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도의 편지
한 밤중 잠이 오지 않는다.
핏줄 속에 스며 돌아다니는 욕망의 찌꺼기들
이다지도 깊은 것인가?
카레도의 편지를 읽는다.
사십을 전후해 만나는 영혼의
가장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가장 성스러우며 가장 악마적인 순간을...
오라! 그것이로다.
제2의 청춘이며 진지한 삶의 때
온갖 혼잡한 습관들이 춤추는 때
희극을 벌이고
능변을 토할 시기는 지났다.
심연의 절벽 앞에서 무지를 알아야 할 때다.
모든 수단은 어리석었고
모든 길은 모순 투성이였다.
모든 위로의 말은 다 거짓이 되고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무서운 고독이 온몸을 둘러싼다.
탐욕과 불균형의 줄타기는 이제 멈추자.
내 교만의 혀를 자르고
오욕에 물든 사상을 버리고
마른 혼에 눈물을 적셔
슬픔의 골짜기를 씻어 내리고
이젠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할 때
그러나 허튼 정신으로
아직도 완전한 뉘우침에 이르지 못했는가?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c.카레도의 사막에서의 편지를 읽고('1996)
갑자기 찾아온 불면의 밤을 뒤채이다 다시 찾아본 옛날의 기억이다.
갓 마흔을 넘겨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나는 한 수도자의 편지에 깊이 매료되었다. 카레도 신부의 '사막에서의 편지'는 가장 순수한 영혼을 만날 수 있는 사막에서의 단상으로 수도자인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의 글이다. 나는 그 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치열하게 방향을 묻던 중이었다. 나는 그동안의 내가 부끄러웠고 보다 더 자유롭고 떳떳한 길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사십대 초를 고민과 사색과 반성 속에서 보냈다.
그러나 내 영혼은 아직도 사막같은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겨울날 아침 따뜻한 햇볕이 만족스러운 한켠으로 늘 아쉽고 불만스러운 이 감정은 무엇인가?
그야말로 사막같은 세상의 영향인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염려가 그대로 나에게도 전달된다. 이 모든 것은 신뢰가 상실된 사회이기 때문인즉... 비열하고 위선적이며 기회주의적일 뿐 아니라 추악한 탐욕으로 무장한 세력이 늘 우리를 강박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질 못하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환경은 무엇일까?
인간은 나이가 들면 더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진다고 하였다.
옳음과 그름에 대해, 부끄러운 일과 떳떳한 일에 대해, 해야 할 것과 하지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나이들어 가면서도 자신을 속이거나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는 교만과 위선은 죄악일 뿐이다. 만약 알고도 저지르는 것이라면 더 용서받지 못할 큰 죄업이다. 그 영혼을 누가 구제해 줄 것인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자기성찰을 통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온통 사회를 헤집고 큰 소리치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이 기만적이고 몰염치한 상황은 왜 만들어진 것인가?
오늘 아침 곰곰히 생각해 본다. 잘못된 역사에 대한 가혹한 반성과 자기 점검을 하지 못한채 지나치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불행의 단초이다. 어떻게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전 국가적인 반성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지. 스스로를 점검하고 잘못된 싹들을 제거할 수 있겠는지. 과연 그럴 기회가 오기는 하겠는지...
이런 시기에 사회적 스승들은 하나 둘 세상을 버리고 국가는 점점 사상의 소인국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총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가치전도의 세상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추스리고 통찰할 것인지, 어떻게 그 견고한 성곽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 암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름없는 평범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삶에 대한 깨닫음을 얻는데 정작 자기 점검과 반성이 필요한 이들은 오히려 위선과 탐욕을 강화하고 확대하고만 있으니 이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은 무엇이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늘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한다. 희망을 품지 못하고 굴복하거나 냉소적이 되버리고 만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잊는 법이 없다. 냉전적 이념 공세, 반역적 외교, 복지에 대한 폄훼, 언론에 대한 전횡과 분칠, 교육의 파행과 청소년 인권의 무시, 시민운동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 노동 탄압, 서민에 대한 우롱, 그리고 부동산을 이용한 치부와 탐욕, 불법적 정치행위, 공정하지 못한 법 집행, 폭력적 치안, 온 강산의 토목적 파괴, 역사에 대한 왜곡행위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언제나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루어질 역사적 심판을 생각하고 용기를 내고 희망을 가지고 꿋꿋하게 버텨내야 할 수 밖에 없다.
주눅들지 않고 뒤로 숨지않는 것,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만이라도 훌륭하지 않은가? 이것은 무서운 경고를 의미한다. 결코 가벼이 생각할 수 없는 역사적 순간의 도래를 암시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적 신념이 용기를 주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처럼 민주주의도 신념이 필요한 것이다. 비굴하게 동조하지 않는 것, 비겁하게 침묵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야 할 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당당함으로 자신을 지탱하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2011. 신년 송하산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