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량을 올리는 날이다.
며칠 전 부터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나 준비를 해야할 것인지 계산이 복잡하였다. 제대로 상을 차릴 것인지, 간소하게 일꾼들과 떡과 음식을 나누는 정도로 할것인지, 상량문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이리저리 궁리를 해 보았는데 결정이 쉽지 않았다. 본래 상량식이란 집짓는 중간에 집의 가장 중심인 대들보를 올리는 때를 잡아 집이 무사히 완공되기를 축원하는 제를 올리고, 술과 음식으로 그동안 수고한 일꾼들을 위로하는 자리이다. 남은 작업을 잘 마무리 하기 위해 한소끔 쉬어가는 행사이기도 한 것이다. 이리저리 생각 끝에 전통한옥도 아니고 굳이 거창한 상을 볼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운 사람과 인부들, 혹 오실 수 있는 동네 어른 몇 분들을 모시고 인사겸 간단하게 치르기로 하였다. 목조주택인지라 특별히 대들보라 할 것은 없지만 지붕 중심에 상량문을 써 붙이면 된다는 장사장의 설명이다.상량식 후에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들기로 하고 미리 식당에 준비를 부탁하였다.
이장님께 동네분들에게 안내를 해 달라고 부탁하고, 산청의 김선생에게 부탁하여 함양과 거창에 떡과 편육을 주문하였다. 깨끗한 판목을 준비하여 김선생 집에서 저녁 식사 후 직접 상량문을 썼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글을 잡았으나 난생 처음 써보는 글인지라 긴장이 되어 손이 떨리었다.
'龍 庚寅 十月 十九日 立柱上樑 應天上之五光 備地上之五福 龜'
비록 달필은 못되었지만 몇 번이고 쓴 글을 읽고 쓰다듬어 보았다. 본래 상량문도 이름있는 문사나 어른이 글을 짓고 써주는 것이지만 마땅히 부탁할데가 없으니 직접 쓴것이다.
상량날 아침 나는 아침 일찍 현장으로 출발하여 장을 보고 상을 빌렸다. 전기배선을 하는 날이라 전기공사하는 분들도 참석을 하게 되었다. 이장님 말씀이 동네 사람들은 자기집 상량할 때도 몇 사람 오지 않았을 뿐아니라, 마침 오늘 인월에서 매년 치르는 경로잔치까지 있어 많이 참석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김선생이 떡과 편육을 찾아 도착할 때를 기다려 상을 차렸다. 조촐한 상이었지만 나는 마음이 경건하였다. 상량문을 상에 얹고 음식을 차린 후 술을 따르고 축원하였다. 일꾼들을 위해 금일봉을 같이 올렸다. 장사장님도 한 잔 올리고, 이장님도 한 잔 올리고, 산내에서 제일 먼저 사귄 진상훈씨도 한 잔 올리고, 김선생과 같이온 조선생님도 한잔 올렸다. 박수와 축원속에 상량식을 무사히 치르고 식당에 가서 오리고기로 점심까지 잘 먹고 마쳤다.
여러사람들이 터가 좋고 잘 생긴 집을 짓는다고 덕담을 많이 해주었다. 공사하는 분들도 집의 조망과 경관이 좋다고 늘 이야기 하고, 전기배선하러 온 사장님도 자재나 구조물을 제대로 쓰는것 같다고 장사장을 칭찬하였다. 작년에 아래쪽에다 집을 지은 진상훈씨는 집의 설계가 잘 나왔고 창고가 커서 좋다고 부러워 했다. 나는 집에 큰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장사장에게도 큰 흠만 없으면 만족하겠다고 여러번 이야기를 했다. 이정도만 해도 이미 나의 분수를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작 공사하는 장사장 본인이 내가 살 집인것처럼 불편함이 없도록 잘 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시공하는 과정을 보면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긴 하지만 성실하게 시공을 잘 하는 것 같아 고맙고 안심이 된다.
무엇보다 상량을 하는동안 산청 김선생의 도움은 참 고마웠다. 먼저 들어와 사는 바람에 이런저런 일로 내가 많은 신세를 지는 셈이다. 무슨일이 있을 때마다 한 사람의 도움만 있어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느끼게 되고, 또한 옛 우리 조상들이 마을을 이루고 동네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며 살았던 두레정신이 얼마나 정겹고 잘 살아가는 방법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물론 현대사회의 구조가 농경사회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과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까지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상량날 전까지 주변의 잡목과 잡초, 덤불 등을 제거한다고 며칠 동안 힘을 썼더니 팔과 온 팔뚝까지 긁히고 파이고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집 뒤 소나무 주변도 말끔해졌고 담벼락 주변도 깨끗해져 보기가 한결 개운 해졌다. 멀리 집 앞으로 지리산 주 능선이 환하게 보인다. 천왕봉, 제석봉과 장터목, 세석과 연하봉부근까지 반야봉과 노고단은 앞 산에 살짝 가려져 있으나 지리산 주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지역은 이 지역밖에 없다고 한다. 부디 공사가 무사히 잘 마무리 되기를 기원한다.
2010. 11. 24. 송하산방 주인
<상량 사진>
- 가운데 산 바로 뒤 둥근 부분이 천왕봉이고 제석봉과 장터목을 지나 가장 왼쪽 봉우리가 세석이 있는 연하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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