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통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양이 집

방산하송 2011. 2. 16. 23:29

울산 시내에서 강동바다로 가는 고개를 넘으면 정자 못미쳐 달골이라는 동네가 있고 그 옆이 장등이다. 장등에는 수년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박경렬 선생이 살고 있다. 본시는 여천동 사람인데 공단이 조성된 후 고향을 벗어났다가 몇년 전에 장등에 촌집을 구입하여 수리한 후 들어가 사는 사람이다.

 

그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시골에 들어가서도 자기 개성을 잃지 않고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그는 타고난 친화력과 텁텁하고 구수한 성격으로 잘도 붙어산다. 지지난해 집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골짜기에 논을 샀는데 논 한 귀퉁이를 파내서 연못을 만들고 정자를 지었다. 기둥을 파이프로 박아 조금 격이 떨어지지만 지붕이 뒤집어진 팔작 모양으로 제법 모양새가 있고 여름이면 연못에 백련이 잘 자라 운치가 있고 그럴 듯 하였다. 밭농사도 잘 짓고 어쨌든 솜씨가 좋은 사람이다. 정자를 짓고 나서 놀러 갔을 때 당호가 있어야 겠다고 하니 하나 지어보라고 했다. 그 말 끝에 이름을 짓고 시간이 나면 글을 써 나무판에 하나 새겨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오늘 그 현판을 걸어주겠다고 언질을 한 날이라 장등으로 넘어 갔다. 최근 재미를 붙인 서각을 연습하다 마침 적당한 크기의 참죽나무가 있어 현판을 판 것이다. 이름은 '유하정'으로 했다. 그윽한 골짜기에 고운 연이 자라는 정자라는 뜻이다. 물감을 입히지 않은채라 미술전공인 박선생 한테 대신 글씨에 색을 넣으라 하고 나는 다른 작품의 작업을 마무리 하였다. 물감을 넣고 보니  괜찮은 작품이 만들어 졌다. 박선생도 내심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방안에 들여놓고 이리저리 살피던 박선생의 말이 이것을 정자에 걸어놓으면 누가 혹시 가져갈지 모르니 집에 걸어 놓아야 겠다는 것이다. 정자에  달기가 아까운 모양이었다. 한옥을 개조한 집이라 들보에 달면 모양이나 색감이 썩 잘 어울리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정자 현판을 집안에 달다니... 그러면 나중에라도  정자의 기둥을 나무로 교체하고 그 때 달아라고 하고 말았다. 

 

 

내가 박선생과 본격적으로 가깝게 지내게 된것은 전임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부터이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같은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인지라 금방 친해졌다. 아마 성향이나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것이 서로 격의없이 친해진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 때 나와 동년배인 정우규, 류재수 선생과 친하게 지냈는데 두 분다 본받을 만한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몇 살 아래인 박경렬 선생까지 끼여 네 사람이 자주 어울렸다. 스스로 막내를 자처하며 자리를 즐겁게 만들뿐만 아니라 늘 뒷치닥거리를 도맡아 했다. 모두 흩어졌지만 지금도 주기적으로 모여 환담을 나누고 술도 한잔씩 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는 미술선생 답지 않게 박식하다. 또 이야기를 구수하게 잘 풀어낸다. 문화나 역사, 예술분야까지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다. 다만 너무 열렬한 교육운동주의자라서 그런지 자기 소신이 강하고 사회비판적 이야기가 많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류재수 선생같은 사람은 항상 말이 없고 겸손하다. 숭늉같은 사람이다. 정우규 박사는 다소 일방적이긴 하지만 해박한 전문지식으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나도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다. 각자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개성은 다르지만 그러나 박선생만큼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선생도 드물 것이다. 교사로서 가장 필요한 능력을 그는 가지고 있다. 그것이 그에게서 가장 부러운 점이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본보기가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위안일 뿐이지 실질적으로 교사로서는 그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참으로 다양하고 정교한 솜씨를 자랑한다. 무엇이든 잘 만든다. 지금 사는 집도 직접 수리했다고 한다. 늘 집안의 물건이나 여러가지 시설을 직접 다 만든다고 하였다. 며칠전 나무작업을 위해 들렀을 때도 또 무엇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는데 고양이 집이라고 했다. 그의 집에는 고양이가 세마리, 개가 두 마리, 그리고 닭도 키운다. 그런데 그 고양이 집이라고 하는게 지금껏 구경할 수 없는 신기한 것이었다. 특별히 고양이 집이라는 것을 본적도 없지만 그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양이 집이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양이의 잠자리와 운동성과 놀이까지 고려한 주인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특별한 집이었다. 사실 그의 고양이들은 버린 것을 주어온 것들이다. 그의 마음씀씀이가 소문이 났는지 최근에는 동네의 다른 고양이들까지 그의 집을 기웃거린다고 한다.

 

또 그의 집안에는 누구라도 보면 감동할 수 밖에 없는 책상이 하나 있다. 사모님을 위해 직접 고안하고 제작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재치가 드러나는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책상의 왼쪽 옆구리에는 컴퓨터의 본체가 놓여 있고 오른쪽 옆구리에는 보온병이 올려져 있다. 책상위에 모니터가 있고 중간에 책서랍, 아래에는 작은 전기난로가 있다. 그리고 의자는 앉아서 자전거 운동을 할 수 있는 기구이다. 즉 사모님이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운동을 하면서 할 수 있도록 한 장치이다. 컴퓨터 본체는 손이 닿는 곳에 올려 놓았고 따뜻한 차도 마실 수 있도록 차탁을 옆구리에 붙여 두었다. 발이 시리지 않도록 전기난로가 있으며 왼쪽 뒤에는 T.V 가 있어 시청이 동시에 가능하다. 그 앞에는 쓰레기 통이 있다. 이만하면 사모님이 작업을 하는데 완벽한 준비가 이루어져 있지 않는가?  사모님 한테 상당한 점수를 땄다고 자랑했다.

 

박경렬 선생 사모님은 박선생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다. 서울서 대학 다닐 때 만난 사모님은 같은 미술전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젊었을 적 해직을 당하는 등 고생을 할 때 한 때 두 사람이 소원해 지기도 했는데 딸 아이에 대한 교육에 전념했는지 아이가 제법 훌륭하게 잘 자랐다. 지금은 미국에 공부하러 갔는데 어려서부터 혼자서 영어를 습득했다 한다. 사모님은 그 과정을 책으로 엮었는데 제법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강연도 가고 지금은 꽤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두 사람 다 개성이 강하고 특히 박 선생은 허식을 싫어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자칫 어긋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입으로는 투덜대도 아마 평생을 서로 맴돌며 살아야 할 것 같다.  거실 벽에는 사모님의 강연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박선생에게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사는 방식은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뭐 사는 방법이 한가지로 딱 정해져 있는 것만은 아니 잖는가? 그들은 그들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박선생의 털털함과 소박함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동네사람들과도 유대 관계를 잘 유지하며 사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공손하고 인사를 깍듯하게 잘 하였다. 겸손함, 그것이 시골에 들어와 잘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그런 그의 태도는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돼 아이들이 더 신뢰하고 좋아한다. 그의 진솔함이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늘 교육을 염려하고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순수하고 거짓이 없다. 그는 가끔 나나 류재수 선생의 명퇴를 부러워하기도한다. 그러나 본인은 앞으로도 더 오래 학교에 머물러야 할 사람이다. 그가 만약 퇴직을 한다면 우리교육에 있어서는 큰 손실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하나의 좋은 예가 되는 사람이다. 세상이란 돈이나 권력으로만 사는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희망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바르게 되고 살만한 세상이 된다면 그것은 역시 우리가 희망하고 염원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현판을 단다는 연락을 받은 정우규 선생이 들렸다 가고 저녁 무렵엔 류재수 선생이 합류하였다. 현판 턱으로 박 선생이 정자 바닷가의 단골 집에서 조개구이와 막걸리를 대접하였다. 나는 술을 많이 못하고 술맛도 잘 모르지만 이 사람들만 만나면 술이 맛있어 지는것 같다. 사는 이야기, 교육이야기, 세상이야기, 그러다가 자칫하면 또 역사로 문화로 예술로 세계론 적인 거창한 담론으로 넘어간다. 이야기는 흥겹고 서로 쳐다보는 얼굴은 정답다.

 

저녁 바다가 사람들의 마음처럼 조용하고 맑았다.

 

 

2011. 2.16. 송하산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