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상처받지 않은 삶이 있으랴?

방산하송 2012. 9. 26. 16:47

제석봉 조망대를 지나자 눈앞이 확 트이면서 드디어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은 막 가을 옷을 갈아입은 것처럼 청명한 하늘아래 산뜻했다. 백무동에서 일곱 시 삼십분에 출발 했는데 11시 30분이니 약 네 시간 걸렸다. 정오에는 정상에 도착할 것 같았다. 최근에 산행을 거의 한 적이 없어 걱정을 했지만 별 힘든 줄 모르고 올라왔다. 퇴직하기 전에는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한두 번은 꼭 지리산 쪽으로 여행이나 산행을 왔는데 정작 산 가까이 이사를 온 뒤에는 거의 이태가 되도록 산에 들 여유조차 없었다. 봄에 산나물 채취하러 노고단 아래쪽에 따라간 것과 여름에 뱀사골 입구의 계곡에 서너 번 다녀온 것이 전부다. 한 번은 인사를 하러 가야지 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미루다가 이제야 마음을 낸 것이다. 마침 추수전이라 크게 바쁜 일도 없는데다 날씨도 좋고 아직 산이 붐비지 않을 때라 산행을 하기에 적당한 때이기도 했다.

 

아침 백무동에서 올라오는 길은 상쾌했다. 하동바위 쪽으로 들어서니 옛날에 비해 길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아래쪽은 너덜바위길이라 참 불편했는데 손을 많이 보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붐빌 때는 하루에 수백 수천의 사람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발걸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짐승은 발로 길을 내지만 인간은 기계로 길을 만든다. 이정표도 군데군데 잘 세워져 있다. 길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는 것도 인간만이 유일하게 하는 행동이다. 무엇이든 쪼개고 구분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의 유한함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표식이 없으면 길들여진 인간은 불안해진다. 그러나 그런 매듭은 편리함도 되지만 피할 수 없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장터목에서 자고 내려오는 산꾼들만 드문드문 만났다. 얼마 올라오지 않아 이제야 골짜기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을 만났다. 신선한 공기를 뚫고 태고의 것인양 빛은 선명하게 나무사이로 파고들었다.

 

아침 이슬을 막 떨친 깨끗한 산꽃을 만났다. 운이 생각이 났다. 발정기가 되어 수캐들이 끓고 밖으로만 돌더니 결국 이틀째 집을 나가 안 들어오고 있다. 한 사흘 지나도 안 들어오면 미련을 버리고 집을 없애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생각이 복잡하다. 개의 본성이 그러한데 사람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개를 나무라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그렇다고 늘 묶어놓는 것도 할 짓이 못된다. 다행히 개가 스스로 주인 말을 잘 알아들으면 좋겠지만 말을 안 듣고 애를 먹인다 한들 말 못하는 짐승 탓을 하랴? 어릴 때는 잘도 따르더니 성견이 되고 난 뒤에는 천방지축이다. 그야말로 앞뒤 없는 짓만 하는 잡종견의 뒤치다꺼리도 피곤한 일이다. 그동안 키운 정으로 마음을 다스렸지만 어차피 제 운명이 아니겠는가? 며칠이라도 제 본성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놔두고 설사 들어오더라도 더 이상은 거두지 않을 작정이다.  

 

 

태풍으로 끊어지고 넘어간 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흙무더기가 뒤덮인 체 뿌리째 넘어간 것도 있고 아름드리 줄기가 부러지거나 가지가 꺾인 것도 많았다. 지난번 태풍 때 바람이 세기는 셌던 모양이다. 주로 등산로 주변에 넘어진 것들이 많았다. 길 때문에 땅이 파여 약하고 서로 지탱해주는 바람막이 나무들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길가에 너무 큰 나무들이 넘어져 있으니 마음도 을씨년스러워지고 볼썽사나웠다. 그러나 나무들이 넘어지는 것을 안타까워 할 일만도 아니다. 나무도 수명이 있는 것이니 자연적인 감벌 효과도 있을 것이고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할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게 되고 썩으면 썩는 대로 또 거름이 되기도 할 터이니 그것대로 다 하는 역할이 있지 않겠는가? 어디 상처입지 않는 삶이 있으랴?

 

 

장터목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주위가 시원하게 열리면서 멀리 반야봉이 희미하게 보였다. 남쪽으로는 햇빛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았으나 첩첩이 산이 펼쳐져 있고 올라온 쪽으로는 멀리 우리 동네도 보였다. 능선에는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며칠 산장에 머물면서 기다리면 그럴듯한 산 사진 몇 장은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휴식 후 다시 제석봉 쪽으로 향했다. 제석봉 주변은 키 작은 풀들 사이로 여기저기 가을꽃이 많이 보였다. 붉은 산오이풀꽃이 지천이고 용담과 쑥부쟁이는 이미 끝물인데 여기저기 피어있는 구절초의 흰꽃은 천사처럼 청초하였다. 높은 산에 있을수록 키는 작지만 더 깨끗하고 단정한 모양을 보인다. 유명한 고사목이 여기저기 서 있는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고 하지만 오래 된 주목은 언제 봐도 예사롭지가 않다. 언덕을 넘어서니 드디어 천왕봉이 보였다.

 

 

천왕봉 아래서 나는 카메라를 집어넣고 베낭을 다시 매었다. 지금부터는 마음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진중하게 옮길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천문이 나타났다. 이마의 땀을 닦고 모자를 고쳐 썼다. 그리고 다시 십여 분 힘들여 올라갔다. 정상부근은 온통 바위덩어리여서 내딛는 걸음이 더욱 조심스러웠다. 나는 이것을 순례라고 생각하고 올라왔다. 큰 산을 만나기 위한, 그 아래 찾아들어 인사를 하고 축복을 받고 싶다는 희망으로...

 

 

드디어 천왕봉 뒤 쪽 편평한 제단 앞에 이르렀다. 그 꼭대기는 사방 백여 리에 걸친 산들의 정기가 모두 모여 하늘로 통하는 정수인 듯도 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길게 읍을 했다. 그리고 머리를 숙였다. 역사의 산, 어머니 산, 불멸의 산. 다시 옆으로 돌아 남쪽 사면으로 올라갔다. 표지석 아래에 이르러 한 번 더 인사를 올렸다.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정상은 밟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방곡곡 어디나 모든 곳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산자락 아래 마을과 도시가 자리 잡고 있어 산이 사람을 품어 키우고 살리는 형상이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 병아리가 어미의 등을 타고 올라가 어깨에 앉아 놀다가 머리를 밟고 올라서서 꼭대기를 정복했다고 할 것인가? 그것은 교만이다. 그런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연을 훼손하고 종내는 모든 타자를 싸워야할 대상으로 여기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정상아래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멀리 산내주변이 보였다. 마천, 함양과 산청도 가까이 보였다. 중산리 쪽으로 덕산과 시천이 가물거리고 멀리 남쪽으로는 아스라한 산의 능선들이 희미하게 늘어서 있었다. 점심을 마치고 나서 사람이 뜸해지자 표지석 사진을 찍었다. 표지석을 끌어안고 정기를 받는다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은 표지석 위에 손을 얹거나 뒤에 서서 호탕한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주변이 북적거린다. 그러나 얼마 전 산을 보고 함부로 손가락질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화살을 맞은 듯 주춤했다. 그러한 행위가 무례한 짓임을 생각지도 못하고 살아온데 대한 부끄러움이었던 것이다. 그런 불손한 마음을 지우자 오늘은 어머니의 등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시쯤 큰 산을 향해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한 뒤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며 보니 통천 문 주변과 북쪽 사면은 이미 단풍이 상당하였다. 곧 산을 타고 내려갈 기세다. 남쪽 가파른 비탈 쪽으로는 싱싱한 주목과 어울린 바위와 산이 늠름하였다.

 

 

길 가에도 단풍든 나무들이 자주 보였다. 제석봉 못 미쳐 큰 바위 앞에 거제수 한 그루가 멋지게 서 있었다. 그동안 많이 봐왔으나 무심히 지나쳤는데 오늘에야 안내판을 보고 처음 이름을 알았다. 수피가 하얗고 종이처럼 벗겨지는데 구부러진 가지들이 운치가 있다. 높은 지역에서만 자생한다고 한다.

 

 

장터목에 이르렀다. 사람이 없다. 올라올 때는 제법 북적이던 야외 휴게소 벤치에도 아무도 안보였다. 산새만 먹이를 찾아 주변을 서성거리고 사변은 고적하였다. 잠시 쉬면서 오랜만의 산행에서 맛보는 호젓함을 만끽하였다. 한 때는 10시간 이상의 혼자서의 힘든 산행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두렵다. 무엇을 찾으러 그렇게 높은 곳을 욕망하였던가? 스스로의 시험이었던가? 도취감을 위해서였던가? 이미 가을이 왔는데 철 지난 바지를 양말에 구겨 넣고 일하던 셔츠 위에 조끼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나뭇가지를 주어 짚은 나는 화려한 레저스타일과 스포츠웨어 앞에 이방인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그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큰 산을 만나러 온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도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순례길이 아닐까?  시원한 바람과 산새소리, 잠시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기도 하지만 힘든 오르막과 내리막을 결코 피할 수 없는, 누군가와 동행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혼자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하산 길을 서둘러 내려오는 도중에 우연히 가파른 암벽에 붙은 작은 생명의 경이를 발견하였다. 수직의 절벽 틈에서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하는 노란 잎, 그 질긴 생명력은 그러나 너무 아름다웠다. 생명이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극복해야할 것이 어떤 것인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은 후에도 한참이나 살펴보고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친김에 내려오는 동안 꺾이고 상처난 나무들의 뒷모습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문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 수 있으며, 그러한 아름다움은 죽은 후에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매끈한 나신의 모습으로, 고행의 삶을 온몸으로 드러내거나 피에타의 비탄 그 지극함으로, 혹은 여기 살아있었노라 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죽음이 단순한 소멸이라면 얼마나 허망한가? 죽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다면, 살아있는 것들의 지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삶이란 죽을 때까지 늘 방황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물리적 방황뿐 아니라 내적인 변화와 끊임없는 흔들림, 그리고 새로운 깨닫음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인생의 도정에서 우연히 이렇게 큰 산을 만나고 가까이 지내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고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내리막길은 가파르고 힘들었다. 나의 삶도 이제 이런 내리막에 즈음한 셈이다. 서둘 필요가 있겠는가? 무엇이 급해 재촉할 것인가? 천천히 사위를 둘러보며 다치거나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내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네시반 백무동에 도착했다. 순조롭게 산행을 마쳤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순탄한 산행이었다. 큰 산이 돌봐준 덕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몸도 크게 무리한 것 같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주차장을 빠져나왔는데 뒤에 보니 사람이 있었다. 차를 세우고 주차비를 내야하느냐고 물었더니 돈받으러 오기가 귀찮은지 그냥 가라고 했다. 큰 산을 뵈러 왔더니 역시 봐주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다시 산을 쳐다보았다. 큰 바위 얼굴처럼 저녁노을을 이고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사히 다녀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비로소 묵은 짐을 하나 내려놓은 것 같았다. 집에서도 큰 산을 마주하며 살게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표 하였다. 다음엔 건너편 삼정산에 이르는 암자길을 다녀올 생각이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지면 반야봉에 올라가 붉은 낙조를 보고 싶다.

 

구월 청명한 가을 날. 큰 산을 보고 와서.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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