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산내통신

주소를 이전하다.

방산하송 2010. 9. 17. 19:54

내가 정착할 이곳 산내는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한다. 함양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어 조금만 내려가면 경상도 마천 땅이다. 산내면사무소에 가서 주소 이전을 하였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218번지. 아무것도 없는 빈땅이다. 집을 새로이 짓고 거처할 곳이다.

  

주소를 이전하고 보니 참으로 많은 감정과 회한이 앞선다. 모두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호남 두 지역간의 단절과 차별화는 현대사의 한 질곡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 크고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있다.

 

나는 어려서 전라도에서 경상도 땅으로 이주를 하였다. 그리 내세울 것 없는 부친이 부산으로 직장을 구해 나갔기 때문이다. 풍수지리가 갖춰져 있으며 나름의 예의범절을 찾던 동네의 그런대로 먹고 살만한 중농의 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는 제법 공부를 잘하여 광주의 세칭 일류라고 하는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곧 부산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부산으로 이주한 이후로는 그야말로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도시의 삶이란 만만치가 않아 어줍잖은 시골 밑천으로서는 당해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신을 차려 대학에 진학을 했고 우연히 어머니의 고향인 울산에서 대부분의 교직생활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건데 경상도는 우리 집안과는 상당한 연고로 얽혀있기도 하다. 외조부께서 경상도 분이고 외조모는 전라도 분이다. 그 선친들께서 독립운동과 관계되는 일로 왕래를 하다 두 집안의 혼인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울산이 고향인데 다시 전라도 분인 아버지와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나도 태생이 전라도 사람인데 경상도 합천사람인 집사람과 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 그 이중의 심리적 고충은 누구에게라도 쉽게 터 놀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지역적 감정이 극성스러운 시기에 인생의 대부분을 지내오는 동안 내 안에 알게 모르게 쌓인 상처는 크다. 그럼에도 별 스스럼 없이 개의치 않고 신념을 지키고 살아온 것은 내 자존감과 의지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별 어려움없이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습득된  것이고 집안과 고향에 대한 자긍심 속에서 키워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막일 같은 큰 고생을 모르고 컷다. 특히 조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은 대단했는데 아마 내가 내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조모님의 나에 대한 기대와 헌신이였을 것이다.

 

이제 거의 삶의 중심을 보냈던 땅을 떠나 다시 본향인 전라도로 귀향하게 되었다. 이곳 자체는 아무 연고가 없는 곳이지만 그러나 심리적 친근감은 그 어느 곳 보다도 크다. 더군다나 지리산을 쳐다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은 무엇보다도 기쁨이고 희망이기도 하다.

 

그 동안 나에게 많은 위로와 힘과 희망을 주었던 친구들과 이웃과 동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이 나를 찾아온다면 언제라도 환영하고 반가히 맞이할 것이다.

 

산내에서...

 

 

 

'산내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와 함께하는 문경 새재  (0) 2010.10.10
전주, 그리고 소리나들이  (0) 2010.10.05
바지를 입고 불편해서 어떻게 등산을 하지?  (0) 2010.09.25
집을 설계하다.  (0) 2010.09.17
하던일을 멈추다.(퇴임사)  (0) 201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