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이치

방산하송 2014. 8. 3. 21:54

키 큰 참깨가 제일 먼저 넘어갔다

헛물 밴 채소 나부랑이들도 속절없이 무너졌

높이 오르던 수세미가 땅으로 처박히고

잎만 무성하던 오동나무는 등이 한 자나 휘었다

큰 소나무 가지를 흔들어 삭정이 떨굴 때

화단의 봉숭아, 백일홍 , 섬초롱 등 등 

꽃 잎 화사하던 것들 마저 꺽이었다

 

바람 그친 뒤 오직 풀빛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푸르게 성성했다.

 

 

 

 

태풍이 지나갔다. 작년에는 태풍도 없어 심심했는데 오랜만에 비바람이 거세게 들이쳤다. 이제 여물기 시작하는 농작물 등속이 걱정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눈앞에서 참깨가 맥없이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상추가 주저앉고 오동나무가 휘어지는 것을 보면서 겉만 무성한 것들은 결국 거친 풍파 앞에서 먼저 넘어진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 세상의 키 큰 것들, 무성함과 화려함을 자랑했던 것들이 가장 먼저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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