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재를 넘으니 구례쪽은 확실히 날씨가 달랐다. 산수유의 노란 꽃이 한창이고 매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천은사를 지나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봄 내음이 물씬 나는 것 같았다. 꽃이 있는 곳을 지날 땐 차창안으로 향기가 가득 날아 들어왔다. 모처럼 나들이 가는 사람들은 마음이 들떠 마치 어린아이들 소풍가는 것 같았다. 이 번 주 소리 수업은 야외에서 하자고 바람을 넣어 구례 산동으로 꽃놀이를 가는 참이었다.
산동의 온천마을을 지나 위로 올라가니 가로길은 물론이고 온 동네와 논밭이 모두 산수유 꽃 지천이었다. 노란 꽃물결이 일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어디서나 그렇듯 축제기간이라고 하여 온 동네에 울리는 마이크소리와 노래소리는 심히 유감스러웠다. 위쪽 동네로 한참이나 더 올라가 동네 가운데 있는 동산에 자리를 잡았다. 산동마을이야 온천에 온다고 여러번 와 봤지만 정작 봄에 산수유 꽃을 보러 오기는 처음이었다. 동네 가운데서 아래쪽을 바라보니 노란 구름밭 위에 우리가 올라와 있는 듯 했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 되었다.
우리가 소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것을 배우고 익히자는 뜻도 있지만 결국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가끔은 밖으로 나가 풍류를 흉내 내보는 것도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즐기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늘 생각하지만 남원에 사는 사람들은 복받은 사람들이다. 소리니 창이니 가야금이니 하는 국악을 아무데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 배울 수 있는 기회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점심은 소리선생님이 준비하기로 하였고 나는 빵을 구워 가기로 했다. 산내에서 한시에 만나 출발하였는데 막상 산동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았을 때는 세시가 다 되었다.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소리선생의 음식솜씨가 뛰어났다.
먹었으니 한바탕 소리공부를 해볼 일이었다. 제대로 공부가 될 리는 없겠지만 돌아가며 심봉사 황성 가는 대목을 두어 번 연습하였다. 밖에서 해보니 뭔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여럿이 둘러앉자 하는 것이어서인지 크게 민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좋을시고! 한창 흥이 무르익어가는 참인데, 아차!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올라와 마이크 소리가 시끄러운데 소리까지 질러대니 더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었다.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여 마을 위쪽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구례에 근무하는 이성형선생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으니 그만 접고 나가자고 하였다. 옳거니! 오늘 같은 날 소리 공부가 대순가? 짐을 챙겨 구례 읍내로 향했다.
옛날에는 산수유가 약재로 많이 쓰였는데 요새는 눈요기로 꽃이 더 유명해졌다. 가을에 붉은 열매는 약간 길쭉한데 먹어보면 상당히 새큼하다. 옛부터 부인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간이나 신장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였다. 동네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보니 집집마다 산수유 고목이 오래 된 돌담과 어울려 장관이었다. 집 뒤안이나 뒷밭에 심어진 산수유는 이끼 낀 돌이나 담장에 둘러싸여 나무의 모양도 그렇거니와 주변과 잘 어울리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동네 밖으로 나오니 너무 과하다. 도로나 산비탈까지 덧대어 심어놓은 것들은 뭔가 어색하다. 군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논이나 밭에도 온통 산수유를 심어놓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모양이었다. 어디 좀 볼만한 곳이 있다 싶으면 기를 쓰고 몰려가는 사람들도 그렇거니와 그런 사람들을 불러 모으겠다고 축제를 열고 시끄럽게 하는 지자체들의 전시성 행정도 사실은 못마땅하다.
구례읍으로 들어가니 이성형선생이 미리 나와 있었다. 가오리찜이 유명한 집으로 안내를 했다. 막걸리 한 사발과 싱싱한 가오리 찜은 아주 궁합이 잘 맞았고 맛이 있었다. 파전과 계란 찜까지 점심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부르다고 엄살을 피우면서도 결국 다 먹어치웠다. 창제씨가 대신 운전을 하겠다고 하여 키를 맞기고 나도 막걸리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켰다. 이선생이 가까운 곳에 풍광이 좋은 사성암이 있으니 올라가 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왔다.
사성암은 높은 산 절벽에 붙여 지은 암자다.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 가봐야지 생각만 하고 아직 가보지는 못했었다. 해질녘 일몰이 장관이라고 하니 마침 적당한 시간이었다. 사성암 아래 도착하니 저무는 섬진강이 고즈넉했다. 잠시 내려 바람을 쏘이는데 스산한 저녁나절의 기운이 까닭 없이 사람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곡성에서 흘러 내려 온 섬진강은 구례에서 크게 꺾여 하동 쪽으로 내려간다. 지리산을 감싸고 돌아가는 것이다. 김용택의 '섬진강'이 생각나기도 했고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가 생각나기도 했다.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가로 질러 흐르는 강, 오늘도 말없이 저녁을 맞이하고 있는 강은 그저 무심한 듯 흘러가고 있지만 그 속에 수많은 아픔과 회한을 켜켜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가파른 산길을 차로 한참 올라가니 그야말로 궁색한 절벽에 사성암 약사전이 둥지를 틀고 앉자 있었다. 그래도 밑에서 보기보다는 절 아래 공터가 제법 확보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신라 때 지은 절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저런 가파른 절벽에 암자를 지었을까? 비좁은 바위 길을 올라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절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었다. 마애불을 보존하기 위해 그쪽 바위 면을 건물로 둘러싼 것이었다. 마애불이 있는 쪽 벽은 유리로 되어 있어 여래불을 볼 수가 있었다. 참으로 기막히고 놀라운 솜씨였다. 마애불을 보호각으로 둘러싸는 경우는 보았지만 직접 주불로 모신 법당은 처음 보았다.
사성암 마애불은 9 세기경에 새긴 것이라고 하는데 선과 모양이 예쁘고 전체적인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었다.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전설은 아마 전체가 음각으로만 새겨져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설화인 것으로 보인다. 크기도 크고 뒷 광배나 흘러내리는 옷 주름도 아주 뚜렸하였다. 일반적으로 마애불은 석불에 비해 대체로 선이 곱고 우아하다.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나고 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불상을 전체적으로 완성하는 일보다는 작업이 수월하고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밖으로 나오니 마침 서쪽으로 떨어지는 일몰이 처마 밑에 걸려 있었다. 구름이 많아 좀 아쉬웠지만 날이 좋으면 대단히 아름다운 일몰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사전 돌 계간을 내려오다보니 수많은 시간이 걸려 조성했을 돌계단에 눈길이 쏠렸다. 그야말로 촘촘히 정교하게 돌을 쌓아 만든 계단은 누구의 솜씨일까? 그 정성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종교적 심성이란 가끔 사람을 불가한 것도 이룰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지게 한다. 무슨 절박함이 이토록 간절히 매달리게 했을까? 무슨 업을 닦고자 이토록 수많은 시간과 땀을 바쳤을까? 현세의 고달픔을 잊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까? 내세를 위한 절절한 기도의 심정이었을까? 그러한 정성이 과연 어떤 보답을 주었을까? 육체의 고달픔을 인내한다는 것이 과연 영혼의 구제에 반드시 필요한 행위인가?
옆으로 아슬아슬한 절벽을 따라 극락전과 두어 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올라가 보니 구례읍과 산 아래 흐르는 섬진강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건너편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훤히 보였다. 저멀리 보이는 지리산과 발 아래 도도히 흘러가는 섬진강, 앞은 가파르게 깍여 거친 것이 없다. 넓은 구례 뜰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참으로 장쾌하고 시원한 풍광이었다. 언젠가 건너편에 있는 운조루 앞마루에 앉아서 보니 바로 앞산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는데 지금 이곳이 그 곳에서 보았던 정경 중 일부일 것이다. 어느 늦은 가을날 이곳에 올라오면 세속의 찌든 때를 훌훌 벗어버리고 그냥 불법의 세계로 귀의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만한 자리였다. 거친 암벽 중간에 어린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튀우고 있었다. 다음에는 오산 정상을 거쳐 등주리봉으로 등반을 하면 좋을듯 했다. 이성형 선생한테 안내를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별 생각없이 나선 길이었는데 예기치 않았던 사성암까지 구경하게 되었다. 어쩐지 올 해는 여기저기 다닐 일이 많이 생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자. 어디 조용한 섬에 들러 며칠 바다내음을 실컷 마시다 오고도 싶고, 반야봉이나 한신계곡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고, 울릉도에도 한 번 다녀오고 싶고, 달마산 산행도 한 번 가야 될 것 같고, 그래 그동안 꼼짝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었으니 올해는 몸을 좀 움직여 봐야 겠다. 그러나 억지로 높은 산을 올라가는 일이나 차만 타고 돌아다니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걸음으로 지리산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무렴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움직여 보는 것도 좋을 일일 것이다.
그냥 헤어지기는 섭섭하여 남원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어차피 하루해는 다 까먹은 터였고 가오리찜을 대접 받았으니 술을 한 잔 살 생각이었다. 남원 시내의 오래된 막걸리 집에 앉아 생선찌개를 안주삼아 편안하게 술을 마시고 저녁도 해결하였다.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학교 이야기, 소리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 옆에서 부추기는 바람에 느닷없이 사철가를 또 부르게 되었다. 술자리인지라 흥이 저절로 일어났던 것이다. 이성형선생 말이 이제는 나름대로 자기 것으로 소화를 잘 시킨 것 같다고 치켜세워 주었다. 소리선생도 옆에서 거들었다. 남도의 맛을 일각이나마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였다.
사는 이야기와 흥겨운 농담과 웃음 속에서 정담을 주고받다 늦게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배가 너무 차올라 그야말로 뺑뺑하였다. 다음에는 벚꽃놀이를 가자고 했다. 그 때는 맑은 술을 준비하여 펄펄 날리는 꽃잎으로 흥취를 돋우워 보자고 하면서...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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