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통신

풍이는 운이를 떠나고...

방산하송 2011. 4. 13. 11:00

풍이는 떠났다. 운이만 남겨놓고. 근 반년을 넘어 동고동락한 운이를 놔두고 풍이는 혼자서 어디로 갔을까?

 

풍이와 운이는 작년 내가 산내에 집을 짓기로 한 후 시골에 가면 개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미리 얻어온 강아지의 이름이다. 아내가  잘 아는 수녀님의 안내로 서생에 있는 성당에서 데려왔다. 

풍이의 어미는 검은 사냥개 품종이고 운이의 어미는 흰색의 잡종견으로 같은 우리에서 더불어 살았는데 각각 같은 시기에 새끼를 낳았다. 그래서 어미의 모습대로 풍이는 검고 운이는 흰색이었다. 미리 이름을 지었는데 풍이는 바람같이 날래라고 풍이고 운이는 흰 구름처럼 털이 많아 운이라고 한 것이다.

 

젖만 떼고 얻어온 두 놈은 천지를 모르는 망나니였다. 암컷인 운이는 차에 태워 올 때 부터 귀염을 떨고 사람을 잘 따랐는데 너무 나대었고 풍이는 수컷인데도 겁이 많아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소리만 나면 도망가기 바빴다. 데려온 첫날부터 베란다의 풍란과 석곡을 물어뜯어 온통 어질러 놓고 똥까지 누어 놓았다. 집이 지어질 때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아파트에서 키울수는 없고,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한 두어달만 키워 달라고 부탁을 하였더니 귀찮아 하면서도 마지못해 데려오라 하셨다. 울산에서 곡성까지 먼길을 달려 남원에서 예방접종을 하고 구충제를 먹인 뒤에 사료까지 사서 어머니한데 맡기고 돌아왔다. 그 후 어쩌다 한번씩 들러 보면 두 마리다 뛰기는  미친듯이 하고 뱅뱅이를 도는데 영락없이 족보없는 잡종개였다. 텃밭에다 묶어만 놓고 풀어주지 않으니 더 그런 모양이었다. 씻겨주지 않으니 냄새도 많이 났다. 그래도 운이는 몇 번 부르면 꼬리를 흔들며 가까이 오는데 풍이는 여전히 으르렁 거리거나 도망가기 바빴다.

 

집이 예상보다 늦어져 풍이와 운이는 겨울을 어머니 집에서 났다. 곧 데려올 수 있을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젠 제법 덩치가 커져 중개가 되었다. 3월이 되고 봄이 되어도 집은 완공이 되지 않았는데 4월 초 결국 어머니로부터 이번 주까지는 반드시 데려가라는 최후 통첩을 받았다. 집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데려와도 될 것 같았다. 데려오기 전 날 하루종일 걸려 개 집을 만들었다. 입구가 두개인 목조 연립주택이었다. 천정은 완성을 못해 임시로 덮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커버린 개를 두마리나 데려오는 것이 큰 문제였다. 더욱이 어머니마저 동네분들과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어 아무도 집에 없다고 하였다.

 

개를 데리러 가는 날 먼저 자재상에 들러 깔개용으로 갑바를 한 장 구입하였다. 집에 들어서니 여전히 두 녀석은 나를 보자 미친듯이 날뛰었다. 개가 뛰어 운동장처럼 반질해진 땅을 모두 삽으로 일구어 놓고, 개 두 마리를 풀어 사슬을 잡으니 그 힘이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셌다. 거기다가 가자는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제 맘대로 날뛰니 결국 개목고리가 벗겨져 버렸다.

 

먹이를 담아놓고 유인해 목고리를 다시 채운 뒤 어르고 달래기를 수 차례 겨우 차 트렁크 앞까지 끌고와 한 마리씩 안아서 올려놓았다. 다행히 도망은 가지 않았다. 멀미를 하거나 말거나 냅다 산내까지 직행을 했다. 산내에 도착해 트렁크를 열어보니 장관이었다. 풍이는 머리를 처밖고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었고 나대던 운이는 멀미를 하여 온통 토하고 싸고 야단이었다. 갑바채로 마당에 끌어내린 후 일단 개집에 묶어 놓았다.

 

저녁에 김선생이 기계대패를 빌리러 안사람과 같이 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풍이와 운이를 데려온 이야기를 했더니 암놈과 숫놈이면 앞으로 새끼를 낳게 될텐데 새끼를 처리하기가 상당히 곤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문을 여니 개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밤중에 비가 내렸는데 비가오니 그 냄새가 더 심해진 것이다. 거기다가 운이가 개집 입구의 베니어판과 큰방 앞 데크로 올라오는 계단 목재까지 여기저기 이빨로 물어 뜯어 놓아 보기가 영 흉했다. 화가 났지만 끈을 줄이는 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낮에도 하루종일 둘이서 들쑤시듯 난장판을 벌였다. 두 마리를 제대로 건사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슬슬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개 키우는 것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한 마리라도 줄이든지... 

 

오후나절 쑥을 캐러 나오신 동네 할머니들에게 개 이야기를 하니 모두 염려스런 말씀들이었다. 개 키우는 것이 생각보다 예삿일이 아닐뿐 아니라 냄새도 나니 마당가쪽으로 집을 옮기라고 했다.  한 마리 가져갈 분이 없겠느냐고 했더니 동네에 가져갈 사람은 없고 나중에 개장수가 오면 팔든지 하라고 했다. 더군다나 그날 오후 울산에 다녀와야 했는데 걱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제 막 데려다 놓은 개를 놔두고 다시 집을 비우면 무사히 잘 있을런지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저녁을 주고 다음날 저녁때쯤 돌아 올 생각으로 늦게서야 출발 하였다. 울산으로 내려오는 중에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두 마리를 키우기가 힘들 것 같으니 한 마리는 처분해야 할 것 같다고 하니 남원시내에 수소문하면 개를 갖다 팔 곳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이 자기 만족을 위해 개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고, 한편 정이 들면 함부로 떼낼 수도 없을뿐 아니라 개에게 메이게 될 것이니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날 늦게 울산에 도착해 개 이야기를 했더니 집사람의 말이 뜻밖이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려 개 키운다고 귀찮았을 텐데 이제 홀가분하시겠다고 했더니 늘 반겨주던 개가 없어지니 서운해서 죽겠다며 우시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돌아가는대로 다시 한 마리를 어머니께 같다 드리고 나머지 한마리만 키우라고 하였다. 그러기로 했다. 이튿날 이런 저런 일을 보느라 피곤하기도 하여 출발을 하지 못했다. 새집에 달 커텐집 사장님과 다음날 아침 일찍 산내로 출발하기로 약속을 하고 집에서 하루 더 묵었다. 그러나 내내 저희들만 있을 개가 걱정이었다. 하루종일 밥을 굶고 무사히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마음이 영 편치가 않았다.

 

다음날 그러니까 사흘 뒤에서야 다시 산내로 돌아왔다. 개가 걱정스러워 아침 6시 츨발하여 아홉시쯤 산내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사장님에게 개 이야기를 했더니 사장님도 우연하게 개를 네마리나 키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지금은 정이 들어 개를 없에지도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도 못 간다고 했다.

집을 들어서면서 개집을 보니 운이가 줄이 풀린채로 혼자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풍이는 보이지 않는다. 둘이서 용을 쓰는 바람에 못이 모두 빠져 고리가 떨어진 것 같았다. 급하게 운이의 밥을 챙겨주고 아무리 둘러봐도 풍이는 흔적이 없다. 아마 고리를 단 채로 어디 멀리 가버린 모양이었다.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곳에 온지 며칠 되지 않아 멀리 갔다면 다시 찾아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운이는 같이 가지 않고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을까? 겁을 먹은 운이를 달래놓고 풍이는 어디갔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운이의 목줄을 풀어주었다. 의외로 운이는 얌전하였다. 자유스럽게 만들어 주었는데도 멀리 가지는 않는다. 묶어 놓았을 때는 그렇게 날뛰던 개가 풀어놓으니 더이상 얌전하고 의젓할 수가 없었다. 운이를 데리고 집 주변을 다녀 보았다. 처음에는 멈칫거리더니 나중에는 잘 따라 다녔다. 집 밖으로 나가면 그 경계를 용케 알고 멈추었다.  안심이 되었는지 기척만 보이면 뛰어 나오고 가까이 가면 치근거리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치수를 잰 사장님을 보내드리러 인월에 나갔다가 마침 인월장에 나온 사과나무를 두그루 사왔다. 집 뒤 길건너 윗쪽의 밭에다 사과나무를 심고 있는데 집 밖으로는 나오지 않던 운이가 언제인지 거기까지 찾아와 주변을 맴돌았다. 갑자기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제 서로의 관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운이와 가까워 질수록 풍이에게는 미안하였다. 풍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사할까? 한마리는 내 보내야 겠다는 말을 알아듣고 저 스스로 나간 것은 아닐까? 오후 내 마음이 착찹하였다.

 

 

풍이는 올 때부터 마음에 차지 않아 다소 소홀했는데 그것이 더 마음에 걸린다. 겁이 많아 늘 눈만 끔벅거리다 집으로 숨어버리는 풍이가 도망은 왜 먼저 갔는지 의문이나, 나의 푸대접 때문인 것 같기도 해 더 그렇다. 누군가 잘 키워줬으면 좋겠다. 나는 운이만이라도 키우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개집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운이가 물어 뜯어놓은 입구를 판자로 둘러치고 풍이가 드나들던 입구는 막고  두개로 구분된 안을 터 하나로 만들었다. 혹시 풍이가 돌아오면 그 때 다시 두개로 만들기로 하고...  집밖으로 나갈때나 저녁에는 개줄을 묶고 내가 집에 있을 때는 항상 묵줄을 풀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개에게 메이지는 말자고 다짐하였다.

 

 할머니 세분이 논둑에 쑥을 캐러 나오셨다. 운이를 데리고 가 인사를 하고 검둥이가 없어졌다고 하니 같이 걱정스러워 해 주었다. 어제 아침까지도 두 마리가 앉아 있는 걸 보았다고 했다. 쑥 캐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좋아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쑥캐는 것이 뭐이 좋아 사진을 찍어'하면서 쑥쓰러워 하였다. 나는 얼굴만 예쁘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할머니들 쑥캐는 모습이 훨씬 더 보기 좋다고 하였다. 운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탐색하는 논 둑에는 하얀 별 꽃 한  무더기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사료값으로 한 십만원쯤 드리고 새로 강아지를 한마리 사시라고 하면 될 것 같다.

 

2010. 4. 13.  송하산방에서

 

 

[오늘 아침 개장수가 다녀갔다. 개를 처분한다고 해서 왔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돌려 보냈다.  곧이어 풍이의 소식이 들려왔다. 아래쪽 재천이라는 분의 집에 검은 개가 한마리 들었다고 동네분이 귀띰을 해 주는 것이었다. 가보라고 했으나 나는 괜찮다고 했다.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그 집에서 잘 키워준다면 굳이 데려오지 않아도 좋을듯 해서 모른척 하기로 한 것이다. 배가 고파 동네쪽으로 내려가다 아마 그집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운이는 느긋하게 다리를 펴고 데크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