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산내통신

눈 내리는 수덕사를 만나다

방산하송 2011. 2. 4. 14:35

십 수 년 전의 오래된 일이다. 예산 수덕사의 보수공사에 관련된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는데 올라가는 돌계단이 기계로 자른 날 것이었다. 그 이후 수덕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지금까지도 가보지 못했었다. 일엽스님의 일화로 유명한 곳, 고암 이응로 화백의 고향이 있는 곳, 이번 겨울 산청의 김 선생 내외와 덕산온천으로 겨울 여행을 가자고 약속이 이루어졌다. 겸사겸사 추사고택도 들러보고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수덕사도 구경하기로 하였다. 

 

계획했던 출발일이 마침 부산에 있는 대학동기의 딸 결혼식 날인지라 식장에서 합류하여 출발하기로 하였다. 대학 동기라 하여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는 친구가 6명인데 김선생도 그 중 한사람이다. 가난한 청춘이었던 젊은 날의 친구들이다. 서로 비슷한 처지들이어서 그런지 늘 부담이 없고 마음이 편안한 친구들인데 어느덧 나이가 들어 아이들이 성가를 할 때가 되었으니 참 세월은 빠르다. 오랜만에 만나니 식을 마친 후 늦은 점심이 길어져 저녁이 다 되어서야 마쳤다. 결국 날이 저물어서야 출발을 하게 되었다.

 

요즘이야 어딜 가나 교통이 편리하고 모두 차를 가지고 있으니 시간만 있으면 가고 싶은 데를 맘껏 다닐 수가 있지만 옛날에는 돈도 돈이지만 어디를 가기가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나 대학 때 우리는 무던히도 많은 추억과 동행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전공과목의 특성상 야외 답사가 필수적인 분야여서 더욱 그랬다. 어딜 가나 일이 터지고 문제가 발생했다. 전래 행사처럼 여학생들과 다투거나 고생하거나 욕을 얻어먹거나...  그 풋풋했던 젊은 날들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아련하게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다.

 

졸업 뒤에도 우리는 늘 만나 어디를 같이 다녀오곤 했다. 대부분 문화기행의 성격이 강했다. 사람들이 순수하고 정이 있어 아이들을 대동하고도 방학 때마다 참 많이 다녀왔다. 때마다 모이면 밤 새워 토론하고 격정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 쯤 부터는 술이 점차 줄더니 시간이 오래지 않아 슬슬 뒤로 눕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터다. 우리도 모르게 늙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퇴직을 한 친구도, 교감이 된 친구도, 이민을 간 친구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장성하여 결혼을 앞두고 있다. 곧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예산까지 올라가기에는 시간이 늦어 유성에서 일박하기로 하였다. 유성온천도 꽤나 역사가 있는 유명한 곳이다. 워낙에 시가지가 커지고 도심화 되어 옛 맛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사람들에게 물어 다소 고급스런 호텔에 들었다. 다같이 한 방에서 지내는데도 아무 스스럼이 없다. 몇 년 전부터 겨울이면 김 선생 내외와 가끔 이렇게 여행을 해 왔던 터이다. 김 선생은 동기들 중에서도 더 가깝게 지낸 친구이다. 같은 지역에서 근무를 했고 같은 교육 운동을 했고, 늘 얼굴을 대하다 보니 친동기처럼 가까워졌다. 귀농의 형태로 산청에 안착했으며 나와 같은 시기에 퇴임을 했다. 안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친하다. 이번에도 김선생 부인의 제안으로 수덕사를 가게 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날씨는 흐리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는데 아침을 들고 출발하여 예산에 들어서니 여기 저기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의당 오는 눈이지만 눈이 오지 않는 지역에 사는 우리 눈에는 흔치 않은 풍경이다. 동네 입구마다 구제역 예방 시설이 우울하다. 우선 예당지로 가보았다. 이지역의 대표적 유원지이기도 하고 낚시터이기도 한 역사가 오랜 못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추운 겨울 날씨 탓에 온통 얼어붙은 못은 눈으로 뒤 덮혀 아무것도 볼 것이 없었다. 못이라 하기에는 꽤나 넓은 예당호를 한 바퀴 돌아 추사 고택으로 향했다.

 

 

추사 김정희, 두말할 것도 없이 유명한 인사지만 같은 역사적 인물도 사람에 따라 그 친밀감이 다른가 보다. 서예를 해 보겠다고 섣부른 글을 쓰기도 하고 추사체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민중의 역사와 유리된 사람은 내 가슴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추사 고택은 옛 양반가의 좋은 터와 반듯한 사대부가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집안 곳곳에 추사의 예서체를 판각하여 걸어놓았다. 글씨만큼은 독보적인 경지를 지닌 사람이다. 나는 주련으로 걸린 그 글씨를 열심히 쳐다보고 김선생은 나중에 집을 수리할 때 참고하겠다고 지붕과 기둥, 벽의 목재 이음과 구조를 열심히 살펴보았다.

 

지난번 제주도의 추사 적거지에 들렀을 때 느꼈던 한적함과는 또 다른 형태의 조용함을 느낄수가 있었다. 툇마루에 앉아보니 다소 협소하다는 느낌이 든다. 양반가의 안채란 것이 다소 답답하다. 폐쇄적인 구조인 것이다. 사랑채로 뒷뜰로 사당으로도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담은 높고 집은 좁다. 지금까지 보았던 고택 중에서 그나마 가장 풍광이 트인 곳은 구례의 운조루이다. 마루에 앉아보면 건너편 산의 스카이라인이 기막히게 담 너머로 들어왔다.

 

 

고택 옆에 자리한 추사기념관에 들어가 보았다. 추사의 일대기와 연보가 잘 정리되어 있는데 수많은 추사의 인보가 전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추사는 유난히 아호가 많은 사람이다. 글씨보다 그 전각에 더 눈이 간다. 나중에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몇 장 사진으로 담아 두었다. 나는 예서체 판본을 김선생은 세한도 영인본을 기념으로 구입하여 서로 나누었다. 나중에 표구하여 걸어놓으면 좋을 듯하다.

 

추사의 글씨는 예사롭지 않다.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 자기만의 서체를 만들어낸 것만 해도 그는 탁월한 예술가이다. 감히 그의 글씨를 평가하기에는 나의 식견이 부족하지만 전후후무한 그의 글씨체만큼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조형미와 강건한 힘을 동시에 자랑한다. 스스로 벼루 열개를 바닥내고 붓 천자루를 닳아 버리게 했다고 하니 그 노력과 글씨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러나 그러한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민초들의 삶과 관계된 그의 행적이나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당시 학문계를 주름잡았던 실학파의 일원인 박제가의 제자이면서도 그에 걸맞는 학문적 연구나 실천은 전혀 없는 것이다. 다만 예술가로서 그의 남다른 노력과 금석학에 대한 공헌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추앙 받을만한 모범이 되었다.

 

 

 

본래는 덕산 온천을 가기로 하였으나 시간상 들리지 못하고 수덕사로 막 바로 들어갔다. 이미 많은 눈이 여기 저기 내려 있었다. 절 아래 식당가에서 점심을 산채정식으로 들었다. 반찬이 너무 많다. 수덕사로 올라가는데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일주문 아래 옛 수덕여관이 있고 그 옆으로 고암 미술관이 있다. 전시된 고암의 작품이 몇 점 없어 섭섭하였다. 고암 이응로 선생도 재독화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윤이상 선생이나 송두율 교수처럼 지난 날 광기어린 이념의 광풍에 서리를 맞은 사람이다. 그가 고향의 수덕사를 생각하며 그린 작품을 보면 얼마나 조국과 고향을 그리워 했는지 절절히 베어있다. 그러나 그의 조국사랑도 무자비한 이념의 칼날에 결국 난도질 당하고 말았다. 부끄러운 과거다.

 

눈이 바람에 날려 쌓이기 시작한다. 눈 오는 산사, 수덕사는 큰 절이다. 본당 뒤로 눈 속에 덕숭산의 고풍스런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기둥의 본전건물은 규모가 너무 커 옆으로 나온 맞배지붕은 써까래를 넣어 빼낼 정도다. 다만 주변의 조형물들이 풍광에 다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생경하고 새 것인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날씨가 좋으면 천천히 구경을 했을텐데 눈발이 세어져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서둘러 내려왔다.

이렇게 눈 오는 경치를 볼 수 있는 것 만 해도 이번 여행은 나에게 이미 흡족하다. 수덕사를 내려오니 길은 눈으로 뒤 덮여 오가는 차들은 모두 거북이 걸음이었다.

 

늦었지만 변산에 가서 자기로 하고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변산의 휘목 미술관 펜션은 몇 해 전 학교 여행으로 두어 번 들러 본 곳이다. 분위기가 좋아 이번에도 들리기로 하고 전화로 방을 예약하였다. 변산 공동체 윤규병 선생은 얼굴이나 뵙고 저녁을 나눌까 하여 김선생이 연락을 하니 계시지 않았다. 줄포녁 부터 곰소에 이르기까지 제법 눈이 많이 내려 기다시피 여관을 찾아 들었다. 짐을 정리하고 다소 저어되지만 격포로 나가 늦은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 지역의 먹거리는 항상 풍성하고 맛깔스럽다. 돌아오니 방이 뜨거울 정도로 따뜻하다. 이번 여행은 숙박지를 잘 선택한 덕분에 편안한 여정이 되었다.  

 

이튿날 일어나니 아침까지도 밤새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밖에 나가니 건물 뒤편 소나무 숲에 소리없이 내리는 함박눈이 너무 고즈녁 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에 넋없이 쳐다보고 있어도 싫지가 않았다. 마당에 전시된 작품들마다 눈을 가득 둘러쓰고 있는데 색다른 느낌을 준다. 겨울만 되면 이렇게 눈 내리는 풍경을 얼마나 고대하고 희망하였던가?  미술관 밖으로는 계속 눈이 내리고 큰길가에는 차도 뜸하다. 오늘 밖으로 나갈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차들이 왕래하는 것이 보인다. 미술관 옆 카페에 가 차를 한잔하기로 하였다.

 

 

카페는 막 불을 지피고 있었다. 우리 밖에 아무 손님도 없다. 누드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 갤러리에 안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차를 나누었다.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과 편안한 소파에 앉아 듣는 음악은 서로 잘 어울려 분위기가 참 좋다. 이곳은 한 여유 있는 예술관계인이 폐교를 구입하여 미술관을 꾸미고 전시실과 수장고도 갖추어 놓았다고 한다. 팬션은 손님들 용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지난번 물어보니 외제 오디오는 전 세트 가격이 억대가 넘어가는 고가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이 어딘가 다른 것 같기도 했다. 한 이틀 푹 쉬면서 묵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네들은 여기저기 걸린 작품들을 감상하고 우리는 앉아 음악소리에 취했다. 창 밖으로 야외 전시장 풍경이 그림 같았다.

 

늘 우리는 이런 여유를 부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그렇게 할 염두를 내지 못한다. 대단한 시간이나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마치 여유를 부리면 큰 잘못인양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생 가족들을 보살피고 먹고살기 위해 노력만 한다면 정작 자신은 언제 여유를 부리고 자신의 시간을 가질수 있는가? 아니다. 지금의 시간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중에 나이 들어 여유가 생긴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지 자식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무엇이든 그것을 찾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니 여유란 스스로 자기인생을 돌보고 즐기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느직이 팬션을 나와 곰소만을 빠져 나왔다. 선운사 부근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국도를 따라 내려 가는데 눈 쌓인 길이 위험천만이었다. 약간의 굽은 길에서 반대편 차로 인해 제동을 걸었더니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하여 한 바퀴 돌아 길가의 전봇대에 부딪히고서야 멈췄다. 천만다행이다. 별 문제없이 차를 돌려 출발할 수 있었다. 선운사 들머리 미당 문학관을 들르고 싶었지만 눈길이 위험해 포기하고 한 겨울 백로가 노는 개울가 식당에서 풍천 장어로 점심을 들었다.  

 

여행은 가다 보면 늘 부딪히는 문제가 집사람과의 대화다. 이번에도 무슨 말 끝에 평소 참았던 마음이 크게 상하고 말았다.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불만이 생길 때의 불편함, 잘잘못을 떠나 그런 상황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이다. 어디를 가든 어떤 장소에서든 서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짐일 뿐이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일 수밖에는 없지만 나이 들어가면서도 서로의 불편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생각만 고집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럴 때마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의 절망감, 포기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막막함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온통 지치게 한다. 

 

아직도 눈은 멈추지 않았다. 장성쯤에서야 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남원을 지나 산내에 들렀다. 여기도 눈이 내려 온 주변이 얼어 있었다. 집은 공사가 중단된 채로 그대로 서 있다. 설이 지나고 나서야 공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날씨가 그 때쯤은 풀릴 것이라 하니 큰 일이 없는 한 이월 중에는 완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와를 빨리 얹어야 할 텐데 눈이 자꾸 내리니 지연이 된다.

 

산청에 들러 김 선생을 내려주고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는 것을 사양하고 그대로 울산으로 향했다. 오는 내내 마음의 앙금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한번 씩 마음이 상할 때마다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순백의 눈을 보고 느낀 희열은 점점 어두운 마음으로 무거워졌다. 여행의 뒷맛이 이렇게 씁쓸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2011. 2. 4. 송하산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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