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다.

방산하송 2011. 11. 20. 10:34

[채소 쌈에 얹어 먹으려고 앞마당 텃밭에 풀을 뜯으러 나갔는데 사방이 어둑어둑했습니다. 제가 찾는 쌈은 쇠비름인데 이 풀이 몸에 좋다네요.  ...  저는 밭고랑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아, 그런데 쇠비름은 벌써 잠자리에 들었네요. 이파리를 살포시 닫고 고개를 갸우뚱 한 채로 잠이 들었네요. 그 모습이 어찌나 여리고 애잔한지요. 감히 먹겠다고 욕심 사나운 손을 들이댈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잘 자라' 하고는 일어섰습니다. 앞산에서는 둥근달이 막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동화 같은 글은 몇 년 전 어느 환갑 나이의 화가가 쓴 글이다. 소녀같은 감수성과 아름답고 고운 심성이 잘 느껴지는데 얼굴도 나이답지 않게 대단히 맑고 고운 사람이다. 풀꽃 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풀, 꽃, 길 등에 풀꽃 상을 시상하던 환경운동가. 그보다는 화가로서 참 담백하고 깔끔하면서도 편안하고 예쁜 그림을 잘 그리시는 분이다. 화가 정상명 선생이다. 가끔 글도 쓰고 몇몇 매체에 그림과 글이 실리기도 했다. 지금은 소설가 최성각씨와 강원도 산골짜기의 툇골이라는 곳에 풀꽃평화연구소를 차려놓고 매주 정기적으로 환경과 관련된 웹진을 발행하고 있다. 어제는 우연찮게 강원도 춘천까지 가 정상명 선생을 만나보게 되었다.

 

강원도 까지 가게된 것은 소설가 최성각씨와 풀꽃연구소의 사이트에서 댓글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풀꽃연구소의 환경과 관련된 글들은 늘 맑은 샘물 같은 신선한 느낌을 주며 새로운 깨달음과 생각할 만 한 거리를 주는 것 같아 자주 방문하여 글을 애독하고 있는 참이었다. 최성각씨는 그동안 몇 편의 글을 통해 또 환경운동과 관련된 왕성한 활동을 통해 몇 년 전부터 이름을 듣고 있었는데 지난해 그의 책을 통해 생각과 지향하는 바가 나와 비슷하다는 강렬한 동질감을 느끼고 내 편에서 먼저 연락을 해 서로 이름을 알게 된 사이다. 이 동갑내기 소설가는 참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손색이 없다. 나는 그의 그러한 활동과 정신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마침 연구소가 있는 툇골 입구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네팔의 화가가 그린 그림의 전시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고 싶지만 멀어서 안타깝다는 의견과 혹시나 소품이라도 한 점 구할 수 없을까 라는 희망을 전했더니 갑자기 만사 제치고 북상하여 올라 와 보라는 답 글을 받은 것이다. 어쩌면 그림을 한 점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직접 고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난감하였다. 전시회는 토요일까지라고 하는데 나는 그 댓글을 금요일 밤에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전날 울산지부의 초대로 울산에 갔다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추위가 오기 전에 무를 갈무리해야 할 것 같아 서둘러 귀가한 뒤었다. 무를 버려두고 가기도 뭣하고 고민하다가 이런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지 않아 어쨌든 새벽에 일찍 무를 정리하고 올라가 보겠다고 답을 올렸다.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 마자 밭으로 나가 아직 비가 오락가락 하는데 무우를 뽑기 시작했다. 백오십여개 정도밖에 안되지만 무를 뽑아내고 잎을 자른 뒤 일부는 땅에 묻고 나머지는 창고에 저장을 하는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침을 대충 요기하고 집을 나서니 9시가 넘었다. 함양을 나와 대전 쪽으로 길을 잡았다. 멀든 가깝든 출발을 했으니 언제든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리고 옛날 이렇게 어딘가로 가고 싶어 아침 일찍 훌쩍 집을 나서 혼자 길을 달려가던 생각들이 났다. 참 많이도 다녔다. 그런데 내가 가는 곳이란 대개가 산이고, 그 다음은 절, 그리고 어느 시골의 골짜기나 시냇가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가끔 전시회나 공연이 있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연에 많이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 지리산에 들어온 뒤에는 다른 곳에 가 볼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 아마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흡족하고 마음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춘천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툇골 입구에 도착을 하니 두시가 조금 넘었다. 재작년 둘째의 면회를 간다고 지났던 길과 같은 방향이었다. 길 안쪽 한적한 곳에 예쁘게 가꾸어진 '나비야' 라는 집 마당에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네팔의 작가가 쓴 역사소설의 삽화로 쓰인 다수의 소품과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그렸다는 조금 큰 그림이 여섯 점이었다. 선뜻 마음이 가는 그림은 안 보였다. 도착하여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확인해 보니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연구소에 연락을 했더니 마침 최선생님과 정선생님도 점심을 들지 않았다고 내려오겠다고 했다. 초면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친절하였다. 스스럼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주로 나의 농사이야기 귀농이야기 등 일상적인 것이었다.

 

 

점심을 들고 연구소로 올라갔다. 사진에서 본 모습이었지만 겨울이 다 되어서 인지 조금은 어수선했다. 책에서 본 거위가 날개짓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고 연구소 아랫 쪽에는 오두막이 한 채 잘 만들어져 있었는데 왠지 정감이 갔다. 나도 나중에 위 쪽 밭에 오두막을 한 칸 지어볼 생각인데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아 자세히 보아 두었다. 최성각 작가의 안내로 여기저기 들러보았는데 그가 만들고 짓고 가꾸는 것들이 모두 그의 성향을 말 해 주는 것 같았다. 그의 글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지향이 곧 거기에 잘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연구소안에는 풀꽃의 활동과 관련된 전시물들이 빼곡하였다.

 

그림 전시를 주최한 분과 연락한 정선생님이 그림 건네는 것을 조금 곤란해 한다는 것 같다고 하여 선선히 포기하였다. 사실 그림을 핑계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나의 돌발적인 북상은 최성각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직도 나는 직접 사람을 만나보고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해야 안면이 있는 사람이고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속 깊은 얘기까지야 나누지는 못했지만 생각하던 대로 결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런 사람들의 활동이 사회의 일정한 영역을 담당하고 또 그 활동이 인정받을 수 있어야 좋은 사회라고 확신하고 있다. 시민운동이 활발할수록 또 참여가 높을수록 그 사회가 건강하고 공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꾸어나가고 지향해야 하는 것은 바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정당성, 정상화, 민주화이다. 결과물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과정이 올바르다면 당연히 옳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목표를 말하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시민운동은 바로 그러한 과정의 정상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촉매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성각 작가는 환경운동 판에서는 꽤나 알려진 사람이다. 삼보일배라는 것도 그가 만들어낸 것이고 특히 새만금 살리기 운동은 여러 해 고군분투했었다고 한다. 그의 산문집 '달려라 강물아'는 국어 교과서에도 그 내용 중 일부가 실려있는데 최근 국방부의 금서 목록에 들었다고 알려졌다. 어쩌자고 아직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지 참 한심스럽다. 그의 환경운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귀중함을 바탕을 하고 있으며 곧 작가가 문학에서 지향해야할 소명의식과도 연결이 되 있는 것 같았다. 생각과 지향과 삶이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나는 그의 실천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하였다.

 

정상명 선생은 중년에 사고로 딸아이를 잃고 크게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환경운동을 시작했고 그림의 색조가 달라졌으며 생명의 소중함, 삶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다고 한다. 고통을 꽃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딸의 이름을 따 풀꽃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매년 우리주변에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상을 수여하였는데 새, 돌멩이, 억새, 골목길, 꽃, 지렁이, 논, 정자나무 등이다. 얼마나 참신하고 아름다운 발상인지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감탄을 했었다. 실상사 입구에도 물봉선에 대한 풀꽃상 수여비가 서 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밖이 어두어졌다. 주중에 내려와 있다가 주말이면 귀경하여 일을 보고 다시 주초 내려오는 형태라고 하였다. 여기에서의 시골생활이 벌써 7년째라고 한다. 나로 인해 귀경이 다소 늦어진 것 같았다. 최성각 작가의 '달려라 냇물아'와 정선생님의 산문집 '꽃짐'을 기념으로 얻고 아쉽지만 어둑해진 툇골을 빠져나왔다. 연구소가 있는 곳이 툇골이고 내 블로그가 툇마루이니 그것도 묘한 인연이다. 비록 오고 가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고  더욱이 혼자 움직이면서 얼마나 많은 기름을 길 위에 뿌렸는지 다소 미안하기는 했지만 다른 어떤 곳을 다녀오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온 것 보다 즐겁고 의미있는 하루였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고 알게 되기도 하며, 서로 도움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서로 관계 맺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불변의 법칙은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나와 둘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상대는 식물도 동물도 풀과 나비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운동도 결국 인간과 자연, 그 둘 사이의 관계맺음을 바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관계를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이거나 편을 가르려 들거나 배제하려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며 더군다나 폭력적이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2011. 11월 20일.  툇골을 다녀와서.  소은  

<그림은 정상명 선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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