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가을 국화는 서리를 이기고...

방산하송 2011. 10. 25. 11:07

 

金菊凌霜(금국능상)

능은 깔볼능이다. 그러므로 국화는 서리를 아랑곳 하지 않고 고고하게 피어난다는 말이다. 가을이 깊어지니 바깥일도 여유가 생기고 모처럼 붓을 잡아 보았다. 마침 윗쪽에 이사 들어오는 원 선생에게 글을 한 점 써줄까 하여 시작한 일인데 내친김에 그동안 멀리했던 먹과 붓을 잡아 본 것이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상쾌한데 붓은 부드럽게 잘 움직였다.

 

한 때 도연명의 전원시에 흠뻑 빠져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의 귀거래사, 음주시, 잡시등은  자연을 갈망하고 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도연명은 유난히 국화를 사랑하여 국화를 읊은 시가 많다. 음주시에 나오는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이라는 글귀는 특히 유명하다. 도연명의 시를 읽으며 소나무와 국화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여기 산내에 와서 바로 그 염원하던 소나무 아래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런데 가을이 되니 길가와 산비탈을 따라 산국이 여기저기 피어 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반가웠다. 금상첨화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두 집이 들어오므로 두 개를 썻는데 두 분 다 인근 학교의 선생님들이다. 그래서 더욱 반갑다. 텃밭을 가꾸는 것을 보고 앞으로 많은 지도를 바란다고 하였다. 시간이 남아 부지런을 떨었을뿐 나도 완전 초보이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산내초등 김용현 선생과 작은학교 김태준 선생까지 더하면 가까운 주변에 교사들이 많아 마음이 든든하다.

  

山深松翠冷 潭靜菊花秋(산심송취냉 담정국화추)

내친김에 당의 시인 朱慶餘(주경여)의 글을 써 보았다. 취는 물총새 취인데 비취색을 뜻하기도 한다고 하니 소나무의 푸른색을 나타낸 것 같다. 깊을 담은 물가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러면 '산은 깊어 찬 소나무는 푸르른데 맑은 물가에 국화 피어나니 가을이 깊었네' 정도로 풀이하면 좋을 듯 하다.

 

어떤 경우에는 못쓴 글이 더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다. 말끔한 글은 금방 싫증이 나지만 소박하고 담백한 글이 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이다. 아마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날렵하거나 기교가 많은 사람보다 투박하지만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 더 정이 가고 오래 간다.

 

신묘 만추지절.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