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그렁 뎅그렁...
갑자기 현관 위에 매달려 있는 풍경소리가 두 번 들렸다. 마침 마늘을 까다 잠시 망상에 잠겨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씨마늘을 쪼개고 앉아 있으려니 심심하던 나는 이럴 때 둘이 같이 않아 얘기를 나누며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일을 마친 후에는 저녁을 잘 먹고 하루를 정리한 후 잠자리에 들어 다시 즐겁게 서로 사랑을 나눈다면 참 좋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늘 열 접은 그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예사로 생각했는데 일일이 쪼개어 고르려고 하니 이만저만한 수고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마늘을 까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농사짓는 일이 그러려니 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마늘을 짓기로 마음먹은 것은 겨울농사로서 안성맞춤일 뿐 아니라 고추와 더불어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양념류이며 그래서 해마다 고추나 마늘농사로 인한 파동이 일어나지 않는 때가 없기 때문이다. 날씨가 안 좋으면 값이 너무 오르기도 하고 농약을 과다하게 뿌려 말썽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에게 고추나 마늘은 식생활을 유지하는데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필수적인 식품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시골에서 환금작물로 재배하는 다른 여러 가지 특수작물이 있지만 나는 가장 기본적인 고추와 마늘을 심어 이웃과 나누어 먹고 다소간의 여유분은 주변에 싸게 공급하여 최소한의 영농자금을 충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농사로는 고추를 겨울농사로는 마늘을 생각한 것이다. 둘 다 키우기가 만만치가 않고 수익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식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름 겨울 각 백만원 씩, 연 이백만 원 정도의 수익이면 종자값, 농자재비, 퇴비나 비료 등의 거름 값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내년에는 콩 농사를 준비하고 여러 가지 다른 채소류나 과일도 심어 볼 생각이지만 특히 고추 농사와 마늘농사에 신경을 쓸 생각이다. 시골에서 가장 중요한 농사로는 벼농사와 콩농사이다. 그다음에는 고추, 마늘, 깨다. 그 다음이 감자와 고구마 등 뿌리식물과 무우와 배추, 호박, 오이, 상추, 가지 등 채소류들이다. 해마다 이 정도는 최소한 심고 키워야 농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늘 심을 준비를 하면서부터 많은 우여곡절이 생겼다. 우선 앞마당의 밭은 그동안 너무 묵혀놓아 땅이 굳어 풀어지지가 않았다. 일일이 손으로 부수고 고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파도 파도 나오는 크고 작은 돌은 엄청났다. 밭을 만들 때 포크레인으로 한 번 뒤집어 놓은 바람에 아래쪽 돌들이 전부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골을 내고 두둑을 만들어 놓고도 서너 번이나 새로 땅을 파서 뒤집고 돌을 줍고 밭을 골랐다. 내 생전에 이렇게 정성을 들인 경우는 몇 번 없었을 것이다. 관리기나 경운기가 있으면 한 시간도 안 돼 끝날 일이 사람 손으로 하려니 하루 일이었다. 그래도 어차피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앞산을 쳐다보며 열심히 땅을 파고 고르는 작업을 했다. 거의 한 달여간을 손보니 보기가 좋아졌다.
여기서는 마늘을 10월 말이나 심는다고 하였다. 늦게 심는 지역인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작물을 거두고 난 뒤에 심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연히 나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 서둘러 심기로 하였다. 마늘 종자는 농민 상담소에 물어보니 의성 마늘 구입처를 안내해줘서 직접 씨마늘 판매농가에 전화로 주문하여 받았다. 그런데 마늘을 심기 전에 토양살충제를 뿌리고 마늘은 종자소독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늘 비료나 퇴비도 잔뜩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 양이 엄청났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토양 살충제는 너무 독한 농약이었다. 고자리파리를 주로 예방한다고 하는데 나는 어쨌든 그것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오고가는 동네사람들 마다 고자리 약을 안치면 마늘이 안 된다고 하니 나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미리 사논 마늘 멀칭을 그대로 덮어씌우고 말았다. 더 이상 미련이 생기지 않도록...
마늘을 다 까니 아침부터 시작한 일이 오후 4시가 넘었다. 하루 종일 앉아 마늘을 쪼갠 것이다. 엄지손가락이 얼얼하고 아팟다. 종자소독은 해야할 것 같아 농협에서 구입한 살균제를 희석해 부분적으로 뿌린 후 갑바로 덮어 놓았다. 자, 그런데 최종 점검을 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착오가 발생했다. 충분히 열 접을 심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밭의 마늘 구멍수가 예상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준비 된 밭에 마늘을 심으면 최대 일곱 접 정도를 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늘 한 접에 100개, 한 개당 평균 다섯 쪽이면 10접으로 나오는 씨마늘은 5000개 정도. 그런데 양파를 심을 곳을 빼면 대략 마늘 1000여개 정도를 심을 수 있는 두둑이 세개 남는다. 어디서 착오를 일으켰는지 엉뚱하다. 이미 살균제까지 뿌려놨으니 남은 마늘은 먹을 수도 없다. 이런 낭패가 없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 남은 마늘은 여기저기 나누어 주기로 하였다.
다음날 어머니가 오셔서 같이 마늘을 심었다. 나는 여유 있게 심자고 하였고 어머니는 구멍마다 모두 심자고 하였다. 그러나 많이 심는다고 좋은 것은 아닐 것 같아 내 고집대로 두 줄 심고 한 줄 건너고 하는 식으로 씨를 심었다. 땅도 채소도 여유 있게 심고 자랄 수 있어야지 그저 수확량만을 목표로 농사를 짓다가 보면 땅도 빨리 지치고 식물도 고생을 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다. 마늘은 겨울을 나기 때문에 씨앗을 깊이 심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구멍을 내고 어머니는 씨를 묻는 식으로 분업을 하였다. 훨씬 속도가 빨라졌는데 결국 해가 넘어갈 때까지 일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마늘을 다 심고 두둑을 바라보니 마음이 뿌듯하였다. 남은 종자는 산청의 김선생이 한 봉지를 가져갔고 아랫집 할머니에게 한 봉지, 어머니가 한 봉지, 나중에 위쪽에 사는 한치영씨에게 한 봉지 나누어 주면 처리가 될 것 같다.
살충제도 비료도 거름도 적으니 과연 마늘이 잘 자랄 것인지 걱정이 되지만 얼마 되지 않은 경험으로 나는 모든 식물은 스스로 살아나고 적응을 한다는 것을 깨 닫았다. 너무 잘 자란 작물은 쉬이 물러지고 맛도 덜하다는 것도 알았다. 병충해도 더 잘한다. 작지만 고생을 하며 큰 식물이 더 단단하고 맛도 깊다. 똑같이 관행적으로 키울 요량이면 무엇하려 고생스럽게 농사를 짓겠는가? 사다 먹으면 간단할 일을. 대규모 농사를 지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비료 농약을 잔뜩 치거나 과도한 수확량을 탐낼 이유가 없다. 텃밭에 채소를 가꾸면서도 살충제나 화학비료를 쓴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본다.
앞으로는 일반적인 경작도 점차 새로운 유기농법으로 전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술연구와 개발, 지원이 이루어져 건강한 땅의 유지와 안전한 식량 생산에 발전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우리의 농업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경제적 이윤의 확보를 위한 대량생산 체계, 화학비료나 살충제의 남용, 심지어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태계의 혼란 유발, 과도한 독점체제를 유지함으로서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자연 파괴에 앞장서고 있으며, 정당한 시장 가격 체계를 무너뜨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우리의 식량과 먹거리를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급히 모든 개개인의 의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무조건 싸다고만 선호할 것이 아니며 대형 매장으로만 달려갈 것도 아니다. 제철 아닌 채소 과일을 너무 찾지 말 일이며 수입식품은 신중하게 구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기 먹는 것도 적당하게 자제하고 다소 상하고 구멍난 채소도 함부로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과시적이고 소비적인 식생활을 줄여야 할 것이다. 탐욕으로 차려진 밥상은 세상을 더럽히며 자연을 파괴하는 첩경일 수도 있다.
2011. 가을. 소나무집 아래서.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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