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것들
遊玩山水亦復有緣,苟機緣未至,則雖近在數十里之內,亦無暇到也
산수를 노닐며 감상하는 것 또한 인연이 있어야 한다.
진실로 인연이 닿지 않으면 비록 가까이 수 십리 안쪽에 있다 하더라도 가 볼 틈이 없을 것이다.
-張潮의 幽夢影(유몽영) 중에서
산
산은 늘 거기 있으되, 오고 가는 것들이 힘드니 험하니 곱니 떠들어 댄다.
구름
본시 변화무쌍한 것이 타고난 성정이거늘 잡된 인간의 변덕스러움에 비교하다니...
바람
본래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지나 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
물이야 애초부터 본성이 맑고 순수한 영혼의 상징이지.
새
저 자유로운 영혼들이 날개를 접고 편히 쉴 곳이 점점 없어져 간다.
소나무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지. 그대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꽃
난 당신들을 위해 핀 것이 아니라네. 우리들의 소명일 뿐이야.
나비
배추씨 뿌린 곳은 어찌 그리 귀신 같이 알고 한들 한들 찾아오는가?
나방
낮에 나비가 춤추며 놀다 간 뒤에 어두워지면 밤손님처럼 찾아드는 나방.
잠자리
신사같은 몸매로 하늘을 유영하다 가끔은 사람사는 곳을 기웃거린다.
청개구리
장마철 잦은 비마중에 그악스러운 울음 소리.
파리
좀 멀리 가서 놀게.
거미
꿈을 크고 높다랗게 매달았지. 그러나 비가 와 이슬만 주렁주렁.
강아지
내가 풀 좀 먹어봐서 아는데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지.
풀
난 너희들이 한 짓을 알아. 내 땅에 와서 어떤 일을 벌이고 무엇을 가져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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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처럼 장마비가 그치고 해가 났습니다. 아침에 한 바퀴 둘러보고 오전에는 위 글을 정리하여 올린 후, 오후에는 오랜만에 밭일을 열심히 하였지요. 늦은 저녁을 먹고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창문 밖으로 달빛이 비치지 않겠어요? 동쪽 산 위로 구름을 뚫고 올라오는 달은 보름달이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그런데 밤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려고 내려오다 밖으로 비치는 달빛이 너무 좋아 마당으로 나가 봤더니 아! 온 세상은 달빛 천지였습니다. 멀리 지리산 등성이 위로는 흰 구름이 설산처럼 얹혀져 있고 그 위의 하늘은 너무 맑은데 둥근 보름달이 마음껏 빛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훤하고 마당의 풀밭 위로도 달빛이 고즈녁했습니다. 여름답지 않게 날은 서늘했고요. 나는 맥주 한 캔을 들고 나와 편안히 앉아서 달을 쳐다보며 사방의 개구리 소리를 안주 삼아 한 모금 했습니다. 그 시원텁텁한 맛이라니요.
다시 유몽영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한가한 것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가하면 능히 책을 읽을 수가 있고 명승지를 유람할 수가 있다. 좋은 벗과 사귈 수도 있고 술을 마실 수도 있으며 글을 쓸 수도 있으니, 천하의 즐거움이 이보다 큰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 밑에는 역자인 정민 선생이 이렇게 덧 붙여 놓았지요. '한가한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일없는 것을 한가로움이라 하지 않고, 늙어 할 일이 없는 것을 두고도 한가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가할 때 우리 삶은 가장 충만해지고 왕성해진다. 알던 글도 새롭게 읽히고 늘 보던 산과 물도 새삼스럽게 보인다. 친구와 만나도 진정으로 반갑고 나누는 술 한 잔도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가함은 그냥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될 때만 찾아온다. 내가 없이는 결코 한가로움도 없다.'
모두 행복 하십시오. 신묘 유월 보름날.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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