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내는 시끄럽다. 농사일로 한창 바쁠 때지만 느닷없이 온천개발이라는 괴물스러운 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지리산 댐 등이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엉뚱한 일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주민들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셈이다. 어찌하여 이 곳에까지 온천의 망령이 찾아들었단 말인가?
명산은 명산인가 보다. 호시탐탐 산자락을 끼고 무슨 일을 벌이고자 하는 시도가 끊이질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몫 잡아보겠다는 심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 온천을 개발하겠다고 나선 곳이 바로 우리 마을 옆이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우리 마을과 옆 마을의 경계지역인데 주소지는 우리 마을로 되어있고 위치상으로는 옆 마을에 더 가깝다. 직접적으로 인근 네개 마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이다. 어느 날 갑자기 굴착기를 들이대고 시추를 하는 것을 동네 주민이 발견하고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온천개발이라고 했다고 한다. 주민들에게 아무런 사전 설명도,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시추를 시도하다 이것을 발견한 주민들에 의해 제지가 되고 결국 공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행정관청에 신고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공사를 할 수 있다고 강변했지만 인근마을 전체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면사무소의 중재로 주민 설명회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급하게 만든 온천개발 도면과 함께 업자가 하는 말이 힐링타운을 건설하겠으며, 이 고장 출신으로 고향을 발전시키는 개발을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힐링, 개발, 둘 다 어이없는 변명일 뿐이다. 언제부턴가 갑자기 힐링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우리의 언어에 대한 무분별한 오용과 남용, 유행에 민감한 가벼움은 천박스럽기조차 하다. 내용이나 실천이 아니라 늘 말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온천개발업자도 이 근사한 말을 앞세워 주민들을 현혹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금껏 온천지역이 제대로 된 휴양지나 휴식문화 공간으로 개발된 곳이 한 군데라도 있었던가? 모두 무분별한 개발로 유흥업소나 목욕탕, 숙박업소들이 난립하여 더 이상 사람 살 곳이 못되는 향락적 도시가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우리에겐 아직도 휴양문화나 여가를 제대로 건전하게 보내는 문화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발이라는 것도 그렇다. 마치 그것이 대단한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 좋아 개발이지 개발업자와 극히 소수의 사람만 득을 볼 뿐 지역주민들에게는 거의 이익이 없는 허울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온천사업은 사양 산업이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온천수가 고갈되면 그 곳은 그야말로 폐촌이 되다시피 어지러운 곳이 되고 만다. 거기에다 지하수 고갈과 오염, 지반침하, 하천수 오염 등 환경파괴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동네만 버려놓을 것이 뻔 한 개발이라는 것이다. 혹 땅값이나 오르지 않을까 기대하고 찬성하는 주민도 있지만 단언컨데 얻는 것보다는 잃을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 이런 대규모 공사가 어찌 신고사항이냐? 라는 것이었다. 상수도 개발을 위한 시추나 소규모 관정도 아니고 지하 1000m 이상의 대형 시추를 하는데도 신고만 하면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더군다나 온천개발을 목적으로 하는데도 아무데서나 마음대로 시추를 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한 난개발과 예상되는 피해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역시 불법이었다. 온천개발을 위한 시추는 신고사항이 아니라 허가사항임에도 남원시에서 이를 간과한 것이었다. 주민대표가 직접 남원시 관계자를 대동하고 행정부와 국토부를 방문하여 면담을 통해 확인한 내용이었다. 남원시는 부랴부랴 공사종료를 선언하고 업자는 새로 서류를 작성하여 굴착 허가를 신청 했다고 한다. 서로 면피를 위해 손발을 잘 맞추고 있는 셈이다. 워낙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고 발빠른 움직임과 대처로 남원시는 눈치를 보느라 굴착허가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있는데 오늘이 그 처리 기한이라고 하니 결과가 궁금하다.
그동안 귀농인들을 중심으로 즉각적인 대책위가 꾸려지고 마을회의를 소집하여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중앙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였으며, 법적인 관계를 확인한 뒤 남원시를 방문하여 시장에게 행정착오에 대한 항의와 시정을 요구하였다. 여기에 지리산권의 환경운동 단체들이 결합하고 실상사도 의견을 내는 등 반대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온천 개발 저지운동 소식지를 발행하여 지역민을 상대로 설명회를 가졌고 동네와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이를 첨부하여 관계기관에 탄원서도 접수하였다. 며칠 전에는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언론에 이 문제를 집중 홍보하였으며 최근에 있었던 사례와 판례를 수집하여 남원시에 전달, 굴착허가에 대한 심의에 참고가 되도록 압박을 하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일에는 나도 참여를 했다. 늦게서야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대책위에 머릿수나마 보태기로 했던 것이다. 만약 허가가 난다면 더 지루하고 지난한 싸움이 계속되리라는 계산 하에 법정투쟁도 준비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기금도 모금 중이다.
온천개발 지역은 지리산에서 흘러나오는 청정수가 흐르는 만수천과 200여 미터 거리에 있고 그 냇물을 건너면 실상사가 있다. 실상사와 직선거리 500 미터도 안 되는 지점이다. 수려한 산과 깨끗한 물, 어머니 산이라 일컫는 지리산의 정기가 흘러내리는 곳, 천년고찰이자 생명운동의 본산인 실상사가 있고 전국제일의 귀농인구를 자랑하는 곳, 그만큼 우리에겐 자랑스럽고 아름답고 신성한 곳이다. 아무리 온천이 좋고 지역개발이 좋다고 해도 그런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시설이 들어서서는 결코 안 될 곳이다.
국제적인 관광지도 그렇거니와 거대자본에 의한 지역 개발은 결국 현지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천연의 환경을 파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주민들은 자기 고향에서 쫓겨나거나 고용인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될 뿐 결코 지역주민을 위한 발전이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례 산동만 해도 그렇다. 넓은 지역을 수용해 온천단지로 만들었지만 지난 4년 간이나 폐업했다가 최근에 겨우 다시 개장했다. 산과 물은 더럽혀지고 공동체는 파괴되었다. 온통 모텔이고 술집이고 식당이며 고깃집이다. 이것이 온천휴양도시고 힐링타운인가? 온천개발업자만 배 불리는 사업이다. 그것도 몇 년 안 가면 거덜이 나고 마는. 설사 다소의 보상을 받은들 그 돈으로 어디가서 정착하고 다시 새로운 생활을 해낼 것인가?
실개천, 작은 동산도 함부로 손대면 안 되는 것을, 국토의 젖줄인 4대강을 도륙 내더니 한반도의 근간을 이루는 명산에 케이블카, 대규모 댐, 이제는 온천까지 파겠다는 것인가? 돈만 된다면 어떤 곳이라도 파고 메우고 깎으러 드니 어찌 이리 그악한가? 만수천은 용유담을 지나고 경호강을 거쳐 남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아무리 정화를 해도 뜨겁고 오염된 물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행정기관의 방관과 개발업자와의 유착은 더욱 한심하다. 남원시는 지리산 지역이 전국 제일의 청정 관광지임을 모르는가? 그 특성을 살리는 개발을 추진해야지 어찌하여 자본의 날카로운 발톱에 먹잇감으로 내 줄 생각을 하는가? 나는 이 곳을 나의 마지막 안식처로 생각하고 들어왔다. 결코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온천이 들어서게 되면 이사를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멈추어라. 돈에 눈 먼 이 불한당들아!
소은.
'산내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가운 백로 (0) | 2013.05.16 |
---|---|
운이의 수술 (0) | 2013.04.18 |
홀로 삼헌을 올리다. (0) | 2013.03.23 |
나무에게 죄를 지은 사람 (0) | 2013.03.21 |
달집 태우기도 경쟁? (0) | 2013.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