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겨울에 만든 나무와 글

방산하송 2012. 2. 14. 13:53

 

 

 

오래 전 부터 울산지부에 글을 한 점 파 주어야겠다고 생각 했었는데 나무나 글 모두 마땅치 않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 마루판과 무적이라는 좋은 글귀가 동시에 얻어졌다. 지체없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글쓰는 일과 새기는 일이 모두 힘들었다. 칼 끝을 두번이나 부러뜨리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러나 정성을 들인만큼 그런데로 괜찮은 작품이 만들어 졌다. 무적이란 안개가 많이 끼여 보이지 않을 때 울리는 등대나 배에 달아 놓은 고동을 이야기 한다. 갈수록 어렵고 힘들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라는 의미다. 연락을 했더니 지부장과 상근자들이 한꺼번에 방문해 가져갔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나무 작업을 시작했다. 11월 이후로는 농사일이 거의 없어졌고 특히 날씨가 추워지면서부터는 바깥일을 하기가 어려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또는 나무 작업을 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생각나는 글귀나 적당한 나무가 구해지면 그마다 을 새겨보았는데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데는 이만한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산청의 김선생이 집을 수리하면서 나온 오래되고 낡은 목재를 몇 개 얻었는데 썩 좋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소품용으로는 쓸만한 것이 더러 있었다.

 

우선 현관 입구에 걸었던 표구를 들어내고 새로 한글 서각을 파서 걸었다. 글도 마음에 들고 나무의 모양과 재질도 괜찮아 마루에 앉자 쳐다 보면 주변과 잘 어울리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층 서재에 있었던 습작으로 판 유우석의 누실명도 들어내고 첫구절을 크게 파서 새로 걸었다. 글이 흡족하게 잘 나왔다.

 

 

 

서각 작품집을 뒤지다가 본 여의라는 글귀를 보고 내 나름대로 파보았는데 모처럼 양각으로 팠다. 여의란 만사형통, 뜻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한자 말이다.

 

역시 소품으로 심여(만고)청산이라는 글귀를 새겨 본 것이다. 만고에 변함없는 푸른 산처럼 의연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새로 귀농한 이홍구 선생댁에 기증을  하였다.

 

 

 

나무를 얻어온 값으로 김선생네 기둥에 걸 주련 두 점을 만들었다. 피갈회옥(거친 옷을 입을지언정  안으로는 덕을 품고 산다)과 휴영식적(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유유자적하며 산다)이다. 가끔 정자나 옛 고가에 가보면 주련이 멋들어지게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만큼의 솜씨는 못되지만 보름날 기둥에 걸었더니 집이 살아나는 듯 보기가 꽤 괜찮았다. 

 

서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은 무엇이든 친근감이 가고 애착이 간다는 것이다. 명사의 글이 아니라도 전문가의 솜씨가 아니라도 스스로 쓰고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어쩌다 작품이 만족스럽게 나오면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 또 보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서각을 솜씨로 만드는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무엇이든 마음을 내면 재미가 있고 정성을 들이면 좋은 결과가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족하면 될 것이다. 좋은 글귀를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글로 쓰고 또 단단한 목판에 옮기면서 그 뜻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러한 과정이 즐거운 것이지 단순한 기계적인 작업이라면 나도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근방에도 나무작업을 하는 이가 두어사람 있다고 들었는데 다 그만그만한 솜씨인것 같다. 단지 나무를 구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친분을 가지고 가끔 자문을 구할까 생각 중이다.

 

가장 최근에 만든 작품이다. 고산의 유적지인 녹우당에 걸려있는 현판 중에 이광사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 '정관'이라는 글이 있다. 조용히 앉아 관조한다는 뜻으로 선비의 몸가짐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그 뜻이 좋아 새겨본 것이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두어 점 더 만들어 보려고 글귀와 나무를 준비해 놓았는데  잘 될른지 모르겠다. 2월이 지나면 당분간은 칼을 접어야 할 것이다. 모처럼 비가 내려 앞산에 운무가 걸리었다. 봄의 냄새가 물씬 난다. 이제 서서히 농사준비를 해야할텐데 초보자는 무엇을 해야할지 아직도 감을 못잡고 있다.

 

 

임진. 아직 추운 새봄에.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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