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보며

유안의 꿈

방산하송 2011. 12. 26. 16:26

 

 

근심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다면 덕의 극치이다.

도에 통하여 변함이 없음은 고요함의 극치이다.

마음을 비워 욕심을 품지 않음은 비움의 극치이다.

좋아하거나 싫어함이 없다면 평정의 극치이다.

사물에 얽매어 정신이 산란치 않음은 순수의 극치이다.

이 모든 것에 능하면 신명에 통한다.

신명에 통함은 곧 그 내면에서 얻는 것이다.

 

 

이 글은 회남자의 1편 원도훈에 나오는 글이다. 글귀가 마음에 들어 여러 번 써 보았다. 겨울 들어 가정 먼저 손에 잡은 책이 중국 한나라 초기 한고조 유방의 손자이면서 회남지방의 제후였던 회남왕 유안을 중심으로 집필된 회남자이다. 이 책은 수천 명의 당대의 학자들이 모여 의논하고 토론한 것을 기초로 저술된 삼라만상에 대한 일체의 철학적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인 김성환 교수는 회남자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반성해보고 지향해야할 바를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하는 해석학적 방법으로 저술했다고 하였다.

 

회남자가 씌여질 당시는 절대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단일 이념을 추구하는 시대였다. 한나라는 중국문화와 사상의 기틀을 세웠고 동아시아 문명에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거대한 통일 왕조다. 이러한 한나라의 지배이념은 유교경학이었다. 당연히 경학은 절대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단일한 중심과 패권을 겨냥했고 향후 이천년 넘게 지속된 중화주의 이념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회남자는 권력 중심적인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는 달리 세계를 구성하는 단일한 중심을 거부하는 변방의 시각에서 철학적 통찰을 얻고자 하였다. 오늘날 부적절한 민족주의 성립의 근거가 되는 이념과 사고방식을 반성하게 만드는 근원적 성찰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절대성과 보편성을 지닌 하나의 진리에 대한 추구는 중세적이면서 동시에 근대적이기도 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권력은 단일한 이념에 사람을 종속시키기는 집단의식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으며 권력에 반하는 이념은 철저히 통제하거나 무자비하게 유린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단일하고 보편적이라는 이성주의적 생각은 늘 도전을 받아 왔으며 특히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의 특성과는 치명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한 상호교류와 소통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의 공존을 바탕으로 한 집단지성을 추구한 회남자는 오늘날 각별한 의미를 가지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으로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의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시대를 거친 뒤 진과 한대에 이르러서는 지식과 이념의 통일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집권층의 통합방식은 소수의 엘리트가 중심이 되어 생산한 교조적 이념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고 모든 개인과 집단을 종속시키는 형태였다. 단일한 이념과 규범 윤리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이것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꾀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절대 권력과 단일이념의 물리적이고 이념적인 압박은 사상의 다양성과 집단이성을 억제하였다. 결국 유안도 반역을 빌미로 정치적인 압박에 의한 자살을 택하게 되고 그 주위에 모였던 수천 명의 인재들도 몰살당하고  만다. 집단지성의 물리적 기반이 붕괴되고 말았던 것이다. 회남자 역시 사상적으로 평가절하 되었으며 여씨춘추와 함께 소위 잡가로 분류되었다. 사상이 아니라 일종의 백과사전식 나열로 일관성이 없고 조잡한 책으로 매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바로 그러한 지식의 통합시대를 살고 있으며 지식의 독점과 일방적 공급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고 상호 교류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십 세기 전이지만 회남자의 진가가 오늘날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고 볼 수 도 있는 것이다.

 

유안은 그 자신이 뛰어난 학자였을 뿐 아니라 주위에 천하에서 몰려든 많은 지식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권력자가 지식인을 양성하는 것은 춘추전국이래 전통이었다. 유안은 이러한 집단지성의 전통을 이어받아 수많은 지식인을 불러 모았고 그들과 더불어 여러 문헌을 저술 하였다. 곧 내서 21편, 대량의 외서, 중편 8권, 신선방술에 관한 20여만 자의 저서 등이다. 그 가운데 내서만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이 회남자다. 회남자를 주석한 후한의 고유에 의하면 "천하의 많은 방사들이 그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덟 명의 방사들과 대산, 소산 등의 유생들과 더불어 도덕을 논의하고 인의를 총괄해 이 책을 서술했다." 라고 되어 있다. 방사는 방술을 다루는데 오늘날 생명과학과 우주, 천문, 기상, 지리, 물리, 화학, 수학 등 모든 자연과학이 여기에 해당하며 유생은 인의에 밝은 학자들인데 오늘날 인문 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곧 이들과 더불어 도덕과 인의를 총괄했다 함은 우주질서를 의미하는 도덕과 사회질서 체계를 의미하는 인의를 모두 함께 집대성 했다는 말이 된다. 회남자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아우르는 지식의 대통합을 시도 했던 것이다.

 

회남자의 구성은 총 21편으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편인 요략은 회남자의 중심사상과 각 편의 요지를 간략히 소개하는 글로 책의 후기에 해당한다. 요락에 보면 '이 책을 서술하는 것은 도덕의 기틀을 세우고 인사를 망라하여 위로는 하늘을 살피고 아래로는 땅을 헤아리며 그 가운데로는 사물의 여러 이치에 통달하기 위해서다. 비록 현묘한 도의 내용을 모두 드러내지는 못하더라도 제법 다채로워 그 대강을 살필 만하다.  .... 그리하여 20편의 책을 지었으니 천지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사람의 일을 상세히 파악했으며 제왕의 도를 모두 구비했다.' 라고 소개되어 있다.

 

회남자의 정신은 한마디로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절대적인 이념이나 진리를 거부하고 진리는 변하는 것이므로 자연과 사람의 일에 대해 단정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모든 사물과 일은 다 이유와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허위와 금기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자연의 질서에 따라 근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 원문을 모두 소화해 내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쉽고 단순한 비유와 예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뜻은  자못 심오하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세계는 세계화 이후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탈 세계화에 대한 담론이 쏟아지고 있으며 다시 지역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적 패권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동북아에서의 중국의 부상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다. 우리나라도 부의 집중화와 권력의 중앙패권주의가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정치 경제 문화적 지역분권, 다원주의적 의사결정, 물리적인 인구의 분산 등을 이루어야 할 필요에 직면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민족 간, 인종 간, 종교 간 편견의 치유와 문화적 관용성의 확대 등 다원주의를 실현해야 할 당위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회남자는 그 때까지 축적된 사상과 문화와 학문을 집대성하고 새롭게 해석하면서 그 목표는 단일 패권주의를 해체하고 다양한 가치와 문화를 재현하는데 두었다고 하니 대단한 선견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민족주의, 집단주의, 원리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에게 공존과 화해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 지혜를 길러주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욱이 감명 깊은 것은 회남자의 자연관이다. 나를 살리는 대자연이 또한 나를 잘 죽게도 하는 것이니 '천지만물은 한 몸이다.' 라는 말이나, '대자연에서 부여받은 천연의 본성을 회복하라.'고 경고하면서 사물에 정신이 팔린 위선을 경계하고 천성의 조화로운 기운을 잘 유지하여 고요하고 담박함을 기르라는 말은 보배와 같은 가르침이다. 인의편에 실린 사람의 일과 처신에 대한 글도 금과옥조다. '나에게서 구하라.'는 말이나 '차이를 인정하라.'는 글도 그렇거니와 '어디든 그 곳의 풍속을 존중하라.'는 말은 익숙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무릎을 치게 하는 훌륭한 조언이었다. 

 

유안은 어떤 생각으로 이러한 사상을 품었으며 저술을 하였을까? 절대왕조의 시대에 자칫하면 반역의 멍에를 쓸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부친도 반역죄로 처형되지 않았던가? 아무리 엄중한 시대라 하더라도 언제나 주류에 반하는, 또는 강요된 사상이나 이념에 귀속되지 않으려고 하는 정신은 살아있는 것인가 보다. 비록 현실에서는 패배하지만 역사는 늘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언젠가는 되살아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우리시대의 상황과 현실은 어떠한가? 

 

눈이 내린 겨울날 햇볕이 드는 따뜻한 창가에서 읽는 고전은 나의 삶을 반성하게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하며 정신을 가다듬게 해 주었다. 며칠 마음이 심란했는데 그런 것들을 가라앉혀 주기도 했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희로애락에 무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너무 그러한 감정이 앞서는 사람은 심신이 피곤해지고 남에게도 부담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당장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 것이며, 좋고 싫음, 옳고 그름에 대해 너무 매달리지 말고 되도록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회남자를 읽으며 반성한 것이다. 

책을 구해준 이경춘 선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11. 마지막 달.   소나무집에서 소은.