 서늘하고 고즈넉했던 기운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부석사 저녁 예불시간에 무겁고 장중하게 울리는 범종소리에 여운이 남아 일어서지 못하고 뒷산 바람소리에 놀랄 때까지 앉아 있었던 적도 있다. 그 때도 한밤중에 집으로 되돌아 왔었다. 맑은 시냇물이나 풍경이 정겹고 좋아 몇차례나 다시 가 본 이름없는 시골의 골짜기도 있다. 강동바닷가 휴게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이다. 책 한권 들고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따뜻하게 반짝이는 바닷가의 풍광을 내려다보는 것은 나만이 즐기는 오래된 습관이다. 눈구경을 하기 위해서도 일 년에 한두 번 씩 꼭 여행을 갔다. 강원도나 전라도지역으로..., 그렇게 하얀 눈이 지천으로 쌓인 곳에서 뒹굴지 못하면 일 년을 편히 보내기가 어려울 지경으로 나는 눈을 좋아한다.

이후 중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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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난 겨울 너에게 쓰던 편지가 위의 글에서 더 이상 진척이 되지 못하고 멈춘 뒤 늘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마무리를 한다. 나머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생략하지만 대신 내가 개설한 블로그의 글들을 읽어보면 아마 충분히 그것을 보충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읽고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댓글도 달고 하길 바란다.

 

그동안 너는 몸의 이상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고, 나는 퇴직을 했으니 큰 일들이 각자에게 일어난 셈이다. 그러나 너는 잘 적응하여 이제 지나온 날보다 남은 날이 훨씬 짧으니 너의 마음도 많이 홀가분 하리라고 생각이 들고, 나는 이야기 한데로 지금 지리산에다 집을 짓고 있는 중인데 대단치는 않아도 그곳에 정착을 할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레고 많은 기대가 된다. 조금 시간이 늦어져 12월 말이나 되야 완공 될른지 모르겠다. 그 때 시간을 맞춰 휴가를 나오면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편지를 통해 어느정도 짐작을 했겠지만 나의 성향이나 바람은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하다. 되도록이면 건전한 생각과 생활을 강조하는 대신 깊이 있는 사고와 자기 주체성을 많이 강조했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삶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의 개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감과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대에서 생활할 때 후임병들에게 결코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이제 얼마 후면 제대를 할텐데 이 때부터가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네가 무엇을 어떻게 결정하고 준비하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네가 쌓아온 것들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많이 줄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인생은 이 시기의 태도와 결심에 의해 앞으로도 많은 차이가 발생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고 성실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너의 가장 큰 약점은 끈기가 부족하다는 것, 고통이나 불편함도 지긋이 한번 버텨보는 노력과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어떤일이든 즉흥적인 것은 반드시 탈이 생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러한 인내력과 의지, 참을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애초의 계획에는 위에 설명한 것처럼 많은 주제를 정해서 차근차근 너에게 글을 보낼 생각이였는데 그것이 여의치 못하게 되었다. 너의 군생활에 가끔씩 위로가 되고, 생각할 거리를 주고, 지혜와 안목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 했는데 완결을 못해서 미안하고 아쉽다. 그래도 충분하지는 못하나마 없었던 것보다는 훨씬 유용했으리라고 생각이 들고 그것이 앞으로 네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때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다. 그리고 미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포함해 앞으로도 내 생각이나 주변에 대한 감상은 계속해서 글을 써 블로그에 올릴 생각이니 수시로 들어와 읽고 생각해보고 참고하기 바란다.

 

가을이 무르익어 온 산이 단풍색이다. 작년 구례 동편제 축제를 다녀온 후 너에게 쓴 편지글에 가을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그것도 벌써 일년전의 일이다. 세월이란 참 무상하고 빠르기도 하여 아차하면 젊음도 언제인지 모르게 지나가고 말 것이다. 상투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늘 건강하고 씩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기원한다.

 

2010. 11. 07.    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