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녀석이 차를 타고 대문 쪽으로 나가는데 느닷없이 눈이 시큰해졌다. 다 큰 아이들이다. 고물차지만 저희들의 차를 타고 같이 나가는 모습도, 이런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도 처음이었다. 마치 날갯짓하며 둥지를 떠나는 새의 모습을 보는 듯, 이제 떠날 때가 됐구나! 실감이 되면서 마음 한 쪽이 서늘해졌다. 엊그제 제 아비의 환갑날이라고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가는 중이었다.
어쭙잖은 환갑 잔치였다. 요즘이야 환갑이라고 해서 특별히 행사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육십갑자를 살고 다시 시작한다고 하여 환갑이다. 나이 들었다고만 하는 잔치가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기가 아니겠는가? 칠순이나 팔순보다 더 의미 있는 날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제부터는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가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할 때다.
그래서 이즈음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도 하고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내심 이런 자리를 마련할 계획을 진즉부터 세우고 있었다. 크게 내세울 것은 없지만 지금껏 별 탈 없이 그만그만하게 잘 살아온 것은 결국 가족과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과 이웃들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들을 초대하여 저녁 한 끼나마 대접하고 그동안의 우의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도 변함없는 교유를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다. 남원 시내 오래된 한정식 집을 예약하고 동생들, 대학 동기들, 울산의 친구들, 그리고 동네에서 가깝게 지내는 이웃과 무엇보다 소리패와 대금패를 초대한 이유는 식사 후 여흥으로 한 판 잘 놀아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걱정과는 달리 거의 사십 여명이 모여들었다.
남도의 음식은 깔끔하고 정갈하였다. 술을 곁들이며 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누고 내가 앞장서 소리와 노래를 부르고 손님들의 솜씨를 청하였다. 정억환씨의 재미있는 소리와 남도 민요는 좌중의 흥을 한껏 돋우었다. 김 선생의 능숙한 노래, 박명창의 시원한 소리가락과 신윤이 여사의 걸출한 타령은 이성형 선생의 북장단과 잘 어우러졌다. 나도 사철가 한 대목을 맘껏 뽑아냈다. 신여사의 장구장단이 흥겨웠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박원배 선생의 대금연주였다. 나보고 배운 솜씨를 한 번 자랑해보라고 했지만 가당찮은 일이었다. 다스름도 잘 안 나와 얼른 대금을 넘겼다. 역시 좌중의 시선과 귀를 압도하는 빼어난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어디서 이런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여러사람의 노래와 솜씨가 이어지고 좋은 음식과 흥겨움 속에서 세 시간여 잘 먹고 잘 놀다 헤어졌다.
그런데, 잘 먹고 잘 놀기도 했지만 도중에 있었던 큰 아이의 인사 말이 더 마음에 남았다. 옛날 같으면 저희들이 잔치를 열어드려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오는 도중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아직 스스로 자기 앞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나이에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아직 저희 일을 그다지 조급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걱정이야 되지만 곧 제 할일을 찾아내지 않겠는가? 뚜렷한 근거도 없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서는 것은 그 아이의 성정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본인으로서는 약간의 자괴감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으니 더 그런 마음이 들었을 테다.
다음 날, 집에까지 와서 하룻밤을 지낸 동생들과 친구들이 모두 떠난 뒤 아이들도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 묘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마 근래 내 나이와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혹 어제 저녁에 했던 말이 마음에 남아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들 사람이란 나이가 들면 어미 품을 떠나기 마련이고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것이 특정한 날과 겹쳐져 새삼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아이들이 떠난 텅 빈 자리에 앞 산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언제 봐도 변하지 않는 것은 경정산 뿐이니... 이백의 넋두리가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다.
아무리 유명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다고 한들, 어느 결에 스러진지도 모른채 죽어간 사람이나 무어 다를 게 있겠는가? 생각이 든다. 수천 년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들 죽은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우연히 태어나 한 생명 살다가 죽는 것은 매 일반인데, 대단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욕심을 부린들 결국 마지막은 모두 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은 억울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그저 사는 동안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자기 몫만큼 누리고, 누린 만큼 또 베풀고 가면 되지 않을까? 자식이란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돌보아 주면 충분하다. 그들 인생은 그들의 몫이다. 다만 그 핏줄의 인연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 끈까지 놓아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행사를 치르고 난 사흘 뒤 아버지의 기일이 돌아왔다. 내가 그 사이 환갑이 되었다는 것과 자그마한 축연을 베풀었다는 것을 고하였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니가 벌써 환갑이 다 되어가는구나." 하시던 것이 생각났다. 나이 들어가는 자식을 어떻게 생각하셨을끼? 결국 축을 읽다 또 목이 메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보답해드린 것이 없다. 다만 내 앞길, 내 스스로 해결하고 살아왔으니 그것만이라도 고맙게 생각하셨을까? 나 역시 내 아이들이 자기 앞가림만 잘 하고 산다면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끝까지 뒤를 봐줄 수도 없는 일이니 그것이 아비로서 간절한 소망이자 마지막 부탁이다. 무엇이 잘 사는 길인지는 역시 스스로 판단해야 할 몫이겠지만.
환갑을 지내고. 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