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기 진자부로에 대한...
살면서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자기 삶에 큰 도움이 될 수가 있다. 또 그의 철학과 삶의 자세를 본받으려 함으로서 스스로 많은 발전을 이룰 수도 있다. 자기가 지향하는 가치나 방향과 대체로 같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녹색평론지를 읽다가 핵과 관련한 다카기 진자부로의 강연 내용을 접하고 나서 다시 한 번 그에 대한 존경과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1992년에 행해진 것이고 95년에 녹색평론지에 게재된 것을 후쿠시마 사태와 관련하여 이번에 다시 재 게재한 것이다. 이미 몇 년 전 그의 대표적 저서인 '시민과학자로 살다'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온 사람인지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고, 본받을 만한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강연 원고를 읽으며 그 때와는 다른 한 과학자의 진심어린 정의감, 또는 인류애를 느끼며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원자력 과학자로서 기업에서 근무하다 대학의 연구소로 옮긴 뒤 해양의 방사능 오염 상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류시대 이래의 방사능 수치가 지금까지의 어느 지질 시대에 있었던 것보다도 급격히 증가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해양에서 채취한 코어의 가장 바깥 부분인 마지막 1mm 정도에서 갑자기 방사능이 엄청나게 높아진다는 사실과 세계 어디에서 가져와 조사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핵을 건드린 인간의 발자국을 그만 확인하고 공포에 가까운 놀라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실험실에서 근무할 때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일상적 반응이 대단히 무감각해져 그보다 훨씬 강한 반응에도 놀라지 않았던 자신이 계측기의 미약한 반응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크게 놀랐다는 것은 그가 그 당시 어떤 심정적 변화를 보이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처음으로 자연 속에 나와 보니까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물고기가 놀고 있었으며, 새가 울고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각으로 이런 것을 보고 있으려니까 이제 끽끽하는 작은 소리에도 그만 공포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나는 이 글귀에서 한 인간의 양심을 보았다. 쉽게 확인할 수 없는, 보기 드문 한 과학자의 양심 고백을 듣는 것 같았다. 그는 전문가로서 기계와 같은 상태에서, 그 때의 상황과 경험을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으며 인간의 감각으로 방사능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과학자로서, 방사능의 위험과 피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핵에 대한 반대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핵반응 후에 발생한 방사능 물질을 싸늘하게 식은 '죽음의 재'가 아니라 결코 '끌 수 없는 불'이라고 하였다. 불을 붙일 수 있지만 끌 수 없다면 그것은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파괴적인 재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탈 수 있는 것은 움직이기 때문이라기보다 멈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그는 핵에너지를 하늘의 불이라고 하였다. 우주의 기본적인 에너지 발생이 핵융합이고 모든 별은 바로 그렇게 빛을 만들어 방출하고 있다는 것과 그러나 그런 별에서는 결코 생물이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가 다르기 때문에 하늘의 불은 지상의 불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이 하늘을 불을 훔친 것은 확실히 오만스러운 행동이라고 진단하였다.
천문학적으로 보면 지구가 탄생한 후 생물이 출현하기까지는 수억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가장 큰 장애가 우주로부터 유입되는 방사능이었는데 대기에 의해 방사능 유입이 차단된 후에야 비로소 지상에 생물이 번성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또 수십억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지구내부에서 다시 방사능 물질을 살려내어 불을 붙이고 있으니 종국에는 이 지구를 다시 생물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야 말 속셈이 아니라면 핵개발은 미친짓이며 당장 중단해야 할 잘못된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는 원자력 과학자로서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를 간파하였기 때문에 핵오염 방지와 피해를 막기 위한 활동에 평생을 던진 것이다.
그는 원자의 보전 또는 원자의 안정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땅의 원리는 원자의 안정성을 토대로 성립된 것이어서 과학적인 변화는 여러 가지 형태로 일어날 수 있지만 원자는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며, 원자 그 자체에 변화가 일어나면 인간은 반드시 다치거나 상처를 입게 되어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핵에너지는 이러한 원자의 안정성을 깨뜨림으로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땅의 원리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촉구하였는데, 한 개의 팰릿에서 1년 치의 전기가 나오지만 5만 명분의 치사량에 맞먹는 폐기물이 함께 발생해 없어지지 않고 지구 어디엔가 쌓이게 된다는 것을 같이 경고 하였다. 사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갑자기 대두된 것처럼 느끼지만 이러한 핵 오염과 핵무기에 대한 경고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늘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핵 또는 원자력을 보유한 국가는 핵의 유용성만을 강조할 뿐 그 문제성이나 피해상황은 극구 감추고 비밀에 부치고 있다. 핵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는 말은 핵문제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비민주적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간과의 공생을 주장하였다. 그것은 우리 세대 이후와의 공생을 의미하는데 앞으로 태어나는 세대에게 사악한 불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렵고 힘들지만 작은 일에서부터 실천해 나가고 체념하지 말고 핵문제에 대해 행동에 나설 것을 주문하였다. 그의 반핵운동의 밑바탕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그의 강연내용을 읽으며 한 사람의 양심 있는 지식인이 또는 과학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평생을 살았다는 것이 더욱 존경스러웠다. 일본은 이러한 양심가의 진심어린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고 방심하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된 것이다.
그의 강연 내용을 통해 나는 핵에 대한 무지를 통렬히 반성하였으며, 조금 다른 부분이기는 하지만 제초제를 쓰지 않겠다는 풀에 대한 나의 고집을 꺾지 않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핵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강력한 핵 세력이 홍보하는 유용한 면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유용성마저 사실은 위험한 것이지만... 그가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것인가' 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핵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겠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시민과학자로 살다'를 다시 찾아내 잠시 더듬어 보았다. 그가 독일에서 자각한 '비판'에 대한 철학적 깨닫음이 언뜻 보인다. 하바머스의 '인식과 관심'을 통해 비판이 갖는 창조적인 힘을 재인식했다는 것은 그가 이후 보여준 일생의 활동과 관련해 그의 행동양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동시에 바로 우리가 갖추어야 할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그런 점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2000년에 대장암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고 출생연도를 확인해 보았다. 1938년 생이다. 우리나이로 예순 셋에 마감을 한 것이다. 나도 그 정도는 살수 있겠지. 아니 그 이후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는 등의 생각도 같이 해 보았다.
2011. 7월 하순. 송하산방에서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