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이 생전에 대구 은해사를 방문했는데 대중들이 스님의 한 말씀을 기다렸다. 스님께서 '호보연자 은람사'요 '호보람사 은연자'라 하시었다. 그럴듯 하였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설명을 기다리자 스님은 웃으면서 절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의 글이라고 하였다. 거꾸로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웃어넘기기에만은 무언가 남는 것이 있는 일화다.
집 입구에 당호를 파서 세웠는데 많은 이들이 '방산하송'이 무슨 뜻인지 의아해 한다. 거꾸로 읽은 것이다. ‘송하산방’ 이라면 금방 알겠지만 한글로 만들어 놓았으니 오른쪽 읽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읽기 십상이다. 끝부분에 낙관을 파 놓았건만 습관적으로 그렇게 읽는 것이다. 한 번은 동네 할머니가 요리보고 조리보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송한지 한참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일부러 가서 설명을 해 드렸다. 사실은 멋으로 세운 것이 아니고 윗쪽 길섶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자주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귀찮기도 하거니와 일일이 대꾸하기도 마땅찮아 당호를 세워 놓은 것이다.
위쪽에 한치영씨는 아예 해석까지 덧붙였다. 꽃다울 방에 뫼 산, 송은 소나무인데 하는 무슨 뜻이오? 그러고 보니 그렇게 해석해도 좋은 뜻이 될 것 같았다. 부지런히 자전을 찾아보니 클 하(嘏)가 눈에 띠었다. 크고 장대하다는 뜻 외에도 복을 받는다는 뜻도 있었다. 참으로 어울리는 글자였다. 그리하여 芳山嘏松(방산하송)이라는 글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꽃 같이 아름다운 산에 복된 큰 소나무'라 해석하면 정말 그럴듯 하다. 동네사람들이 우리 집을 소나무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니 앞으로 우리 집을 소개할 때 별칭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내어 큰 글로 써 보았는데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나의 글은 아직 여물지 못한 표시가 역력하다. 올 겨울 자첩을 중심으로 좀 더 기본에 충실한 연습을 많이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시간이 많이 남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몸을 쓰지 않는 대신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신묘 맹동지절.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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