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엔 자화상
그리고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의 시에서는 서늘한 향기가 난다.
죽어가는 것들을 노래한
영원히 나이 들지 못하는
그래서 언제나 젊은 그의 시
가을비가 내린다.
북간도에도 후쿠오카에도 비가 내릴까?
별도 보이지 않는 밤
오늘 저녁 다시 그를 불러
마음 속에 등불 하나 켜고
그가 노래한 것들을 따라 가본다.
그가 사랑했던 것들
괴로워했던 것들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을
그러나 이 시대 이 나이에
그의 시를 읊조린다는 것이 어쩐지 쑥스러워진다.
오늘도 어제도 아무 셀 것도 없는 세상
이름 불러 볼 친구, 어머니, 먼 이국의 시인도
바람과 별이 흐르던 우물도 없다.
다만 어두운 하늘 밑
미워지다 다시 가엾어진 나만 남아
그의 순수에 가슴을 떨뿐...
가을비가 내리는 저녁, 왜 갑자기 윤동주의 시가 새롭게 와 닿는지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 젊었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 일어난다. 세월이 달라졌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두운 시대와 혼란 속에서도 어찌 이렇게 맑고 깨끗한 언어와 시를 만들어 냈을까? 죽음마저도, 흐린날 마저도 투명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느껴지니 가을이 깊어가는 밤, 나는 그의 순수와 짧은 삶에 더 마음을 뺏겼나 보다.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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