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통신

하던일을 멈추다.(퇴임사)

방산하송 2010. 9. 10. 15:53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를 두고 절친한 친구와 마주보고 앉아 참 어이없어 했던 적이 있다. 엊그제 청춘의 시절이였는데 벌써 우리의 자식들이 그 나이를 넘어서 있으니 말이다.

 

많은 나이도 아니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참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미 마음을 작정한 일이고 또 적당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으니 별 미련은 없다. 세상의 인심이 욕심으로 채워져 가는것 같아 나는 이것이 견딜 수 없었다. 학교가 사람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기고 올라서라고 채찍질을 하는 것 같아 더 이상 보아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합천의 농부시인 서정홍 시인이 퇴직을 결심했다는 소리를 듣고 참 잘했다고 칭찬하였다. 나이든 사람이 그만 두어야 젊은 사람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였다. 시골로 이사 하겠다는 말에는 더 잘했다고 부추기었다. 복잡한 도시에서 한 사람이라도 나와야 숨통이 트일 것이 아니냐고 했다. 농담같지만 생각해보니 진심이 어린 말이다. 

 

어쩌다 새벽에 일찍 눈을 뜨면 도시의 묵직한 굉음소리에 가슴이 답답하였다. 거대한 공장이 내는 무거운 신음소리 같았다. 사람과 자동차와 사치와 허영이 서로 욕망의 숨을 섞는 도시를 언제라도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늘 해오던 터였다. 이제 이곳을 떠나리라.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과는 거꾸로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옳은 길인지도 모른다.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불귀) 전원이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마음을 육신의 사역(使役)으로만 삼았다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그러나 어찌 상심하여 슬퍼하고만 있으리요?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닫고

知來者之可追 (지내자지가추) 앞으로 바른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미기원) 참으로 길을 잃었으나 그래도 멀리 벗어나지 않아서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도다.

...

世與我而相違(세여아이상위) 세상이 나와 서로 맞지 않으니

復駕言兮焉求(복가언혜언구) 다시금 수레를 올라 무엇을 구하리오?

 

평생의 업이였던  선생을 그만두고 떠나기로 하였다.

여기에 퇴임사를 싣는다.

 

<퇴임사>

우선 저의 퇴임 자리를 위해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 선생님들과 지인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든 분을 다 소개하는 것은 어려워 생략하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들었던 작은 농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바지의 지퍼가 열린 채로 수업을 하러 교실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만...

아이들이 보고 킥킥거리며 웃자 이 선생님이 왜 웃어? 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 앞문이 열렸습니다.’ 라고 했고 그러자 선생님 왈 ‘주번 나와서 문 닫아!’ 라고 했답니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팔십년대 농담입니다만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나서 칠판에 판서를 하는데, 아차 바지 뒤 쪽도 실밥이 터져 속이 보이더랍니다. 아이들이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어버리고 말았는데...  어이없다는 듯이 돌아보던 이 선생님이 뭐라고 했을까요? 

'웃는 놈도 참 나쁘지만 웃기는 놈은 더 나쁜 놈이야!'

 

이 얘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나도 아이들과 이렇게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생각과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부끄럽고 민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퇴임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이 드는 것은 저의 교사생활 중에서 저로 인해 혹시 상처받거나 피해를 받았던 학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크게 잘못된 경우는 없었어야 하는데 하는 점입니다. 만약 그런 경우가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저의 부족했던 점들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선생님들과 지금까지 저와 같이 근무하신 선생님들께서도 저로 인해 불편했거나 힘드신 일들이 있었다면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까지 만족스럽던 불만스럽던 교사로서의 직업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욕심내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별다른 직업이나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습니다. 그저 많은 나이는 아닙니다만 마무리를 아름답게 잘 해야 되겠다는 계획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과 생활로 실천할 것인지는 차차 생각해보고 찾아볼 것입니다.

 

짧지 않은 교사생활을 저는 대부분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생활을 해왔습니다만, 그러나 근래에 올수록 우리교육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앞서고 학교생활이 힘들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교육과 현장의 교육이 가지는 괴리, 그리고 시대의 변화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저는 우리교육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차츰 개선되나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교육의 본질을 한마디로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진리의 탐구, 이성의 발전, 자유와 정의의 구현 등이라고 말 할 수 있고, 그 실천적 방법은 학문의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문을 연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탐구를 위한 의심하는 자세와 비판적 시각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가 시작되며 학문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비판적 시각을 갖추지 못한다면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또한 학생이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의심해보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무슨 탐구가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창의적인 인간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면서 무비판적이고 획일적 교육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자율적이고 스스로 판단하는 인간을 기른다고 하면서 강제적이고 타율적인 교육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활동적이고 가장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할 시기의 아이들을 가장 많이 규제하고 통제하고 억압하고 있습니다. 더 강하게 더 많이 통제하고 강제할수록 나은 결과가 나온다고 맹신하고 있습니다. 이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강변하지만 그 결과는 더 혹독한 경쟁과 열악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시급히 우리나라의 모든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러한 교육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우리 교사들도 당연히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선생님들께 당부를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삶이 순간순간 선택의 문제인데 무슨 일이든 그것이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든 사람마다 생각과 시각이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을 서로 간에 이해하고 인정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사와 관리자 사이든, 선배교사와 후배교사 사이든, 특히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예의와 상식이라는 것은 위치와 나이에 의해 차별되는 것은 아니라 상호존중이라는 상식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는 사람 중에 수업은 남녀간의 사랑과 같다고 말한 이가 있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완성될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교사의 책임이 더 요구됩니다. 우리는 교육을 해야하고 학생은 그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이 아이들이고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교육환경의 열악함 속에서도 묵묵히 학생지도에 헌신적인 여러 선생님들께 존경과 사의를 표하며 더 이상 같이하지 못하고 퇴임하는 것을 대단히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2010년 8월 25일 윤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